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용재유고이종준

[慵齋遺稿] [附錄] 書仲勻畫[金濯纓]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6. 18:50

용재유고(慵齋遺稿) / 附錄


書仲勻畫[金濯纓]

姜士浩以詩求仲勻梅竹眞。仲勻分梅竹二種。配雪月風煙作八幅。以畫筆書八分四字以標之。又和士浩詩廿四韻。竝寫八分。封寄予送士浩。予持之抵士浩家。値士浩將南行。展看嘖嘖。徘徊不能去者半日。乃欲糊以綺羅。粧作障子。幷和詩其頭。以爲沒齒之翫。縱歲月育子孫。不願游也。予哂焉。謂士浩曰。君詩足以獲仲勻此畫。仲勻畫亦足以得君詩。其詩其畫。又副其畫。可繼三絶。宜君之好之入骨也。然仲勻之爲此戲也久。世之索於仲勻者不多。旣索而好之如君者亦罕。吾嘗嘲君以文雅之饞子。其信矣夫。余不知書畫。猶能以精神會其妙。書畫詩文。殆一樣胸中之土苴也。胸中無所有。何能發其華耶。觀其雪嚲枝幹。月傳香影。風高葉蕊。煙隱色艶。有寂寥底灑落底爽塏底疏淡底意思。坐我八幅中。不知身入仲勻之胸中矣。噫。吾仲勻乎。使爾生乎吾前。常有不同時之歎也。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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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준(李宗準)의 그림과 강사호(姜士浩)의 시가 적힌 병풍에 대해 김일손(金馹孫)(1464-1498)이 쓴 글.
강사호가 이종준을 매화와 대나무에 비유하여 시를 짓자 이종준이 매화·대나무·눈·달·바람·연기 등을 소재로 8폭의 그림을 그려 강사호에게 보여줄 것을 김일손에게 부탁하였는데‚ 강사호는 그림을 보자 예정되어 있던 여행을 취소하고 그 자리에서 8폭의 병풍을 만들었으며 앞머리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적어 넣으니 그림에 아주 알맞은 시였다.
병풍 앞에 앉아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종준의 마음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듯 앞에 이종준이 곁에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함께 있지 못함을 아쉬워한다고 적었다.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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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집(濯纓集)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文集이다.

○김일손(金馹孫) 1464년(세조 10)~1498년(연산군 4).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자(濯纓子), 이당(伊堂), 운계은사(雲溪隱士), 소미산인(少微山人), 영귀학인(咏歸學人), 와룡초부(臥龍樵夫), 반계거사(磻溪居士),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김굉필(金宏弼)ㆍ정여창(鄭汝昌)ㆍ남효온(南孝溫) 등과 교유.

*참조: 한국문집총간 > 탁영집 > 濯纓先生文集卷之一 > 雜著 > 書仲匀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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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한국문집총간 > 목계일고 > 木溪先生逸稿卷之二 > 附錄 > 書仲匀畫[金馹孫 季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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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일고(木溪逸稿)는 목계(木溪) 강혼(姜渾)의 文集이다.
○강혼(姜渾) 1464년(세조 10)~1519년(중종 14),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자(木溪子), 동고자(東皐子).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김일손(金馹孫)ㆍ권오복(權五福) 등과 교유.


중균의 그림에 쓰다[書仲匀畫]
탁영濯纓 김일손⾦馹孫


강사호姜士浩1)가 시로 중균에게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부탁하였다. 중균은 매화와 대나무의 두 종류로 나누고, 눈 내린 뒤의 달이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여덟 폭을 만들고, 그림 그리는 붓으로 팔분서八分書2) 네 자로 표제를 하였다. 또 사호의 24운 시에 화답하고 아울러 팔분서로 써서 봉하여 내게 부쳐 사호에게 주게 하였다. 내가 그것을 가지고 사호의 집에 도착했더니 마침 사호는 남쪽으로 길을 떠나려는 중이었다. 사호가 그림을 펴 보고는 감탄하면서 배회하며 반나절이나 떠나지 못하고, 비단으로 배접하여 가리개를 만들려고 하였다. 아울러 그 앞부분에 시로 화운하고 “평생 감상할 작품으로 여겨 세월이 흘러가서 자손을 기르게 되어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라고 하였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사호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시는 중균의 이 그림을 얻기에 충분하고, 중균의 그림 또한 그대의 시를 얻을 만하오. 그 시에 맞는 그 글이고, 또 그 그림에 부합하여 삼절三絶(시·서· 화)을 이었다고 할 만하니, 그대가 뼈에 사무치도록 좋아할 만하오. 그러나 중균이 이러한 유희를 한 지 오래되면 세상에서 중균을 찾는 자가 많지 않을 것이고, 이윽고 찾더라도 그대처럼 좋아할 자도 드물 것이오. 나는 일찍이 그대가 문아文雅를 탐하는 사람이라고 조롱하였는데 아마도 참말일 것이오.

나는 서화를 모르지만 정신으로 그 신묘함을 알 수 있다면 서화나 시문이란 가슴속에 있는 일개 찌꺼기와 거의 같을 것이다.3) 그러나 가슴속에 간직한 것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러한 아름다운 작품을 지어낼 수 있겠는가. ‘눈이 나뭇가지를 휘게 하다.[雪嚲枝榦]’와 ‘달이 향기로운 그림자를 전하다.[月傳香影]’와 ‘바람이 꽃잎 위에 드높이 불다.[風高葉蕊]’와 ‘연기가 아름다운 빛을 숨기다.[煙隱色艶]’를 살펴보면 적막하고 깨끗하며 상쾌하고 소담한 뜻이 있어서, 나를 여덟 폭 속으로 들어가 어느덧 중균의 가슴속에 들어가게 한다. 아, 우리 중균이여. 그대를 내 앞에 태어나게 하였더라면.4) 늘 같은 때에 나지 않았다는 탄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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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사호(姜士浩) : 사호는 강혼(姜渾, 1464∼1519)의 자이다. 호는 목계자(木溪子),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1486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김일손에 버금가는 문명(文名)이 있었다. 중종 때 벼슬하여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며, 저서로는 『목계집』이 있다.

2) 팔분서(八分書) : 서체 중 예서의 일종이다.

3) 서화나……것이다 : 서화나 시문이란 도의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장자』 「양왕(讓王)」에 “도(道)의 진수를 가지고 내 몸을 기르고, 도의 나머지를 가지고 국가를 다스리고, 그 쓸모없는 찌꺼기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린다.”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4) 그대를……하였더라면 :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훌륭한 후생(後生)이라는 말이다. 한유(韓逾)의 「사설(師說)」에 “나보다 앞에 태어나 도를 들은 것이 진실로 나보다 앞이라면 내가 따라서 그를 스승으로 모신다.”라는 말이 있다.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한국국학진흥원(2020.10) > 용재선생유고 > 제현이 준 시문[附諸賢投贈詩文] > 중균의 그림에 쓰다[書仲匀畫]
*한국국학진흥원: https://www.koreastud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