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눌재공◆이홍준

[라디오북클럽] "자기 묘비명을 쓴 옛 선비들" - <내면기행> 심경호 지음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2. 14:19
2011/9/29 [라디오북클럽] "자기 묘비명을 쓴 옛 선비들"
- <내면기행> 심경호 지음


자기 묘비명을 쓴 옛 선비들

웰다잉 운동의 하나로 ‘유서쓰기’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서를 쓰면서 탄식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데요, 아마도 천 년을 살 것처럼 욕심 부리고, 자신만 챙기며 살아오다가 문득 그런 나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이겠지요.

옛사람들은 죽음의 허무를 극복하려면 영원히 썩지 않을 세 가지를 이루라고 했습니다. 즉 덕을 쌓고 공을 이루고 진실한 말을 하는 이 세 가지야말로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사람들은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쓰는 풍습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살아 있는 동안 자기의 묘표(墓表)와 죽은 이의 행적을 적는 묘지(墓誌)를 적고, 스스로를 애도하는 만시를 지은 것이지요. 중국에서 문인들 사이에 일었던 풍습이었지만 우리나라도 적어도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는 조선 시대 선비 50여 명의 묘지를 소개하면서 동양의 현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았으며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고, 죽음 뒤의 구원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죽음의 문제를 깊이 성찰할 수 있었고 달관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학문을 이루고 권세를 얻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혹은 한순간에 영락하여 초라하기 그지없는 최후를 맞이하기도 하면서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는 어느 시점에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묘비명을 쓰는 일은 죽음을 준비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보자는 마음가짐일 수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일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적어 내려간 묘비명 한 편 한 편 읽어보자니 어느 글이나 인생에 대한 예찬과 허무함, 업적의 공과에 대한 성찰과 아쉬움과 한탄이 짙게 느껴지지만 그중에 무명씨나 다름없는 선비 이홍준(李弘準)의 묘지가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재주 없는데다/덕 또한 없으니/사람일 뿐./살아서는 벼슬 없고/죽어서는 이름 없으니/혼일 뿐./근심과 즐거움 다하고/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남은 것은 흙뿐.(自銘, p.381)”

내 묘비명에는 어떤 글이 쓰일까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 뿐입니다.

오늘의 책, 심경호의 <내면기행>(이가서)입니다.

*YTN Radio [라디오북클럽] "자기 묘비명을 쓴 옛 선비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