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인물 과거 240

호부낭중공(戶部郞中公) 이금서(李金書)

호부낭중공(戶部郞中公) 이금서(李金書) 中原太守 戶部郞中으로 始仕高麗하다. 配 慶州金氏 敬順王 溥의 三女라. 敬順王이 納土入朝하니 高麗太祖 - 妻以長女樂浪公主하고 比神鸞하야 賜號其宮하다. ○麗初에 李開 - 亦以慶州之李로 爲陜川戶長하야 仍貫 江陽은 陜川屬縣也라. *1987년 경주이씨 대종보 [벼슬이 중원태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이니 처음으로 고려에 벼슬했다. 배(配)는 경주김씨(慶州金氏)니 경순왕(敬順王) '김부(金溥)'의 3女요. 고려태조(高麗太祖)의 외손(外孫)이다. 호(號)는 신란궁 부인(神鸞宮夫人), 경순왕(敬順王)이 땅을 바치고 입조(入朝)하니 고려태조(高麗太祖)가 장녀(長女) 낙랑공주(樂浪公主)로써 아내를 삼게하고 신란(神鸞)에 비하여 그 궁(宮)을 이름했다. ○고려초(高麗初)에 '이개..

병부령공(兵部令公) 이금현(李金現)

병부령공(兵部令公) 이금현(李金現) 兵部令○新羅 法興王이 置兵部令하고 大阿餐角干이 爲之得兼宰相하다. 羅麗習俗에 父子襲名하니 如權幸子仁幸과 襲直子直達是也라 公之父子가 以金字名이 恐是此例인저 *1987년 경주이씨 대종보 [병부령(兵部令).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이 병부령(兵部令)을 두어 대아찬(大阿餐), 각간(角干)의 벼슬로 재상(宰相)을 겸직(兼職)토록 하였다. 아들이 금서(金書)인데 신라(新羅)와 고려(高麗) 풍속(風俗)에 부자(父子)의 이름자를 같이 하였으니 권행(權幸)의 아들이 인행(仁幸)이요, 공직(共直)의 아들을 직달(直達)이라고 함과 같다. 公의 父子가 금(金)자로 이름을 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준례(準例)라 할 것이다.]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 蘇判○新羅官制에 蘇判은 惟眞骨受之하고 唐의 令狐澄新羅記에는 新羅貴族을 謂之骨이라 하다. 始祖以下는 失系하고 李牧隱이 撰益齋墓誌할새 只載蘇判以下하다. *1987년 경주이씨 대종보 [소판(蘇判). ○신라관제(新羅官制)에 소판(蘇判)은 오직 진골(眞骨)만이 갖고 당(唐)의 영호징 신라기(令狐澄新羅記)에는 신라귀족(新羅貴族)을 이르되 골(骨)이라 하였다. 시조이하(始祖以下)는 계보(系譜)를 잃어버렸으므로 이목은(李牧隱) 익재 묘지(益齋墓誌)에 글을 지을 때 다만 소판공(蘇判公) 이하(以下)만 실었다.]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 이거명(李居明)은 경주 이씨(慶州 李氏)의 중시조이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문하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찬한 이제현 묘지문(墓地文)에 ..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 삼국시대 신라 초기 사로6촌의 하나인 알천양산촌의 족장.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시조로서 초기 사로육촌(斯盧六村) 중의 하나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이었다. 하늘에서 강림하여 표암봉(瓢嵓峯)에 내려왔다고 한다. 사로국에는 6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급량부(及梁部)·사량부(沙梁部)·점량부(漸梁部)·본피부(本彼部)·한기부(漢岐部)·습비부(習比部)이다. 이 중 알천양산촌에 해당하는 것은 급량부로 신라의 국가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부락이다. 급량부의 성(姓)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한데 박씨(朴氏) 또는 김씨로 비정하고 있다. 6부(部)에 이(李)·정(鄭)·손(孫)·최(崔)·배(裴)·설(薛)이라는 성의 비정은 중국식 성을 후세에 붙인 것으로, 알평이 경주이씨의 시조라는 것은 ..

경주이씨 주요 인물

경주이씨 주요 인물 이(ㄱ) 이(ㄴ~ㅂ) 이(ㅅ) 이갑성(李甲成) 1889~1981. 일제강점기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 호는 연당(硏堂). 1919년 최연소자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민족독립선언서에 서명.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 회장. 제2대 민의원에 당선. 국민회(國民會)의 최고위원에 추대. 자유당 최고위원에 임명. 33인유족회장·국산부흥회장. 건국훈장 대통령장. 이개립(李介立) 1544(중종 39)~1625(인조 2).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의 의병장. 자는 대중(大中 혹은 大仲), 호는 성오당(省吾堂)·역봉(櫟峰). 대호군(大護軍) 이욱(李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이선동(李善童)이다..

독립운동가 연당공(硏堂公) 이갑성(李甲成)

독립운동가 연당공(硏堂公) 이갑성(李甲成) 1889~1981 독립운동가. 3.1운동 민족대표의 한 사람. 호는 연당(硏堂). 1915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최연소자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1인으로 서명, 학생 중심의 시위운동을 주도하고 태화관(泰和館)을 중심으로 전단 살포의 중책을 맡고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옥고(獄苦)를 치렀다. 1931년 신간회사건(新幹會事件)으로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고, 1940년 귀국하여 흥업구락부시건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1945년 해방을 맞아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의 회장이 되었고 1947년 김규식(金奎植) 등과 과도입법의원으로 활동했다. 뒤에 33인유족회장 국산부흥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5년에 광복회장에 취임하여 독..

의병장 산은현감공(山隱縣監公) 이개립(李介立)

의병장 산은현감공(山隱縣監公) 이개립(李介立) 1544(중종 39)~1625(인조 2)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자는 대중(大中) 호는 성오대(省吾臺).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으로 군량미의 조달에 공이 컸다. 자여(自如)·낭천(狼川) 현감에 이어 산은(山隱)현감에 임명되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개립(李介立) 1546년(명종 1)~1625년(인조 3)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중(大中 혹은 大仲), 호는 성오당(省吾堂)·역봉(櫟峰). 대호군(大護軍) 이욱(李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이선동(李善童)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준(李竣)이며, 어머니는 예천권씨(醴泉..

충청남도관찰사공(忠淸南道觀察使公) 이건영(李健榮)

충청남도관찰사공(忠淸南道觀察使公) 이건영(李健榮) 1853~1940 부통령 이시영의 형. 음사(蔭仕)로 진출, 금광(金鑛)에 관여하여 1885년에 삭주·벽동의 금광을 그가 전담하여 채굴했다. 일등군사(一等軍司)·경리국과원·법무회계국장·탁지부사세국장·토지소관법기초위원·전기철도사무사판위원등을 거쳐 정령(正領. 지금의 대령)에 이른 군인이다. 1907년에 충청남도관찰사가 되고 이어서 중추원 찬의에 임명되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건영(李健榮) 대한제국기 전기철도사무사판위원, 충청남도관찰사, 중추원찬의 등을 역임한 관료. 본관은 경주(慶州). 음서(蔭敍)로 관계에 진출, 1883년(고종 20) 일본인과 공동명의로 경상남도 창원의 금광채취허가..

독립운동가 이겸호(李謙浩)

독립운동가 이겸호(李謙浩) 1895~1942. 한말의 독립운동가 1910년에 만주로 건너가서 이상룡·이시영·김동삼 등과 독립운동기지건설에 참여했고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수료하고 서로군정서에 가담했다. 1925년 이후 국내에 잡입하여 독립자금책으로 활동하다가 두 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1980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겸호(李謙浩) 1895년(고종 32) ~1942년. 일제강점기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명 석(石). 경상북도 영덕 출신. 1910년 만주로 건너가 이상룡(李相龍)·이시영(李始榮)·김동삼(金東三) 등과 독립운동기지건설에 노력하였다. 1918년 유하현 삼원보(柳河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