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一) 94

通訓大夫醴泉郡事西坡先生安公墓碣銘 幷序

通訓大夫醴泉郡事西坡先生安公墓碣銘 幷序 晦軒夫子。倡道東方。嘉惠後學。仁深而德厚。源遠而流長。子孫至六七世而金玉滿朝。卿相布列。有若西坡先生諱理以。晦軒之孫。獨以盛滿爲戒。胎屣名利歸梓鄕。時則端廟遜矣。獨抱幽貞超然自靖。其義與六臣不甚相遠。其後孫克軆祖訓。世世業儒。不求聞達貤爵之典。不及於泉壤俎豆之儀。亦毁於一時。則今於四百年之後。何能想傷其潛光隱德之萬一哉後孫宗熙敎煥敎德等。方營改碣訪余。囑以顯刻詩。自顧廢蟄絶筆久矣。而均是爲先竊有所感於心者。謹按而敍之。安氏系出順興。文成公晦軒夫子爲六世祖。五世祖諱于器。順平君。文順公。號屋子。高祖諱牧。順興君。文淑公。號謙齋。曾祖諱元崇、順成君。文惠公。祖諱瑷。刑曹典書謚景質。考諱宗約。海州牧使贈吏曹判書。妣貞夫人東萊鄭氏。蓬原府原君良度公諱良女。癸酉。先生生于瑞原舊第。風儀俊偉字量宏深。伯仲兩兄俱登貴顯。獨不樂仕進。杜門讀書。以探賾蘊奧爲務。..

서파(西坡) 안리(安理) 묘갈명병서(墓碣銘幷序)

西坡 安理 墓碣銘幷序 晦軒夫子 倡道東方 嘉惠後昆 仁深而德厚 源遠而流長 子孫至六七世 而金玉滿朝 卿相布列 先生獨以盛滿之戒 脫屣名利 歸臥梓鄕 聿修大祖之遺緖 永奠儒家之基業 蔚爲一代之矜式 百世之模範 時則端廟遜位矣 獨抱幽貞 而超然自靖於深山草樹之間 其義與六忠之成仁 錦城之殺身 不甚相遠矣 其後孫僻在嶺外 克軆迺祖之訓 世世業儒 不求聞達 貽爵之典 不及於泉壤 俎豆之儀 亦毁於一時 則今於四百年之後 何能想象其潛光隱德之萬一哉 後孫宗熙敎煥敎悳等 方營改碣 以其先祖大君師傅順原君之狀 訪余於曉山樵舍 屬以顯刻詩 自顧廢蟄絶筆 久矣 而均是爲先 竊有所感於心者 謹按狀而叙之 先生諱理 西坡其號也 安氏系出順興 文成公晦軒夫子爲六世祖 五世祖諱于器 順平君文順公 號竹屋子 高祖諱牧 順興君文淑公 號謙齋 曾祖諱元崇順成君文惠公 祖諱瑗刑曹典書 恭愍壬申 言事忤旨而流 外入我朝..

[세종실록] 사헌부에서 비리를 저지른 지양근군사 이종직에 대한 치죄를 건의하다

세종실록 40권, 세종 10년 4월 7일 기미 2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宣德) 3년 사헌부에서 비리를 저지른 지양근군사 이종직에 대한 치죄를 건의하다 ○司憲府啓: "知楊根郡事李從直, 多養蜂蜜, 典守者若耗一升, 徵米一斗, 以抑賣民間, 又私用還上剩穀, 又打孕婦墜胎。 請杖一百、刺字。" 命除刺字。 사헌부에서 계하기를, "지양근군사(知楊根郡事) 이종직(李從直)이 꿀벌을 많이 기르면서, 맡아 지키는 자가 만약 꿀 한 되를 소모하면 쌀 한 말을 징수하도록 하여 민간에 강제로 팔았으며, 또 환자곡[還上穀]의 남은 곡식을 사용(私用)하였고, 또 임신한 부녀자를 구타하여 낙태하게 하였습니다. 청컨대 장 1백에, 자자(刺字)에 처하게 하소서." 하니, 자자는 면제하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3책 40권 1장 B..

[세종실록] 안국이 이종직을 고소한 것은 과죄하고 이종직의 아들이 안국을 고소한 것은 물리치라고 명하다

세종실록 39권, 세종 10년 3월 19일 신축 4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宣德) 3년 안국이 이종직을 고소한 것은 과죄하고 이종직의 아들이 안국을 고소한 것은 물리치라고 명하다 ○楊根敎導安國, 訴知郡事李從直不法事于監司及憲府, 從直之子, 亦訴安國犯法事。 憲府具國與從直罪, 請照律, 上曰: "從直則將按律科罪, 國則從直之子怨其告父而訴之, 例不當聽理。 立法之時, 大司憲適在外, 不知而誤啓, 其改之。" 양근(楊根)의 교도(敎導) 안국(安國)이 지군사(知郡事) 이종직(李從直)의 법에 어그러진 일을 감사(監司)와 헌부(憲府)에 고소(告訴)하고, 종직(從直)의 아들도 또한 안국이 법을 범한 일을 고소(告訴)하므로, 헌부(憲府)에서 안국과 이종직의 죄를 형률에 의거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종직은 장차 형..

[세종실록] 풍천 들에서 몰이하고 저녁에 삼기에 이르러 머무르다

세종실록 34권, 세종 8년 10월 8일 무진 1번째기사 1426년 명 선덕(宣德) 1년 풍천 들에서 몰이하고 저녁에 삼기에 이르러 머무르다 ○戊辰/驅楓川平, 至蘆田還, 晝停于楓川, 京畿監司趙賚來謁。 賜江原道監司鄭孝文、都事文承祚衣各一領。 夕次于三歧, 府使李從直來謁。 分賜隨駕宗親駙馬及宰樞六代言酒殽, 下逮軍士, 以至賤者。 풍천(楓川) 들에서 몰이하고 노전(蘆田)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낮참에 풍천에서 머무르니, 경기 감사(京畿監司) 조뇌(趙賚)가 와서 뵈었다. 강원도 감사 정효문(鄭孝文)과 도사(都事) 문승조(文承祚)에게 각각 옷 한 벌씩을 하사(下賜)하였다. 저녁에 삼기(三岐)에 이르러 머무르니, 부사(府使) 이종직(李從直)이 와서 뵈었다. 어가(御駕)를 따르는 종친과 부마(駙馬) 및 재추(宰樞)·대언(代..

[태종실록] 대가가 순성에 이르다. 홍주 목사 우홍강 등이 알현하니, 찰방 전흥의 죄를 청하다

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 2월 11일 갑술 1번째기사 1416년 명 영락(永樂) 14년 대가가 순성에 이르다. 홍주 목사 우홍강 등이 알현하니, 찰방 전흥의 죄를 청하다 ○甲戌/駕至蓴城, 洪州牧使禹洪康、判官李從直謁見于行宮。 察訪田興等請犯令越境之罪, 原之。 대가(大鴐)가 순성(蓴城)에 이르렀다. 홍주 목사(洪州牧使) 우홍강(禹洪康)과 판관(判官) 이종직(李從直)이 행궁(行宮)에 알현(謁見)하매, 찰방(察訪) 전홍(田興) 등이 영(令)을 범하고 월경(越境)한 죄를 청하였으나 용서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12장 A면 【국편영인본】 2책 103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602011_001

[영가지(永嘉誌)] 金地村, 裵尙志, 李繩直, 判司僕正贈參判裴尚志墓, 大司憲李繩直夫人裴氏墓, 生員李時敏

경북 유형문화재 제224호 영가지(永嘉誌)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유산 검색 > 영가지(永嘉誌) *국역 출처: 유교넷. 한국국학진흥원.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 영가지 서지 종목: 경북 유형문화재 제224호 명칭: 영가지및책판(永嘉誌및冊板) 시대: 조선 선조 41년(1608)~대한제국(1899) 수량: 일괄(13책) 분류: 목판본/사간본 지정일: 1986.12.11 소유자: 권오기,권기백 소재지: 경북 안동시 문화재형태: 선장 형태서지: 1. 영가지 永嘉誌 - 조선 선조 41년(1608), 1책(冊).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 21.8cm×18.0cm, 유계(有界), 반엽(半葉) 8행(行) 19자(字),주쌍행(注雙行),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2.0cm×2..

선조고가선대부대사헌부군가장(先祖考嘉善大夫大司憲府君家狀)

先祖考嘉善大夫大司憲府君家狀 (선조고가선대부대사헌부군가장) -訥齋 李弘準 撰(눌재 이홍준 찬) 府君諱繩直子繩平系月城新羅佐命大臣李謁平之後也考大護軍蔓實祖司僕判事元林曾祖四宰貞烈公揆高祖三重大匡月城君之秀府君生於宣德戊午旣長有學行始以進士又擢生員筮仕 世宗朝以淸白見重位至二品居家莅官喜怒不形 家有應門小奴以滌器不潔覆飯于溝婢僕入告淑人裵氏必待朝退而懲之具告其由乃曰此可取而不可怒也陋何食焉第視之當爲忠奴府君下世後終裵氏之世皓首幹家果有功焉 又牧楊州有一員疎薄其妻聲失行訴狀自前等覈未得情下車之初首擧重獄爲先鞠之婢僕及子息招辭各異以爲疑獄其夫妻同囚獄廡隙房今一該事衙奴及解文老吏密守璧外必有相詰言語細記以告果夜半妻謂夫曰汝欲棄我雖不官誰能止之必以惡名加我使所生子女不得擧顔於鄕閭乎在獄中所生者亦非爾子乎何薄行之至是耶應曰 旣發狀事至如此今若變辭則重罪及我余亦悔不可追也吏俱記始末夜半人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