선조문집/눌재유고이홍준

[訥齋遺稿] [附錄] 墓碣陰記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7. 14:54

눌재유고(訥齋遺稿) / 附錄


墓碣陰記(묘갈음기)
–臥隱 金翰東(와은 김한동)

嗚呼此訥齋李先生之墓也。 先生諱弘準字君式。 月城人。 中成化丙午司馬。 慵齋先生之弟。 自金溪移寓 乃城縣。 戊午禍後。 不復以進取爲心。 杜門求志。 奬勸 後學。 依藍田約設鄕規。 縣風丕變。 縣爲君子。 鄕先生 之力也。 縣人追慕之。 與慵齋先生幷享于柏麓里社。 墓在乃城北銀峯東西。 向之原墓。 前有短碣。 只刻先 生所著。 碣銘陰記。 剝落殆盡。 先生平日行蹟。 無以徵 焉。 雖甚可恨。 然觀於家訓及碣銘。 可以見先生之大 略。 奚多乎哉。 舊碣旣虧缺。 外裔諸孫。 相與經紀。 鑱石 改竪。 主其事者。 成宗魯權思訥也。 追刻自著碣陰略 記。 子孫於後先生配咸昌金氏主簿諟敬之女。 觀察使爾音之玄孫。 生一男五女。 男德璋黃山道察訪。 女 適李希侗生員。 余漢瑾 琴椅。 府使鄭穆蕃。 參奉李麟 德。 璋娶豊山柳氏進士子溫之女。 生四男一女。 男艿 茹 葎早歿。 苞參奉。 女適李薰。 生員李希侗。 五男一女。 男文魁進士。 文台生員。 文斗生員。 文奎參奉。 文井參 奉。 女適郭河余漢瑾一男。 夢得 琴椅二男。 應鍾奉事。 應賓生員。 鄭穆蕃。 一男一女。 男惟一大司諫。 女適李 淑仁。 進士李麟, 四男三女。 男忠寬 士寬 克寬 順寬。 女 適南好善。 李碩幹。 參奉。 南好禮。
上之元年。辛酉四月日。通政大夫。前行司諫院大司諫。聞韶金翰東謹誌


*출처: 용눌재집(慵訥齋集) > 訥齋先生遺稿 > 附錄
*참조: 와은집(臥隱集) > 臥隱先生文集卷之七 > 丘墓文 > 訥齋先生墓碑陰


◦[해제] 눌재(訥齋) 이홍준(李弘準)의 묘비 음기(陰記)이다. 묘비가 오래되어 글자를 읽기 힘들어 외가쪽 후손인 성종로(成宗魯)‧권사눌(權思訥) 등이 새로 비석을 세웠다. 선생의 자는 군식(君式), 본관은 경주, 1486년(성종 17)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1499)의 동생이다. 무오사화 이후로 두문불출하여 후학을 가르쳤다. 부인은 함창김씨(咸昌金氏), 1남 5녀를 두었다는 내용이다

◈와은집(臥隱集)은 김한동(金翰東)의 文集이다.
○김한동(金翰東) 1740~1811. 자는 한지(翰之), 호는 와은(臥隱)이고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정언(正言)ㆍ부교리(副校理)ㆍ전라도 관찰사ㆍ대사간(大司諫)ㆍ승지(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와은선생문집 (臥隱先生文集). 유교넷
  http://www.ugyo.net/yk/gds/gdsKisaView.jsp?B_SUJI_ID=KSAC_M_A07000259&B_BOOK_ID=KSAC_T_A07000259_004&B_KWON_ID=001&B_STYLE_ID=002&B_KISA_ID=00003



묘갈 음기墓碣陰記

아, 이것은 눌재訥齋 이 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휘는 홍준弘準이고 자는 군식君式이며 본관은 월성이다. 성화 병오년(1486)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용재慵齋 선생의 아우이다. 금계에서 이사하여 내성현에서 살았다. 무오년(1498)의 화가 있은 뒤로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는 데 마음을 두지 않고 두문불출하면서 뜻을 구하며, 후학들을 장려하였다. 남전향약藍田鄕約에 근거하여 동약을 마련하자 현의 풍속이 크게 변하였으니, 현이 군자의 고장이 된 것은 선생 덕분이다.
현의 사람들이 추모하여 용재 선생과 함께 백록리사에 나란히 모셨다. 묘소는 내성 북쪽 은봉 동쪽 서향의 터에 있다. 묘 앞에 짧은 묘갈이 있는데, 선생이 지은 묘갈명만 새겨져 있고, 묘갈 음기는 글자가 거의 다 떨어져 나가 버려 선생의 평소 행적에 대해서는 증명할 길이 없다. 비록 매우 한스럽지만 가훈과 묘갈명을 보면 선생의 대략을 볼 수 있으니 어찌 글이 많아야만 하겠는가. 옛날의 묘갈이 이미 무너지고 손상되니 외손들이 서로 더불어 계획하여 비석을 깎아 다시 세우니, 그 일을 주관한 자는 성종로成宗魯와 권사눌權思訥이다. 직접 지은 묘갈 음기를 다시 새기고 뒤에 자손들을 대략 기록하였다.
선생의 부인은 함양 김씨 주부 김시경의 따님이자 감사 김이음의 현손녀이다. 1남 5녀를 낳았다. 아들 덕장은 황산도 찰방이다. 딸들은 생원 이희동, 여한근, 부사 금의, 참봉 정목번, 이린에게 각각 시집갔다.
덕장은 풍산 류씨 진사 류자온의 딸에게 장가들어 4남 1녀를 낳았다. 아들 잉·여· 율은 요절했고, 포는 참봉이다. 딸은 생원 이훈에게 시집갔다. 이희동은 5남 1녀이다. 아들은 진사 문괴, 생원 문태, 생원 문두, 참봉 문규, 참봉 문정이다. 딸은 곽하에게 시집갔다. 여한근은 아들이 하나이니, 몽득이다. 금의는 2남 1녀이다. 아들은 봉사 응종, 생원 응빈이다. 딸은 현감 권동미에게 시집갔다. 정목번은 1남 1녀이다. 아들은 대사헌 유일이고 딸은 진사 이숙인에게 시집갔다. 이린은 4남 3녀이다. 아들은 충관·사관·극관·순관이다. 딸들은 남호선, 이석간, 참봉 남호례에게 각각 시집갔다.

금상 원년 신유(1801) 4월 아무 일에 통정대부 전 행 사간원 대사간 문소聞韶 김한동金翰東1)이 삼가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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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한동(金翰東, 1740∼1811) : 자는 한지(翰之), 호는 와은(臥隱),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전라도 관찰사·대사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대사간으로 있었던 때는 정조 20년(1796) 10월∼12월 사이, 22년(1798) 3월∼23년 7월 사이이다.(『正祖實錄』)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한국국학진흥원(2020.10) > 눌재선생유고 > 부록附錄 > 묘갈 음기墓碣陰記
*한국국학진흥원: https://www.koreastudy.or.kr/



●눌재선생묘비음기(訥齋先生墓碑陰記)
   -문소 와은 김한동 찬(聞韶 臥隱 金翰東 撰)

어호(於乎)라. 차(此)는 눌재이선생지묘야(訥齋李先生之墓也)라. 선생(先生)의 휘(諱)는 홍준(弘準)이요, 자(字)는 군식(君式)이니 월성인(月城人)이라. 중성화병오(中成化丙午)에 사마(司馬)하니 용재선생지제(慵齋先生之弟)라. 자금계(自琴溪)로 이우내성현(移寓乃城縣)타가 무오화후(戊午禍後)로 불복이진취위심(不復以進取爲心)하고 두문구지(杜門求志)하고 장려후학(獎勵後學)할세. 의람전약설(依藍田約設)하니 향규현풍(鄕規縣風)이 비변(丕變)하여 현위군자향(縣爲君子鄕)은 선생지력야(先生之力也)라. 현인(縣人)이 추모지(追慕之)하여 여용재선생(與慵齋先生)으로 병향우백록리(幷享于栢麓里)하다.
묘재내성북은봉동서향지원(墓在乃城北銀峰東西向之原)하고 묘전(墓前)에 유단갈(有短碣)에 지각선생소저갈명(只刻先生所著碣銘)이요. 음기칙박락태진(陰記則剝落殆盡)하여 선생평일행적(先生平日行蹟)을 무이징언(無以徵焉)하니 수심가한(雖甚可恨)이나 연(然)이나 관어가훈급갈명(觀於家訓及碣銘)에 가이견선생지대략의(可以見先生之大畧矣)니 해다호재(奚多乎哉)아. 구갈(舊碣)이 기허결(旣歔缺)에 외예제손(外裔諸孫)이 상여경기(相與經紀)하여 참석개수(鑱石改竪)할세. 주기사자(主其事者)는 성종노권사눌야(成宗魯權思訥也)라. 추각자저갈음(追刻自著碣陰)하고 략기자손어후(畧記子孫於後)하니 선생(先生)의 배(配)는 함창김씨(咸昌金氏)니 주부시경지녀(主簿諟敬之女)오 관찰사이음지현손(觀察使爾音之玄孫)이라.
생(生) 1남 5녀하니 남(男)에 덕장(德璋)이니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이요. 여(女)는 적(適) 이희동(李希侗) 생원(生員), 여한근(余漢瑾), 금의(琴椅) 부사(府使), 정목번(鄭穆蕃) 참봉(參奉), 이린(李麟)하고 덕장(德璋)은 취풍산유씨(娶豐山柳氏) 진사(進士) 자온지녀(子溫之女)하여 생(生) 4남 1녀 하니 남(男)에 문괴(文魁)는 진사(進士), 문태(文台)는 생원(生員) 문두(文斗)는 생원(生員), 문규(文奎)는 참봉(參奉), 문정(文井)은 참봉(參奉)이요. 여(女)는 적(適) 곽하(郭河)하다.
김한근(金漢瑾) 일남(一男)에 몽득(夢得)이요. 금의(琴椅) 2남(二男)에 응종(應鍾)은 봉사(奉事)요. 응빈(應賓)은 생원(生員)이며 정목번(鄭穆蕃) 1남 1녀에 남(男) 유일(惟一)은 대사간(大司諫)이요. 여(女)는 적(適) 이숙인(李淑仁)하니 진사(進士)며 이린(李麟) 4남 3녀에 남(男)에 충관(忠寬)·사관(士寬)·극관(克寬)·순관(順寬)이요, 여(女)는 남호선(南好善), 이석간(李碩幹) 참봉(參奉), 남호례(南好禮)다.

上之元年 辛酉四月日 通政大夫 前行司諫院大司諫 聞韶 金翰東 謹誌.
상지원년 신유사월일 통정대부 전행사간원대사간 문소 김한동 근지.

*경주이씨 월성군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