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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추부사공(知中樞府事公) 이희무(李喜茂) 행장(行狀)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3. 10:27

□지중추부사공(知中樞府事公) 이희무(李喜茂)

○字는 화중(和仲). 병자(丙子) 9月27日生. 경술(庚戌) 9月12日卒. 壽 95. ○墓는 금치(金峙) 선비묘석강(先妣墓石岡)에 경좌(庚坐). 등무과(登武科)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행회근례(行回巹禮) 유행장(有行狀).
○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광주안씨(廣州安氏) 을해(乙亥) 12月16日生. 경술(庚戌) 5月19日卒. 壽 96. ○墓는 쌍분(雙墳) 동지(同知) 세길(世佶)의 女. 祖 증이참(贈吏參) 식(軾). 曾祖 증승지(贈承旨) 호겸(好謙). 外祖 평양조씨(平壤趙氏). *1987년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



知中樞府事公行狀(지중추부사공행장)
–族人(족인) 承雨(승우) 撰(찬)

昔王魯齋曰太平之人仁仁者必壽仁之爲德壽之爲福大於窮宙人所能難求擉於此太平之鄕者東日之照元氣之會而粤自檀箕以來文物學敎冠於天下謂以仁壽之域逮令 聖作五百年間仁義道德之士壽福康寧之人燦然復興著於耆社錄於人瑞者是則王公之鑑於後人固不遠矣西湖古稱多文學經濟之士而當仁不讓有德必隣亦有斯人也夫按公天稟端雅自守儉約能盡孝友之道雖處燕閒廣施仁愛之風所言所行只是義理上文字而己嘗於座右題夫子三計圖以訓諸子以伊川四勿箴撿律其身至於婢僕輩不加鞭箠而使之以恩鄕黨宗族如有窘迫則周急恤竆施之以厚此莫非仁孝中出來者也仁爲四端之首孝爲百行之源人皆鮮能於此而公獨有之以享遐壽回巹禮之日吉得榮職之天賜振振子孫趨庭獻壽仁必壽善必慶實孚乎是則鄒訓之三達尊禹範之九五福爲公頌焉公爲誰卽月城李喜茂字和仲先祖吏判諱蔓實之後同樞贈戶曹參判弘迪之子也妣贈貞夫人南陽洪氏有華女公生於丙子九月二十七日卒于庚戌九月十一日卒享年九十五墓金峙先塋負庚原配貞敬夫人廣州安氏同知世佶女乙亥十二月十八日生庚戌五月十九日卒壽九十六有五男一女男長彦重通德次彦培郡守出系次彦愼縣監出系次彦白通德次彦鳳女南陽洪弼猷其餘內外雲仍總不能盡記贊曰
仰淑氣之鍾靈兮崢嶸氣質尙君子之㦤德兮冰淸玉潔享百歲之遐壽兮恩榮天職回吉禮之慶席兮鴈飛旭日儀寶樹之成列兮福履善積


*慶州李氏鼎珉錄 v2 (泰炯 編輯)


●지중추부사공행장(知中樞府事公行狀) 역문(譯文)
   -족인(族人) 승우(承雨) 찬(撰)

옛날 왕노재(王魯齋) 이르기를 ‘태평한 사람은 어질고 어진 사람은 수(壽)를 한다’ 하였으니 어진 것이 덕(德)이 됨과 수(壽)하는 것이 복(福)이 됨이 우주 간에 제일 큰일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얻기가 가장 어려운 일인데 여기에 태평한 지방은 동쪽 해가 비치고 원기가 모이는 곳이니 저 멀리 단군(檀君) 기자(箕子) 뒤에 문물과 학교가 천하에 으뜸이 되어서 인(仁)하고 수(壽)하는 지방이라 하더니 지금 성인이 난지 5백 년 동안 인의도덕(仁義道德)이 선비와 수복강녕(壽福康寧)한 사람이 다시 많아져서 나라 기사(耆社)에 기록되고 인서(人瑞)에 수록되니 왕공(王公)의 윗사람을 거울질 한 것이 멀지 않도다. 서호(西湖)는 옛날부터 문학(文學)의 선비와 경제적 인물이 많아서 어진 것을 보면 내 것으로 만들고 덕을 보면 이웃으로 삼았으니 또한 이 사람일진대 공은 천품(天稟)이 단정하고 스스로 검소함을 지적하며 능히 효도하고 우애하는 도리를 다하고 널리 어질고 사랑하는 풍습을 베풀어 말하며 행하는 바가 의리에 맘도록 할 뿐이라. 항상 방 오른쪽에 공자의 삼계도(三計圖)를 써 붙이고 자제들을 훈계했고 정이천(程伊川)의 사물잠(四勿箴)을 써서 자기 일신의 행동을 견제했으며 비복(婢僕)을 부리는데도 처벌 대신 사랑으로 하고 마을과 족친(族親) 중에 군색한 일이 있을 때는 궁하고 급한 것을 구분하니 이것이 모두 어질고 효심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 인(仁)이란 사단(四端)의 머리요, 효(孝)는 백행(百行)에 근원이 되어 사람마다 행하기 어려운데 공은 능히 행하며 높은 수(壽)를 누렸고 회혼(回婚) 잔칫날 증직(贈職)까지 받고 무성한 자손들이 헌수(獻壽)하는 잔을 드려서 어진 자는 반드시 장수하고 착한 사람은 경사를 본다는 옛말이 허언이 아닌즉, 맹자(孟子)가 말씀한 삼달존(三達尊, 수덕작壽德爵)과 홍범(洪範)에 오복(五福, 수부壽富, 강녕康寧, 유호攸好. 덕고德考, 종명終命)은 공은 누구인고.
월성(月城) 이희무(李喜茂)로 자는 화중(和仲)이니 이조판서(吏曹判書) 휘 만실(蔓實)의 후손이요, 동지중추(同知中樞)로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홍적(弘迪)의 아들이라. 비(妣)는 정부인(貞夫人) 남양홍씨(南陽洪氏) 유화(有華)의 따님이니 공이 병자(丙子) 9월 27일에 출생하고 경술(庚戌) 9월 11일에 졸하니 향년(享年)이 95요. 묘는 금치선영(金峙先塋) 경좌(庚坐)리.
배(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광주안씨(廣州安氏)니 동지세길(同知世佶)의 따님이라. 을해(乙亥) 12월 18일에 출생하여 경술년(庚戌年) 5월 19일에 졸하니 수(壽)가 96이라. 5남 1녀를 생하니 장남에 언중(彦重)이니 통덕(通德)이요, 다음이 언배(彦培)니 군수(郡守)로 출계하고 다음이 언신(彦愼)이니 현감(縣監)으로 출계하고 다음은 언백(彦白)은 통덕(通德)이요, 다음은 언봉(彦鳳)이요, 딸은 남양(南陽) 홍필유(洪弼猷)에 출가하고 나머지 내외손(內外孫)은 다 기록지 못한다. 찬왈(贊曰)
밝은 기운이 신령함이여 높은 기질이 태어났다. 군자의 떳떳한 덕을 숭상함이여 얼음과 같이 밝고 구슬과 같이 깨끗하도다. 백세(百歲)의 높은 수(壽)를 누림이여 천직(天職)의 영화를 누렸도다. 회혼(回婚) 하는 경석(慶席)에 전안(奠鴈) 하는 밝은 날이로다. 훌륭한 자손이 뜰에 늘어서니 착한 일 쌓은 집에 복(福)이 왔도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