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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이종준, 눌재공 이홍준] 栢麓里社廟宇上樑文(백록리사묘우상량문)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1. 2. 16:53

□용재공 이종준(慵齋公 李宗準), 눌재공 이홍준(訥齋公 李弘準)

 

【계대(系代)】 ①월성군(月城君) 이지수(李之秀) → 1世孫 ①정렬공(貞烈公) 규(揆) → 2世孫 판사복시사공(判司僕寺事公) 원림(元林) → 3世孫 ①화헌공(花軒公) 만실(蔓實) → 4世孫 ③대사헌공(大司憲公) 승직(繩直) → 5世孫 ⑤금호공(琴湖公) 시민(時敏) → 6世孫 ②용재공(慵齋公) 종준(宗準), ③눌재공(訥齋公) 홍준(弘準)

 

 

栢麓里社廟宇上樑文(백록리사묘우상량문)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遺風餘韻之猶在。已百年於精禋。天灾世變之不期。奄三遷于靈宇。于侐舃之重搆。庶肹蠁而有依。維文山南。乃士冀北。鄕多俊傑。豈非淑氣攸胎。俗化文明。實賴先民有作。慵齋李先生。佔畢賢弟。戊午名流。遭棼濁而芝焚。未展華國之巨手。並寒蠧而玉暎。猶想講道之餘香。訥齋李先生。從伯吹篪。在家爲政。智叶申屠之先見。物外鴻冥。道闡藍田之遺規。天荒豹變。文峯鄭先生。訥翁宅相。退老門徒。問學見許於師門。幾發吾子中之嘉奬。論思動聽於經幄。乃有眞學士之艷稱。梅軒洪先生。篤於人倫。孝自天性。純心至行。質古人而靡慙。厚德淸標。配往哲而何歉。幸玆儒賢之輩出。蔚爲矜式於後生。祭於社其在斯歟。久矣同堂以祀。聞其風尙有起者。肆焉追享于宮。致齋於室。讀法於堂。宛然成周之遺意。旣尊其人。又行其道。恐失前修之休風。顧當初胥地之失宜。致己亥崩岸之爲害。傍縣廨而移社。初謂得地之中。執末弊而吹毫。不意遭官之罵。生徒厄於縲絏。神位窘於權安。雖云无妄之灾。亦係斯文之變。父老奔走。陟岡原而胥謀。章甫經營。閱冬春而載繕。宜於曠宜於奧。境僻無塵。美哉奐美哉輪。功成不日。三間廟貌。不改曩時之規模。數疊山容。咸呈昔年之慳秘。若神施而鬼設。信工殫而士敦。陳其几肆其筵。尙陟降洋洋而如在。遵其法講其禮。庶揖讓濟濟而罔隳。玆憑突兀之升。用申於斯之頌。

 

兒郞偉抛梁東。旭日初升瑞彩融。未到天中看氣像。自家元有皦如衷。
兒郞偉抛梁西。平野遙圍活水溪。識取曾狂沂上意。冠童春日好相攜。
兒郞偉抛梁南。栢林當日翠雲涵。更加萌孽淸朝養。未幾山光生紫嵐。
兒郞偉抛梁北。屹屹文岡橫斗極。平時雲雨慰三農。歲暮蒼然寒一色。
兒郞偉抛梁上。陟降英靈同出王。明享何須一瓣香。此心千古元無障。
兒郞偉抛梁下。思皇藹藹盈堂舍。且將周禮敦民彛。會見菁莪興小雅。

 

伏願上樑之後。山靈呵護。地道淸夷。神斯安人斯寧。旣傾否而回泰。戶而絃家而誦。咸舍舊而從新。洗科臼尋摘之陋風。躬孝悌進修之懿則。繩繩起後。赫赫光前。

 

*용재유고(慵齋遺稿) > 慵齋先生遺稿 > 附錄 > 重建上梁文
*용눌재집(慵訥齋集) > 慵齋先生遺稿 > 附錄 > 廟宇重建上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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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집총간 > 눌은집 > 訥隱先生文集卷之九 / 上樑文 > 栢麓廟宇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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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우 중건 상량문廟宇重建上梁文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1)

유풍과 여운이 아직 남아 이미 백 년의 세월을 제향하여 왔건만, 예상치 못한 천재天災와 세상의 변화에 문득 세 번이나 사당을 옮기게 되었네. 고요하고 빛나는 자리에 다시 사당을 지으니 향 연기 끊임없이 이어져 영령이 의지할 곳이 있기를 바라도다. 생각건대, 문수산 남쪽은 선비들의 기북冀北2)이로다. 고을에 준걸이 많으니 어찌 맑은 기운이 잉태한 것이 아니랴. 풍속이 문명하게 교화된 것은 실로 선민先民이 힘쓴 덕분이로다.
용재 이 선생은 점필재의 어진 제자이자 무오사화 때의 명류名流로다. 혼탁한 시대를 만나 지초芝草가 불에 타니 나라를 빛낼 큰 솜씨를 미처 펴지 못하였고, 한훤당·일두와 함께 옥처럼 빛나는 분이니 도를 강하던 남은 향기를 오히려 상상할 수 있겠도다. 눌재 이 선생은 형을 따라 피리[篪]3)를 불었으며, 수신제가의 도로 정사를 하였도다.4) 지혜는 신도반申屠蟠의 선견지명5)과 합하여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처럼 세속을 벗어났고, 도는 남전藍田이 끼친 향약을 천명하여 천황天荒을 표범처럼 변화시켰네.6) 문봉文峯 정 선생鄭先生(정유일鄭惟一)은 눌옹訥翁의 외손이자 퇴계의 문인이로다. 학문은 스승에게 인정받아 몇 번이나 우리 자중子中7)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논변과 사색은 경연의 자리에서 군왕이 귀 기울여 듣도록 하여 참된 학사學士라는 아름다운 칭찬이 있었도다. 매헌梅軒 홍 선생洪先生8)은 인륜에 독실하고 효성은 천성에서 나왔도다. 순수한 마음과 지극한 행실은 옛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두터운 덕과 맑은 품격은 옛날의 현자와 짝하기에 무슨 부족함이 있으랴.
다행하게도 이러한 현인들이 많이 나서 성하게 후생들의 모범이 되니, 사社에 제사 지내는 뜻9)이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오래도록 같은 사당에 제사 지내니 그분들의 풍모를 들은 자는 아직도 마음에 흥기하는 자가 있어 이에 사당에 추향追享하도다. 실室에서 재계를 하고 당堂에서 법을 읽으니10) 주나라가 남긴 뜻이 완연하도다. 이미 그 사람을 높이고 또 그 도를 행하여 행여 전날 닦은 아름다운 풍속이 실추될까 두려워하도다.
생각건대, 당초에 터를 정한 것이 적절하지 않아 기해년(1719)에 언덕이 무너져 해를 입었네. 고을의 관아 곁으로 사당을 옮기자 처음에는 알맞은 자리를 얻었다고 여겼더니, 꼬투리를 잡아내고 털끝만 한 일을 불어서 흠을 찾아, 뜻하지도 않게 관의 견책을 당하였도다. 생도들은 잡혀가는 재앙을 만나고 신위神位는 임시로 모신 자리에서 궁색하게 되니, 까닭 없이 당한 재앙이라고는 하지만 또한 사문斯文과 관계있는 변고로다.
부로父老들이 분주히 주선하여 언덕과 산에 올라 자리를 살피고 일을 도모하였고, 사대부들이 경영하여 겨울과 봄을 지나 비로소 착공하였도다. 널찍하고 그윽하여 자리가 알맞고 지경이 외져 세속 티끌 없도다. 훌륭하고 멋지게 이루었으니 얼마 안 되어 준공하였도다. 세 칸의 사당 모습 지난날의 규모를 고치지 않았고, 첩첩의 산 모습은 다 옛날에 조물주가 아껴서 감추어 둔 아름다움을 다 드러내도다. 귀신이 마련하고 도와준 듯, 참으로 장인은 수고를 다하고 선비들은 정성을 다하였도다. 궤연을 진설하니 영령이 오르내리시며 충만하게 임하여 계신 듯하도다. 그 법을 존숭하고 그 예를 강론하여, 예를 갖춘 선비들이 많고 많아 선현의 덕을 실추시키지 않기를 바라노니, 이에 상량식에 따라 준공을 축원하는 글을 올리도다.

젊은이들아 제물을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 兒郞偉抛梁東
아침 해가 막 떠올라 상서로운 빛이 가득하도다 旭日初升瑞采融
하늘 가운데로 이르기 전 기상을 보건대 未到天中看氣像
원래부터 백옥 같이 흰 속마음이 있도다 自家元有皦如衷

젊은이들아 제물을 들보 서쪽으로 던지니 兒郞偉抛梁西
너른 들 아득히 둘렀고 활수11)가 흐르도다 平野遙圍活水溪
광자가 기수에 오르려던 뜻을 알고서12) 識取曾狂沂上意
어른과 아이가 봄날에 손잡고 오르기에 좋겠네 冠童春日好相攜

젊은이들아 제물을 들보 남쪽으로 던지니 兒郞偉抛梁南
잣나무 숲은 당시의 푸른 구름 머금었네 栢林當日翠雲涵
갓 튼 새싹을 맑은 아침이 더욱 길러 주고 更加萌孽淸朝養
곧이어 산빛은 붉은 남기 피어오르도다 未幾山光生紫嵐

젊은이들아 제물을 들보 북쪽으로 던지니 兒郞偉抛梁北
높고 높은 문수산이 북극성 가로지르네 屹屹文岡橫斗極
평소에 내리는 구름과 비는 농부를 위로하고 平時雲雨慰三農
해 저물녘 푸르름은 찬 기운 일색이로다 歲暮蒼然寒一色

젊은이들아 제물을 들보 위로 던지니 兒郞偉抛梁上
오르내리시는 영령이 함께 왕성하게 나오시니 陟降英靈同出王
밝게 흠향하는데 어찌 일판향13)이 필요하랴 明享何須一瓣香
이 마음은 원래부터 천고에 막힘이 없었다네 此心千古元無障

젊은이들아 제물을 들보 아래로 던지니 兒郞偉抛梁下
화기애애한 기운이 사당에 가득하도다 思皇藹藹盈堂舍
주례로 백성의 떳떳한 마음 도탑게 하고 且將周禮敦民彛
선비들이 「소아」로 흥기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會見菁莪興小雅

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 산신령이 보호하고 땅의 도가 맑게 안정되어, 신령이 여기에서 편안하고 사람도 여기에서 평안하여 이미 기울어지고 막혔다가 태평함으로 회복되기를. 집집마다 거문고와 책 읽는 소리 나고, 모두 다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르기를. 형식적인 틀에 빠지며 허물을 들추어내는 나쁜 풍습을 씻어 내고 효도하고 공손하며 덕에 나아가고 수양하는 아름다운 모범을 몸소 실천하기를. 법도 따르는 기풍을 뒤에서 일으키고 환히 빛나는 모범을 앞에서 비추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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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광정(李光庭, 1674∼1756) : 자는 천상(天祥), 호는 눌은(訥隱),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1699년 진사가 되었다. 안동부 훈도장(安東府訓都長)을 지냈다. 영남 문원(文苑)의 모범이며 세교(世敎)를 떨쳤던 인물로 전해진다. 저서로는 『눌은집』이 있다.

2) 기북(冀北) : 훌륭한 인재가 많이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원래 기북은 기주(冀州)의 북부(北部)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명마(名馬)가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였다.

3) 피리[篪] : 형제의 우애를 상징하는 악기 이름이다. 『시경』 「하인사(何人斯)」에 “형은 질 나팔을 불고, 아우는 피리를 불도다.[伯氏吹壎 仲氏吹篪]”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4) 수신제가의……하였도다 : 이홍준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고향에서 후학들을 기른 행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왜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공자가 “『서경』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사에 베푼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하는 것이니, 어찌하여 벼슬해서 정치를 하는 것만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하는가.”라고 한 말뜻을 취한 것이다.(『論語』 「爲政」)

5) 신도반(申屠蟠)의 선견지명 : 신도반은 후한(後漢) 진류(陳留) 사람으로, 집안이 가난해 칠공(漆工)이 되었다. 군(郡)에서 주부(主簿)로 불렀지만 나아가지 않고 숨어 살면서 학문에 정진하여 오경(五經)에 두루 정통했으며, 도위(圖緯)에도 밝았다. 한나라 황실이 기울어가는 것을 보고 양(梁)나라 탕현(碭縣)에 자취를 감추고 나무에 의지하여 집을 짓고 살았으며, 태위(太尉) 황경(黃瓊)과 대장군 하진(何進)이 연이어 불러도 끝까지 나아가지 않았다.(『後漢書』 卷53 「申屠蟠傳」)

6) 천황(天荒)을 표범처럼 변화시켰네 : 완악하고 무지한 고을을 풍속이 선하며 학문을 익히는 고을로 변화시켰다는 말이다. 천황은 대과에 급제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을 두고 하는 말로, 당나라 때 형주(荊州)에서 해마다 향시(鄕試)에 합격한 공생(貢生)을 서울로 보내도 대과에 급제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므로 천황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표범처럼 변화시켰다는 것은 표범이 제 털의 문채를 변화시켜 윤택하게 하는 것처럼 고장의 사람들을 변화시켜 나날이 새로워지도록 했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 『주역』 「혁괘(革卦)·상육(上六)」의 “군자는 표범이 변하듯 하고 소인은 얼굴만 바꾼다.”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7) 우리 자중(子中) : 자중은 정유일(鄭惟一)의 자로, 이황의 제자이다. 스승이 특별히 자중이라고 부르며 아끼고 칭찬하였음을 말한다.

8) 홍 선생(洪先生) : 홍준형(洪俊亨, 1606∼1666)을 말한다. 자는 언겸(彦謙), 호는 매헌(梅軒),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651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학행으로 천거되어 1658년 선릉 참봉에 임명되고 부임하다가 모친의 병환을 구완하고자 사직하고 귀향하여 효행을 실천하였다.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역학·의약학에 조예가 깊었다. 백록리사(栢麓里祠)에 제향되었다. 2004년 송록서원(松麓書院)에 모셨다.

9) 사(社)에 제사 지내는 뜻 : 앞의(묘우 상량문廟宇上梁文, 전적典籍 이상언李尙彦) 각주 ‘한유(韓愈)가……축원하였도다’ 참조.
◦한유(韓愈)가……축원하였도다 : 거원(巨源)은 당나라 시인 양거원(楊巨源)을 말한다. 그가 70세에 치사(致仕)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한유가 그를 전송하며 지어 준 「송양거원소윤서(送楊巨源少尹序)」에 “옛날에 이른바 향선생으로 죽으면 사(社)에서 그를 제사 지낸다.”라고 한 말이 있는데, 그 지방 출신 대부(大夫)로서 벼슬에서 물러나서 시골에 내려와 서당을 세우고 학생을 가르친 사람이 죽으면 그 서당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0) 법을 읽으니 : 사시(四時)의 첫 달인 1월, 4월, 7월, 10월 초하루에 백성을 모아 놓고 법을 읽는 것[讀法]으로, 원래는 『주례(周禮)』 「지관사도(地官司徒)」에 보이는데 송(宋)나라 때 사마광(司馬光)이 시행했다고 한다.(『東坡集』 卷89 「司馬溫公行狀」)

11) 활수(活水) : 물의 근원이 있어서 항상 흘러가는 물을 말한다.

12) 광자(狂者)가……알고서 : 광자는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을 말한다. 『논어』 「선진(先進)」에 공자가 여러 제자에게 각각 그 바라는 뜻을 묻자, 증점이 “늦은 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冠)을 쓴 어른 5∼6명과 함께 동자(童子) 6∼7인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다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공자가 감탄하여 증점의 쇄락한 기상을 인정하던 일이 있다. 증점은 사(士)의 광자(狂者)라는 평이 있다.(『禮記大全』 卷4)

13) 일판향(一瓣香) : 꽃 이파리 모양의 향으로, 존경하는 분을 공경하는 뜻으로 피우는 한 조각 향이다.(『祖庭事苑』)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2020년 10월) > 용재선생유고 > 부록附錄 > 묘우 중건 상량문廟宇重建上梁文
*한국국학진흥원: https://www.koreastudy.or.kr/



●백록리사묘우상량문(栢麓里社廟宇上樑文) 역문(譯文)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유풍여운(遺風餘韻) 이백년(已百年) 동안 정하는 지내는 제사때 있는 것 같더니 천재지변을 기필할 수 없어 세 번씩이나 영우(靈宇)를 옮겨지으니 혼령이 의지함이 있을진저. 문산(文山) 남쪽이요, 사기(士冀) 북쪽이라 향중(鄕中)에 준걸(俊傑)이 많은 것이 어찌 맑은 기운의 소산이 아니며 풍속이 문명하게 화한 것은 실상 선민(先民)의 지음이라. 용재(慵齋) 이선생(李先生, 이종준李宗準)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어진 제자요, 무오사화(戊午史禍)에 명인이라. 어지럽고 탁한 세상을 만나서 나라를 빛낼 큰 일꾼이 써 보지도 못하고 한원(寒暄, 김굉필金宏弼)·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와 함께 옥과 같이 비치더니 도(道)를 강론하던 남은 향기가 오히려 생각난다. 눌재(慵齋) 이선생(李先生)은 중씨를 따라 지(篪, 형제간에 부는 악기)를 불며 수진제가(修身齊家)하는 지혜는 신도(申屠)의 선견(先見)에 합했으니 세상은 어두우나 도는 남전(藍田)의 남긴 규모에 밝았으니 거치른 지방이 변했도다. 문봉(文峯) 정선생(鄭先生)은 눌재옹(訥齋翁)의 외손이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학문이 스승에게 인정을 받고 몇 번이나 제자 중에 아름답다 칭찬을 받았으며 모든 경륜을 경악(經幄)에서 행하여 참된 학사란 칭호가 있었고 매헌(梅軒) 홍선생(洪先生)은 인륜에 돈독(敦篤)하여 효성은 하늘이 낸 바라. 순수한 마음과 지극한 행동은 옛사람에 비교해서 부끄럼이 없으니 후덕(厚德)하고 맑은 표본이라. 지나간 철인(哲人)에 짝을 해도 부족함이 없도다. 다행히도 현인(賢人)이 많이 나서 후생(後生)에 모범이 되니 사당(祠堂)에 모셔 제사(祭祀)함도 그 뜻이 여기에 있을지저. 오래전부터 사당을 같이하여 제사하니 그 소문을 듣고 일어설 자 길이 이으리라. 추가로 사양에 배양하고 제계(齊戒)하고 강론하니 성주(成周)에 끼친 뜻이 완연토다. 이미 그 사람을 높이고 그 도를 행하니 전 일 닦은 아름다운 풍속(風俗)을 잃을까 두렵다. 처음 정한 터가 마땅치 않아서 기해년(己亥年)에 언덕이 무너져 해를 입고 사당을 군청 가까이 옮겼더니 처음은 터를 잘 얻은 것 같더니 나중에 와서 뜻밖에 관(官)의 견책(譴責)을 만나서 신위(神位)와 생도(生徒)가 불안하여지니 비록 불가피한 재앙(災殃)이나 또한 사문(斯文)에 관한 변괴(變怪)라. 부로(父老)들이 분주하게 언덕에 올라서 사당 옮길 공론을 하고 겨울과 봄이 지나서 비로소 시공(施工)하고자 하니 넓은 곳이 좋으니 오지(奧地)가 마땅하니 지경이 궁벽(窮僻)한 곳이 티끌이 없을 터라. 크게 좋다 해서 착공한 지 몇 달 안 되어 준공하니 3칸 집 모양이 먼저 집 규모와 다름이 없고 첩첩한 모양이 아끼든 신비한 것을 드리는 것 같으니 참으로 목공(木工)과 모든 인사들의 성의로 이루어졌다. 그 궤(几, 신령이 의지할 제상)를 차리고 자리를 펴니 혼령(魂靈)의 척강(陟降)이 보이는 것 같다. 그 법을 따르고 그 예(禮)를 강론하니 읍양(揖讓) 하는 것이 제제(濟濟)하여 실추함이 없으니 이를 찬양하고 송덕(頌德)한다.

 

兒郞偉抛梁東。旭日初升瑞彩融。未到天中看氣像。自家元有皦如衷。
들보를 동으로 던지니
밝은 해가 처음 오름에 서광(瑞光)이 융융(融融)하여
하늘 가운데 이르기 전에 기상(氣像)이 완연하니
원래 백옥(白玉)같이 흰 충심(衷心)이 있음이라.

 

兒郞偉抛梁西。平野遙圍活水溪。識取曾狂沂上意。冠童春日好相攜。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넓은 평야(平野)가 멀리 싸였는데 시냇물만 흐르니
일찍 기상(沂上)에서 놀던 뜻을 취하여
어른과 어린이가 서로 끄는 도다.

 

兒郞偉抛梁南。栢林當日翠雲涵。更加萌孽淸朝養。未幾山光生紫嵐。
들보를 남으로 던지니
잣나무 숲이 구름 속에 잠겼더니
다시 새싹이 맑은 아침에 기는 듯하다가
미기(未幾)에 아지랑이가 난다.

 

兒郞偉抛梁北。屹屹文岡橫斗極。平時雲雨慰三農。歲暮蒼然寒一色。
들보를 북으로
던지니 높고 높은 문산(文山)이 북두(北斗)를 가로질러
구름과 비가 농사에 흡족하고
저무는 해 창연(蒼然)한 것이 찬 기운 일색이라.

 

兒郞偉抛梁上。陟降英靈同出王。明享何須一瓣香。此心千古元無障。
들보를 위로 던지니
척강(陟降)하는 영령(英靈)이 함께 출현하니
밝게 흠향(歆饗)하는 것이 어찌 한 가닥 향(香)만 기다릴까,
이 마음 천고에 마음이 없으리라.

 

兒郞偉抛梁下。思皇藹藹盈堂舍。且將周禮敦民彛。會見菁莪興小雅。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애애(藹藹)한 화기(花期)가 짐에 가득하니
장차 주례(周禮)로 백성이 떳떳함을 돈독히 하리니
청아(菁莪)를 보고 소아(小雅, 시전평명)을 일으키리라.

 

엎드려 원컨대 상량한 뒤 산신이 보호하고 지도가 밝아서 신령(神靈)도 편하고 사람도 편할 지며 비색한 운은 다 지났으니 태평운이 돌아와서 집집마다 현송지성(絃誦之聲)이 들릴지니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라 과구(科臼)와 심장적구(尋章摘句)하는 폐풍(弊風)을 씻고 효도와 공경을 행하여 떳떳함을 닦으면 뒷사람에 모범이 되고 지나간 일이 더욱 빛나리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