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용재유고이종준

[慵齋遺稿] [跋] 李種杞謹跋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6. 19:11

용재유고(慵齋遺稿) / 跋


李種杞謹跋

朱子曰易爲君子謀。不爲小人謀。故聖人於易。每致其扶陽抑陰之義。如剝之君子得輿。姤之繫于金柅者是已。然君子之勝小人者常少。而小人之害君子者。固已不遺餘力。故貫魚之寵無幾。而剝床之禍已先之矣。五龍夭矯於上而不能當羸承蹢躅之孚。漢之東京禁錮。唐之白馬淸流。足以雪千古志士之涕。而於扶抑何有哉。我 朝忠良之禍。昉於癸酉而熸於戊午甲子。慵齋先生李公卽其一也。先生師友文章之盛。已日星乎東國。無庸更贅。獨其取禍之寃且慘。反有甚於濯纓寒蠧諸君子。噫善人何負於國哉。其弟訥齋公炳介石之貞而篤錦絅之章。鏡光柰城俱爲二先生腏享之所。公論之在人心可見矣。禍難之餘。文獻無徵。獨有實記一冊。如丹鳳之一羽。而諸賢之叙述已備。此可以千古矣。編且鋟。後孫杉炯甫屬余爲一言。余敬受而讀之。則范孟博之李杜齊名。慵齋有焉。申屠蟠之肥遯自晦。訥齋有焉。於乎。四百年來。天日累明。渙霈申降。凡係黨禍諸賢。雖婦孺皆知欽慕。而彼克墩子光輩之萋斐害正者。皆欲食其肉而寢處其皮。向所謂扶陽抑陰之義者。其亦久而後定矣。遂盥手而書之云。辛丑仲秋全義。李種杞 謹跋。

*출처: 용눌재집(慵訥齋集) > 跋

*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4
*참조: 한국문집총간 > 만구집 > 晩求先生文集卷之十一 > 跋 > 書慵訥實記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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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구집(晩求集)은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文集이다.
○이종기(李種杞) 1837년(헌종 3)~1902년(고종 39). 초명은 종도(種燾), 자는 기여(器汝), 호는 만구(晩求), 다원거사(茶園居士)이고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이병희(李炳熹), 곽종석(郭鍾錫)과 교유.


*만구집(晩求集). ⓒ 한국고전번역원



발문[跋] -전의全義 이종기李種杞

주자朱子가 “『주역』은 군자를 위해 도모한 것이고 소인을 위해 도모한 것이 아니다.”1)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이『주역』에 대하여 언제나 양을 부지하고 음을 억제하는 뜻을 이루었다. 예컨대 「박괘剝卦」의 “군자가 수레를 얻는다.[君子得輿]”와 「구괘姤卦」의 “쇠말뚝에 붙들어 맨다.[繫于金柅]”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2) 그러나 군자가 소인을 이기는 경우는 늘 적고, 소인이 군자를 해치는 것은 진실로 이미 여력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고기를 꿰듯 한 총애3)는 거의 없고 박상剝床의 화禍4)가 이미 먼저 발생하는 것이다. 다섯 마리 용이 위에서 기세를 떨쳐도 암퇘지가 날뛰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5) 한나라의 동경 금고東京禁錮6)와 당나라의 백마 청류白馬淸流7)는 천고에 지사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기에 충분하니, 군자를 붙들어 주고 소인을 억제하는 이치가 어디에 있었던가.
우리 조정에서 있었던 충성스럽고 훌륭한 이들이 당한 화는 계유년(1453)에 비롯하여 무오년(1498)과 갑자년(1504)에 꺼졌는데, 용재 선생 이공이 바로 화를 당한 사람 중 하나이다. 선생 사우들의 뛰어난 문장은 이미 우리나라에 해와 별처럼 찬란히 빛나니 다시 덧붙일 필요가 없다. 다만 화를 당한 원통함과 참혹함은 한훤당 김굉필이나 일두 정여창과 탁영 김일손 등의 군자들에 비해 도리어 심한 점이 있으니, 아, 선한 사람이 나라에 무슨 잘못을 하였다는 것인가.
그 아우 눌재공은 바위처럼 굳건한 곧음을 빛내었고, 훌륭한 문장을 드러내지 않기를 돈독히 하였다.8) 경광서원鏡光書院과 백록리사栢麓里社는 모두 두 선생을 제향하는 곳이니 인심에 있는 공론을 볼 수 있다. 화가 있은 뒤에 증명할 만한 문헌이 없고 오직 실기 한 책만 있어 단봉丹鳳9)의 한 개 깃과 같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서술한 것이 이미 구비되어 있으니 이는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편집하고 나무에 새긴 뒤에 후손 삼형杉炯 씨가 나에게 한마디 말을 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내가 공경히 받아 읽어 보니 범맹박范孟博이 이응李膺, 두밀杜密과 이름이 나란했던 것과 같은 경우10)는 용재에게 있었고, 신도반申屠蟠11)처럼 은둔하여 스스로 감춘 경우로는 눌재가 있다. 아, 400년 이래로 하늘의 해가 거듭 밝게 비추어 사면의 은전이 거듭 내리니 당화黨禍에 관계된 모든 사람은 아녀자들이라고 해도 모두 공경하고 사모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묘하게 얽어서 정직한 이를 해친 저 이극돈과 유자광의 무리는 모두가 그들의 살점을 먹고 그 가죽을 깔고 싶어 한다. 앞에서 말했던 양을 부지하고 음을 억누르는 뜻이 또한 오래되고 난 뒤에 정해진 것이리라. 마침내 손을 씻고 쓴다.

신축년(1901) 중추에 전의全義 이종기李種杞11)가 삼가 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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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역』은……아니다 : 장재(張載)가 『정몽(正蒙)』에서 말한 것을 주희(朱熹)가 『주역전의(周易傳義)』의 「역설강령(易說綱領)」에서 인용한 것이다.

2) 「박괘(剝卦)」의……그것이다 : 「박괘」는 곤하 간상(坤下艮上, ䷖)으로 양이 다 사라지고 상구 한 효만 남은 상이다. 이를 통해 장차 양이 다시 생길 이치를 보게 되어 있으므로, 구삼효의 “군자가 수레를 얻는다.[君子得輿]”라는 구절은 음의 기운이 아무리 성해도 양이 다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괘(姤卦)」는 손하 건상(巽下乾上, ䷫)으로, 음이 처음 생겨나는 괘인데, 음이 생겨나면 자라서 점점 성해지게 되므로 미약할 때 이를 제지해야 하는 뜻을 밝히고 있다. “쇠말뚝에 붙들어 맨다.[繫于金柅]”라고 할 때의 쇠말뚝은 견고하고 강한 것이니 굳세고 바른 양의 도로 음을 굳게 저지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3) 물고기를……총애 : 군왕이 궁인을 총애하듯 신하를 총애하는 것을 말한다. 물고기를 꿴듯 하다는 것은 물고기를 줄에 묶듯 나란히 늘어선 차례를 말하는데, 『주역』 「박괘(剝卦)·육오(六五)」에 “물고기를 꿴 것처럼 궁인이 총애를 얻는다면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貫魚 以宮人寵 無不利]”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4) 박상(剝床)의 화(禍) : 국가의 존립이 위협을 받는 위태한 상황을 말한다. 박상은 『주역』 「박괘(剝卦)」의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로, 상 다리가 부러지면서 점차 위급한 지경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5) 다섯……없어 : 소인은 미약하더라도 군자를 해치려는 마음이 있음을 말한다. 주희가 1191년 좌승상(左丞相) 유정(留正)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姤)의 때가 되어 군자의 도가 쇠퇴하면 다섯 용이 위에서 기세를 떨쳐도 일음인 어린 돼지가 날뛰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당해 내기에는 부족하다.[及其姤而消也五龍夭矯於上 而不足以當一陰羸豕蹢躅之孚]”라고 한 말이 있다.(『朱子年譜』 卷)

6) 동경 금고(東京禁錮) : 당인(黨人)의 금고(禁錮)를 이르는 말로 동경(東京)의 변이라고도 한다.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환관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진번(陳蕃)·이응(李膺) 등이 그 무리를 공격했다가 도리어 파벌을 지어 조정을 비방한다는 무고를 당하여 종신 금고에 처해지고, 영제(靈帝) 때 다시 기용된 이응 등이 환관을 몰아내려다가 실패하여 이응 등 수백 인이 피살되거나 유배되고 수감된 사건이다.(『後漢書』 「桓帝紀」, 「靈帝紀」)

7) 백마 청류(白馬淸流) : 청류는 청렴결백한 사람을 뜻한다. 당나라 때 배추(裵樞)가 주전충(朱全忠)에게 미움을 받아 농주 사호참군(瀧州司戶參軍)으로 폄척되어 나갈 적에 주전충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백마역(白馬驛)에서 죽여 시신을 백마하에 던져 버리게 한 데서 온 말인데, 이에 앞서 주전충의 비서인 이진(李振)이 주전충에게 “이들은 스스로 청류라 자칭하는 자들이니, 저 백마하에 던져서 영원히 탁류(濁流)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하자, 주전충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唐書』 卷140)

8) 바위처럼……하였다 : 지조를 돌처럼 굳게 지키면서 단호하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으며, 자신의 재 능을 숨겨 문장을 지으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9) 단봉(丹鳳) : 재덕이 출중한 인재를 비유한다. 『산해경(山海經)』 권1 「남산경(南山經)」에 “단혈이란 산에 새가 있는데, 모양은 닭과 같고 오색으로 문채가 나며 봉황이라 한다. 머리의 문채는 덕(德)이고, 날개의 문채는 의(義)이고, 등의 문채는 예(禮)이고, 가슴의 문채는 인(仁)이고, 배의 문채는 신(信)이다. 이 새는 자연의 기를 먹고 살며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춤을 추는데,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안정된다.”라고 하였다.

10) 범맹박(范孟博)이…… 경우 : 이종준이 무오사화 때 김일손·권오복 등과 함께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연루되어 죽임당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맹박은 범방(范滂)의 자로, 후한(後漢) 때 절의를 지킨 사람이다. 그가 당고(黨錮)의 화에 휘말려 죽게 되자 그의 어머니에게 영결을 고하였다. 어머니가 “너는 지금 이응(李膺), 두밀(杜密)과 명성이 같은데 죽은들 무슨 여한이 있겠느냐. 훌륭한 명성이 있고 오래 살기를 요구하는 이 두 가지를 겸할 수는 없다.”라고 하며 오히려 그 아들을 위로하였던 고사가 있다.(『後漢書』 卷67 「黨錮傳」)

11) 신도반(申屠蟠) : 후한(後漢) 진류(陳留) 사람으로, 집안이 가난해 칠공(漆工)이 되었다. 군(郡)에서 주부(主簿)로 불렀지만 나가지 않고 숨어 살면서 학문에 정진하여 오경(五經)에 두루 정통했으며, 도위(圖緯)에도 밝았다. 당고(黨錮)의 화를 미리 예견하고 양(梁)나라 탕현(碭縣)에 자취를 감추고 나무에 의지하여 집을 짓고 살았으며, 태위(太尉) 황경(黃瓊)과 대장군 하진(何進)이 연이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형 이종준이 죽임을 당한 뒤 은거한 이홍준에 비유한 것이다.(『後漢書』 卷53 「申屠蟠傳」)

12) 이종기(李種杞, 1837∼1902) : 자는 기여(器汝), 호는 만구(晩求)·다원거사(茶園居士),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류치명(柳致明)과 허전(許傳)의 문인이며, 이황(李滉)의 이기설(理氣說)을 수용하였다. 저서로는 『만구집』이 있다.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한국국학진흥원(2020.10) > 발문[跋]
*한국국학진흥원: https://www.koreastud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