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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은공(農隱公) 이경달(李景達) 행력(行歷)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3. 10:07

□농은공(農隱公) 이경달(李景達)

○字는 여백(汝伯) 號는 농은(農隱). 정조계묘(正祖癸卯) 7月18日生. 고종병인(高宗丙寅) 7月11日卒. 수(壽) 84歲. 公이 자품(姿稟)이 경개(耿介)하고 극술정훈(克述庭訓)하야 이치지화(以致之和) 흡이자부인(洽而慈夫人) 십여년침질(十餘年沉疾)에 삼일지간(三日之間)을 내왕백리(來往百里)하야, 운행력이원용부절(運行歷而遠用不絶)하며 우어보숙부삼상(又於譜叔父三喪)에 자능진례(自能盡禮)하니 일향칭찬(一鄕稱讚)이라. 사적(事蹟)이 재홍계공(載鴻溪公)으로 효실기(孝實記)하고 참의이공유석(參議李公裕奭)이 찬묘지이재금석록(撰墓誌而載金石錄)하다. ○墓는 도곡촌(道谷村) 전신기평(前新基坪)에 자좌(子坐).
○配는 연안김씨(延安金氏) 첨추(僉樞) 진욱(振郁)의 女. 병오(丙午) 9月15日生. 기유(己酉) 2月4日卒. ○墓는 평지산선조하(平地山先兆下)에 묘좌(卯坐).
○配는 장수황씨(長水黃氏) 계원(繼源)의 女. 기유(己酉) 5月1日生. 신해(辛亥) 12月16日卒. ○墓는 도곡촌(道谷村) 전신기평(前新基坪)에 임좌(壬坐). ○配는 광주안씨(廣州安氏) 지(墀)의 女. 순조병인(純祖丙寅) 7月10日生. 고종계미(高宗癸未) 1月17日卒. ○墓는 공묘태폄(公墓台窆). *1987년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



農隱公墓誌銘(농은공묘지명)
–族人(족인) 吏曹參議(이조참의) 裕奭(유석) 撰(찬)

夫士之懷寶者不得於朝則山林而己故子陵耕於富春邵南隱於桐栢高尙其志而名與日月爭光此古君子卓然風致而後世淸節之流所仰慕者也湖南固士大夫之林藪隱居行義於其中者磊落相望而竊惟農隱公之潛德㦤範儘乎其多上於人也夫公姓李諱景達字汝伯貫慶州農隱其號也金紫光祿月城君諱之秀後簪組聯綿名碩相禪至參奉諱希白爲公五代祖高祖諱處仁號雙梧以學行顯揚曾祖諱東尹隐德王考諱宗赫號鴻溪以孝著聞考諱光澤妣江華魯氏邦翰女公稟性惇厚儀容端雅自在懷抱脗合跪乳之狀方其齠齔便有反哺之志得一美果懷之歸獻見諸珍味藏以復進陸橘任榔曾肉王鯉古猶今矣盡此誠孝出於天賦非勉強之爲而稍長孝思彌篤慈夫人十數年宿患具羮獻於長時以供適口貰竹瀝於百里用治腸胃每夜祈天願以身代精誠所感終獲差復之慶天年有限竟失怙恃前後居廬攀栢之痛風樹之懷聲澈九霄思慕終身之喪克盡如在之誠且推事親之孝廣之於一門諸叔父三喪竭力於營葬盡誠於祥事與其弟震達友愛尤篤同一室六十年怡怡相樂塤唱箎和周之常棣田之紫荆猶未足喩其意而撫育羣從弟之幼孤不失棗柳之期勸勉諸子姪之講學以成金玉之琢其所積累之蔭宏遠之慮有非能言之士所能及也公之德行以孝友敦睦爲齊家之道以寬仁愛恤爲持身之節儉於自奉厚於施人州閭鄕黨莫不敬服園翁溪友亦皆稱賞嗚呼惜哉有具無時未得薦揚于 王廷而屏居山林一簞瓢飮自樂其貧五畝農桑不改其操則嚴子風董生行亦可想聞於百世不乎若乃家庭繼述之蹟己具於鴻溪公三孝實紀炳炳乎如丹靑昭昭然若日星余何敢復贅公生於 正廟癸卯七月十八日考終于 當宁丙寅七月十一日享年八十四葬于金莊楸下負乙原元配延安金氏僉樞振郁女無育再配長水黃氏繼遠女生四女長適全州崔振爀次適全州崔奎澈次適南原楊在烈次適慶州金從奇三配廣州安氏墀女生二男一女男曰承雨能雨女適南原梁之沃承雨娶碧珍李氏明峻女無育再娶漆原尹氏成均生員載鶴女生二男三女男曰相錫相穆能雨娶濟州高氏命玉女生二男一女男曰相耉相珉幷幼至外裔亦不盡數總略干人銘曰
月城古家曰有人焉琳瑯氣質玉樹精神孝友得兼才德具全根天至誠粤自冲年萱闈叫楚一病十霜泣筍孟宗叩冰王祥左右刀圭就養無方北向祈斗有乎金縢既喪考妣誠極廬墓慕切終身祭必如在諸叔情事竭力主之輕財喜施安貧樂道君子懿範百行源源鴻溪餘風松齋遺韻襲勳家庭繼承不墜柴桑靖節桐栢高士名配山巘百世仰止積善餘慶降康自天誌于壙石永壽其傳


*慶州李氏鼎珉錄 v2 (泰炯 編輯)


●농은공묘지명(農隱公墓誌銘) 역문(譯文)
   -족인(族人) 이조참의(吏曹參議) 유석(裕奭) 찬(撰)

선비가 포부는 있으나 벼슬을 못하면 산수(山水)뿐이라. 고로 엄자릉(嚴子陵)이 부춘산(富春山)에서 밭을 갈았고 소남(邵南)이 동백(桐栢)에 숨었으니 그 뜻을 숭상하고 그 이름은 일월(日月)과 같이 빛을 돋으니 이것은 다 옛날 군자(君子)들의 높은 행실이고 후세(後世) 청절(淸節)한 사람들의 사모하는 바라. 호남(湖南)은 사대부(士大夫)의 소굴로 그 중에도 숨어 살면서 의리를 행한 사람도 상당수 있는데 오직 농은공(農隱公)의 은덕(隱德)의 범위는 많은 선비 위에 이을진저.
공의 성은 이씨(李氏)요, 휘는 경달(景達)이며 자는 여백(汝伯)이요, 관은 경주(慶州)로 농은공(農隱公) 그 호다. 금자광록(金紫光祿) 월성군(月城君) 휘 지수(之秀)의 후손이다. 벼슬이 대를 이었으며 명현거유(名賢巨儒)가 서로 바라보더니 참봉(參奉) 휘 휘백(希白)은 공의 5대조요, 고조의 휘는 처인(處仁)이요, 호는 쌍오(雙梧)니 학행(學行)으로 현양(顯揚)하고 증조의 휘는 동윤(東尹)이니 은덕(隐德)이 있었고 조부의 휘는 종혁(宗赫)이요, 호는 홍계(鴻溪)니 효행(孝行)으로 드러났고 고의 휘는 광택(光澤)이요, 비(妣)는 강화노씨(江華魯氏) 방한(邦翰)의 따님이다.
공은 품성(稟性)이 돈후(惇厚)하고 용모가 단정하며 품 안에 있을 때부터 끌어안자 젓을 먹는 것 같았고 이를 갈 나이에 벌써 반포(反哺)의 뜻이 있어 맛이 좋은 과일을 보면 품에 품고 와서 부모께 드리고 맛좋은 음식을 보면 갈무려 놓았다가 다시 부모님께 드리니 육적(陸績)의 귤과 증자(曾子)의 고기와 왕상(王祥)의 잉어와 고금(古今)이 같다. 이러한 효성은 하늘이 냄이요 억지로 할 수 없다. 장성해서는 효심이 더욱 돈독하여 모부인(母夫人)이 십수 년 병환에 입에 맞는 음식을 끊지 않으며 백 리밖에 가서 죽력(竹瀝)을 빌려다가 위장(胃腸)을 치료하고 밤마다 하늘에 기도하여 자기 몸을 대신코자 빌었으며 정성이 지극하여 병환의 차도를 보았으나 천명(天命)이 다하여 마침 양친(兩親)을 작별 후로 거상(居喪) 3년에 반백지통(攀栢之痛)과 풍수지회(風樹之懷)는 그 슬픈 소리 하늘에 사무치니 종신토록 부모를 생각하고 부모에 하는 효심을 문중(門中) 숙부(叔父)에까지 미루어 초종장사(初終葬事)에 힘을 다해 돕고 그 동생 진달(震達)로 우애를 더욱 돈독히 하여 60년을 한 방에 동거하면서 이이화락(怡怡和樂)하고 어린 종제(從弟)들을 무육(撫育)하고 배움을 권장하니 그 쌓은 음덕(陰德)과 원대한 생각은 말만 잘하는 사람들의 따를 바 아니라.
공의 덕행은 효우돈목(孝友敦睦)으로 집 다스리는 방법으로 하고 관인애휼(寬仁愛恤)로 몸을 가지는 절목으로 하여 자기를 위하여는 검소하나 남에게 베푸는데 후하니 고을과 마을이 모두 경복(慶福)하고 농부 어부도 다 칭송하니 아깝다, 준비해 놓고도 때를 만나지 못하여 조정에까지 알려지지 못해서 산림(山林)에 숨어 살며 한 도시락 한 표주박의 물로 가난을 즐거움으로 삼고 농사짓고 누에를 쳐서 그 지조를 변하지 않으니 엄자(嚴子)의 풍(風)과 동생(董生)의 행실이 백세(百世) 후에 생각할까. 가정교훈을 계승한 공적은 홍계공(鴻溪公) 삼효자실기(三孝子實紀)에 기록되어 단청(丹靑)같이 빛나고 일월(日月)같이 밝으니 내 감히 무슨 군말을 하리오. 공이 졍묘(正廟) 계묘(癸卯) 7월 18일에 출생하여 병인(丙寅) 7월 11일에 졸하니 향년(享年) 84세다. 금장산하(金莊山下)를 좌 언덕에 안장하다.
원배(元配)는 연안김씨(延安金氏) 첨추(僉樞) 진욱(振郁)의 따님이니 무후(無後)하고 계배(繼配)는 장수황씨(長水黃氏) 계원(繼遠)의 따님이니 4녀를 생하여 장녀는 전주(全州) 최진혁(崔振爀)과 다음은 전주(全州) 최규철(崔奎澈)과 남원(南原) 양재열(楊在烈), 경주(慶州) 김종기(金從奇)에 출가했고 삼배(三配)는 광주안씨(廣州安氏) 지(墀)의 따님으로 2남 1녀를 생하니 남은 승우(承雨)·능우(能雨)요, 여는 남원(南原) 양지옥(梁之沃)에 출가했으며 승우(承雨)는 벽진이씨(碧珍李氏) 명준(明峻)의 따님에게 장가들었으나 무후(無後)하고 칠원윤씨(漆原尹氏) 성균생원(成均生員) 재학(載鶴)의 따님에 재취(再娶)하여 2남 3녀를 생하니 남은 상석(相錫)·상목(相穆)이요, 능우(能雨)는 제주고씨(濟州高氏) 명옥(命玉)의 따님에 장가들어 2남 1녀를 생하니 남은 상구(相耉)·상민(相珉)이다. 어리고 외손은 다 기록 못 하고 약간만 기록한다.
명왈(銘曰) 월성이씨(月城李氏) 옛집에 사람이 있으니 구슬 같은 기질이요, 옥수(玉樹) 같은 정신이라. 효우(孝友)를 겸했으며 재덕(才德)이 구전(具全)이라. 근천지(近天地) 효성(孝誠)은 어린 나이부터라. 모친은 병환이 10년이 넘으니 맹종(孟宗)의 대순[筍]이요, 왕상(王祥)의 얼음 속의 잉어라. 좌우(左右)로 약을 써도 천명(天命)에 어이하리. 북(北)을 향해 북두칠성(北斗七星)에 비니 금등(金縢, 주공周公이 빌은 곳)이 증거로다. 부모를 잃은 후에 여묘(廬墓)에 정성을 다했도다. 종신토록 부모를 생각하고 제사 때는 부모가 계신듯하다. 모든 삼촌 일에도 힘을 다해 주선하고 제물(祭物)을 흩어 베풀기를 좋아하니 가난한 것을 근심치 않고 도(道)를 즐기다 군자(君子)의 떳떳한 모범은 백행(百行)에 근원이라. 홍계선생(鴻溪先生) 유풍(遺風)이요, 송재공(松齋公)의 음덕(陰德)이라, 가정에서 받은 훈계 계승하여 끊지 않네. 시상(柴桑)에 정절(靖節)이요, 동백(桐栢)에 고사(高士)로다. 높은 이름 산악(山岳)과 같으니 백세(百世)에 우러른다. 적선여경(積善餘慶)이 만복(萬福)이 자천(自天)이다. 광석(壙石)에 새겨서 길이 전하기를 바란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