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용재유고이종준

[慵齋遺稿] [附錄] 題慵齋畫[崔淑生]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6. 18:39

용재유고(慵齋遺稿) / 附錄


題慵齋畫[崔淑生]


四序平分秋最悲。蕭蕭木葉已辭枝。畫圖寫出無窮意。詩句吟成一段奇。瀑布定從天外落。松陰不覺坐來移。仙禽對我如相笑。白首塵籠棲息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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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의 그림에 화제를 쓰다1)[題慵齋畫]
앙재盎齋 최숙생崔淑⽣2)

사철 고루 나뉘었어도 가을이 가장 슬퍼  四序平分秋最悲
쓸쓸히 잎새들은 벌써 가지를 떠나누나   蕭蕭木葉已辭枝
그림은 이 무궁한 뜻을 잘도 그려 내고    畫圖寫出無窮意
시로는 한 단락 빼어난 구절 읊어 내도다  詩句吟成一段奇
폭포는 틀림없이 머나먼 곳에서 떨어지고 瀑布定從天外落
솔 그늘은 어느새 앉은 데서 옮겨 갔다    松陰不覺坐來移
선학은 날 보고 비웃는 것만 같은데        仙禽對我如相笑
비천한 몸 백발로 티끌 속에 갇혀 사누나  白首塵籠棲息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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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재의……쓰다 : 이 시는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용재집』 권2에 「그림에 제(題)하여 영원(永元)을 위해 짓다[題畫爲永元作]」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4수의 시 중에 네 번째 시이다. 이행은 당대의 문병(文柄)을 잡았던 문학의 거장(巨匠)일 뿐만 아니라 서화(書畫)에도 뛰어났던 인물이다.

2) 최숙생(崔淑生, 1457∼1520) : 자는 자진(子眞), 호는 앙재(盎齋) 또는 충재(忠齋),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492년 문과에 급제하여 판중추부사까지 올랐으나, 기묘사화로 파직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저서로는 『충재집』이 있다.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한국국학진흥원(2020.10) > 용재선생유고 > 제현이 준 시문[附諸賢投贈詩文] > 용재의 그림에 화제를 쓰다[題慵齋畫]
*한국국학진흥원: https://www.koreastudy.or.kr/



최숙생(崔淑生)
1457년(세조 3)~1520년(중종 15).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진(子眞). 호는 충재(忠齋). 최유량(崔有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저(崔渚)이고, 아버지는 최철중(崔鐵重)이며, 어머니는 이계손(李繼孫)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496년(연산군 2)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하고 수찬·지평·헌납 등을 지냈다.

1504년 응교로 있을 때 연산군이 생모에 대하여 상복을 다시 입으려 하자, 이행(李荇)과 함께 이를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그 소의 글귀가 문제되어 신계(新溪)로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그해 9월에 응교로 다시 임명되었으며, 1508년(중종 3) 문신정시(文臣庭試)에서 장원하였다.

그 뒤 대사간·대사헌을 지내고, 1518년 우찬성에 올랐다. 이듬해 사은사(謝恩使)를 거절하자 파직되었고, 곧 판중추부사로 복직되었으나 이 해 기묘사화로 다시 파직되었다. 저서로는 『충재집』이 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해동잡록(海東雜錄)』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대동야승(大東野乘)』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7419


[容齋集] 題畫。爲永元作。四首。

山花爛熳柳交陰。春色如今深復深。獨鶴相忘不飛去。高人却掃絶參尋。平生未了歸來約。老去猶存湖海心。對此還疑出塵界。嗒然時復一長吟。

月色中天如許明。此間更着竹風淸。固知世上無玆興。誰信琴中有古聲。歸去與君成契闊。滄浪容我濯冠纓。紛紛褦襶何須數。觸熱黃塵滿面生。

四序平分秋最悲。蕭蕭木葉已辭枝。畫圖寫出無窮意。詩句吟成一段奇。瀑布定從天外落。松陰不覺坐來移。仙禽對我如相笑。白首塵籠棲息卑。

歲晩窮廬雪正深。四山松檜壓沈沈。候門稚子能迎客。乘興幽人更抱琴。不可無詩供一詠。還應有酒要同斟。對渠非夢復非幻。路斷剡溪何處尋。

◈용재집(容齋集)은 용재(容齋) 이행(李荇)의 文集이다.
○이행(李荇) 1478년(성종 9)~1534년(중종 29).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 창택어수(滄澤漁叟), 청학도인(靑鶴道人),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문정(文正)이고 개시는 문헌(文獻)이다. 박은(朴誾) 등과 교유.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한국문집총간 > 용재집 > 容齋先生集卷之三 > 七言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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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제(題)하여 영원(永元)을 위해 짓다. 4수(四首)

산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버들은 우거져 / 山花爛熳柳交陰
봄빛은 지금 바야흐로 깊고 또 깊구나 / 春色如今深復深
외로운 학은 물아를 잊은 채 날지 않고 / 獨鶴相忘不飛去
고아한 사람은 집안 쓸고 왕래를 끊었다 / 高人却掃絶參尋
전원에 돌아갈 약속 평생 못 이루었지만 / 平生未了歸來約
늙어 가매 여전히 호해의 마음 간직했어라 / 老去猶存湖海心
이를 보노라니 외려 티끌세상 벗어날 듯 / 對此還疑出塵界
우두커니 앉았다 때로 길게 시를 읊조린다 / 嗒然時復一長吟

중천에 뜬 저 달빛 저리도 밝은데 / 月色中天如許明
여기에 또 맑은 대숲의 바람까지 부누나 / 此間更着竹風淸
세상에 이러한 흥 다시 없는 줄 알지만 / 固知世上無玆興
거문고 속에 옛 소리 있음을 뉘라서 믿으랴 / 誰信琴中有古聲
전원으로 돌아간 그대 만나기 어려우니 / 歸去與君成契闊
푸른 물결에 혹 내 갓끈 빨 수 있을는지 / 滄浪容我濯冠纓
패랭이 쓰고 길 떠남을 따져 무엇하랴 / 紛紛褦襶何須數
더위 속에 누른 티끌이 얼굴에 가득해라 / 觸熱黃塵滿面生

사철이 고루 나뉨에 가을이 가장 슬퍼 / 四序平分秋最悲
쓸쓸히 잎새들은 벌써 가지를 떠나누나 / 蕭蕭木葉已辭枝
그림은 이 무궁한 뜻 잘도 그려 내고 / 畫圖寫出無窮意
시는 일단의 기이한 구절 읊어내도다 / 詩句吟成一段奇
폭포는 틀림없이 하늘 밖에서 떨어지고 / 瀑布定從天外落
솔 그늘은 어느새 앉은 자리서 옮겨 갔다 / 松陰不覺坐來移
고상한 새는 날 대하고 마치 웃는 듯 / 仙禽對我如相笑
비천한 몸 백발로 티끌 속에 갇혀 사누나 / 白首塵籠棲息卑


세모라 외진 오두막에 눈은 몹시 쌓여 / 歲晩窮廬雪正深
사방 산에 솔과 노송 가지 눌려 처졌어라 / 四山松檜壓沈沈
문을 지키는 아이놈 손을 잘도 맞이하고 / 候門稚子能迎客
흥을 탄 그윽한 사람 다시 거문고 안누나 / 乘興幽人更抱琴
이 풍경 읊조릴 시 없어선 안 되겠고 / 不可無詩供一詠
응당 술 있으리니 함께 잔을 기울여야겠다 / 還應有酒要同斟
그를 대하니 꿈도 아니요 생시도 아니니 / 對渠非夢復非幻
길 끊어진 섬계를 어드메로 찾아서 갈꼬* / 路斷剡溪何處尋

*그를 …… 갈꼬 : ‘그’는 그림 속의 인물을 가리키는 듯하다. 진(晉)나라 왕자유(王子猷)가 눈 내리는 밤에 섬계(剡溪)에 있는 대안도(戴安道)가 생각나서 작은 배를 타고 찾아갔다가 정작 그곳에 도착해서는 문 앞에서 다시 돌아오기에 그 까닭을 물었더니, “내가 본래 흥에 겨워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는 것이니, 대안도를 보아 무엇하겠는가.” 하였다는데, 이 시로 제(題)한 그림이 이 고사를 소재로 하였던 듯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1998
고전번역서 > 용재집 > 용재집 제3권 > 칠언율(七言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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