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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2세손 이치정] 通訓大夫行禮曹佐郎慕巖公墓碣銘(통훈대부행예조좌랑모암공묘갈명)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1. 2. 16:12

□판사공(判事公) 2세손 모암공(慕巖公) 이치정(李致禎)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②추암공(追巖公) 진강(臻剛) → 2世孫 ③모암공(慕巖公) 치정(致禎)

 

 

通訓大夫行禮曹佐郎慕巖公墓碣銘
(통훈대부행예조좌랑모암공묘갈명)
-文化 柳寅瑗 謹撰(문화 유인원 근찬)

 

故通訓大夫禮曹佐郎慕巖李公諱致禎字仲師四尺之封在於扶安治西北五里將軍峰下枕甲之原舊有碑而字刓不可讀矣公之後孫奉炯在炯斗炯福炯昌鍵深慨于此爰謨伐石改竪而問銘于余自顧寡陋不敢任人金石事而念舊誼亦未可固辭謹按公以 成廟丁未生氣宇寬洪孝友純篤自幼能知事親之節怡愉承順志軆俱養若有癠也憂形於色行不正履衣不解帶而以至復常遭其內艱也哀禮備盡鄕黨稱之才藝明敏博涉經史尤致力于爲己之學存養省察當時名碩無不追從爲乙巳擢文科行禮曹佐郎 仁廟賓天善類有彙貞之憂群小有彙征之慶公遂見機棄官歸養追岩公年逾入老耋而尙無恙公亦耆艾而作嬰兒戯不言而躬行有萬石君家法遭艱也哀毀逾制而終身匪懈以終身慕之義扁其居室以慕岩有子所謂本立而道生者若公之謂歟公之世德考位追岩墓未詳焉考諱臻剛順天府使妣淑人竹山朴氏配光山金氏墓雙墳封子敎授春城孫曾不錄噫公以終身慕之誠李篤實之學未得大闡而見機勇退可謂樂天知命而時運之不幸也夫世代旣遠而文獻莫徵可惜也己謹爲之銘曰 誠李純篤惟終身慕殫誠竭力劬勞未報見機勇退靑紫不顧戒彼樵牧式公之墓

 


●통훈대부행예조좌랑모암공묘갈명 역문
(通訓大夫行禮曹佐郎慕巖公墓碣銘 譯文)
-문화 유인원 지음(文化 柳寅瑗 謹撰)

 

공의 이름은 치정(致禎), 자는 중사(仲師)요. 경주인(慶州人)이니 월성군(月城君) 지수(之秀)의 6대손이요. 추암(追巖) 진강(臻剛)의 아들이니 성종(成宗) 18년(1487, 丁未)에 출생했다. 공은 기국(器局)이 너그럽고 효성과 우애가 독실(篤實)해서 부모의 뜻을 승순(承順)하고 봉양을 극진히 하고 병환에 정성을 다하여 시탕(侍湯)하고 집 상(喪)에 슬픔과 예(禮)를 다했으며 재주가 민첩하여 글과 사기를 박람하고 실행을 주장하므로 당시 선비들이 다 추종했다.
을사년(乙巳年)에 문과(文科)에 올라 행예조정랑(行禮曹正郎)이 되더니 소인(小人)이 득세하는 기미(機微)를 보고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서 팔순 노친을 봉양하는데 정성을 다했다. 부친 추암공(追巖公)이 별세한 후 종신(終身) 사모하는 뜻으로 기거하든 집은 모암(慕巖)이라고 이름했다. 공의 효도와 학문으로 크게 현달(顯達)하지 못하고 은퇴하였으니 운명인가 한다. 묘는 부안(扶安) 고을 서북편(西北偏) 5리 장군봉(將軍峰) 아래 갑좌(甲坐) 언덕에 있으니 옛 비(碑)가 자획(字劃)이 헤어짐으로 새로 새우려 하여 나에게 글을 청하니 삼가 새겨 이르되
효성이 지극하여 종신(終身)토록 사모했네. 정성과 힘을 다한들 깊은 은혜 갚을쏘냐. 기미(機微) 보아 물러가니 높은 벼슬아 보라. 초동(樵童)더러 이르노니 공의 묘소(墓所) 공경하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