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용재유고이종준

[慵齋遺稿] [附錄] 和慵齋賡佔畢齋近體韻。[權睡軒 五福]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6. 18:27

용재유고(慵齋遺稿) / 附錄


和慵齋賡佔畢齋近體韻。[權睡軒 五福]

天驥從來不受撾。鹽車奈此道途賖。郞潛猶繫淵明印。謫降休誇力士靴。珪組幾縻天下士。菟裘將卜爾東家。朅來贅幕情懷惡。竹外蟬聲替暮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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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睡軒集] 和仲鈞賡佔畢近體韻 佔畢。文簡公金宗直齋號

天驥從來不受撾。鹽車奈此道途賖。郞潛猶繫淵明印。謫降休誇力士靴。珪組幾縻天下士。菟裘將卜爾東家。朅來贅幕情懷惡。竹外蟬聲替暮笳。

◈수헌집(睡軒集)은 수헌(睡軒) 권오복(權五福)의 文集이다.
○권오복(權五福) 1467년(세조 13)~1498년(연산군 4)
자는 향지(嚮之), 호는 수헌(睡軒)이고 본관은 예천(醴泉)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김일손(金馹孫)ㆍ강혼(姜渾) 등과 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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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가 점필재의 시를 이어 지은1) 시에 화답하여[和慵齋賡佔畢齋韻]
수헌睡軒 권오복權五福

천리마는 원래 채찍질을 받지 않는 법이건만      天驥從來不受撾
소금 수레는 어찌된 일인가 길은 멀기도 머네     鹽車柰此道途賖
낮은 벼슬로 아직 연명의 인끈을 차고 있으니2)   郞潛猶繫淵明印
적선인은 역사에게 신발 벗긴 일 떠벌리지 마소3) 謫降休誇力士靴
높은 벼슬자리로 천하 선비 몇을 맬 수 있으랴     珪組幾縻天下士
늙어 귀향할 곳 장차 저 동쪽 집으로 정하리라    菟裘將卜爾東家
더부살이 막사로 돌아오니 마음은 서글픈데       朅來贅幕情懷惡
대숲 너머 매미 울음 저녁 피리 소리 대신하네    竹外蟬聲替暮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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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점필재(佔畢齋)의……지은 : 김종직이 지은 시는 『점필재집』 권13에 「9월 18일 새벽에 안곡역으로 나가 절도사를 맞이하고 시를 지어 정강수에게 주다[九月十八日曉赴安谷驛迎節度使有作贈鄭剛叟]」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2) 연명(淵明)의……있으니 : 낮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아직도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연명은 도잠(陶潛)의 또 다른 이름인데, 그가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을 때 마침 군(郡)의 독우(督郵)가 현(縣)을 순시하게 되었다. 아전이 도잠에게 의관(衣冠)을 갖추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하자, 탄식하며 “나는 다섯 말 쌀의 하찮은 녹봉 때문에 허리를 굽혀서 향리(鄕里)의 소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하고, 팽택 영이 된 지 겨우 80여 일 만에 현령의 인끈을 풀어 던지고 전원으로 돌아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어 자신의 뜻을 부쳤다.
3) 적선인(謫仙人)은……마소 : 적선인은 이백(李白)을 말한다. 이백이 처음 장안(長安)에 들어갔을 때 하지장(賀知章)이 그를 만나 그가 지은 문장을 보고는 감탄하여 “그대는 ‘귀양 온 신선[謫仙人]’이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역사(力士)는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환관 고 역사(高力士)를 말한다. 이백이 「청평사(淸平詞)」를 지을 때 고 역사를 시켜 신을 벗기게 한 적이 있다.(『唐書』 卷202 「李白列傳」)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2020년 10월) > 용재선생유고 > 제현이 준 시문[附諸賢投贈詩文] > 용재가 점필재의 시를 이어 지은 시에 화답하여[和慵齋賡佔畢齋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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