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一)/대사헌공이승직

대사헌공(大司憲公) 이승직(李繩直)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0. 16:24

대사헌공(大司憲公) 이승직(李繩直)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이원림(李元林)의 손자이며 이만실(李蔓實)의 아들로 이량(李亮)의 딸과 혼인하였다.

1410년(태종 10) 태종이 광탄(廣灘)에 행차했을 때 호군(護軍)으로 수행하였다. 이듬해 장령(掌令)이 되었으며, 1412년 박저생(朴抵生)과 그의 계모 곽씨(郭氏)가 가산 때문에 쟁송(爭訟) 했던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하여 지의주사(知宜州事)로 좌천되었다. 1425년(세종 7) 양주부사(楊洲府使)를 지냈고 1427년에는 공조(工曹)‧형조참의(刑曹參議)를 거쳐 1429년 대사헌(大司憲)에 임명되었다. 대사헌을 역임하던 1430년에는 명에 가는 사신에게 감찰(監察)을 파견하여 소지하고 있는 금물(禁物)을 수검(搜檢)해야 한다는 소(疏)를 올렸다. 또 공신천첩(功臣賤妾)의 소생을 충의위(忠義衛)에 소속시키는 조치를 반대하는 소를 올려 족속의 분별을 밝혀 명분의 엄격함을 제시하기를 바랐다.

또한 조말생(趙末生)이 노비를 함부로 점유하고 토지를 약탈하며, 뇌물을 받고 관직을 임명한다고 비판하고 그 장오죄(贓汚罪)를 논하였다. 이 해 10월 숙선옹주(淑善翁主)가 영평군(鈴平君) 윤계동(尹季童)과 집터 문제로 분쟁이 있었는데, 사헌부에서는 보통 부녀의 일로 소송을 단순히 마무리하여 한성부(漢城府)에 넘겨버렸다. 이 일이 문제가 되어 의금부(義禁府)에 갇히기도 하였다.

아들 이물민(李勿敏)은 1444년(세종 26) 갑자식년문과(甲子式年文科)에 정과(丁科) 14등으로 급제하여 한림(翰林)을 지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太宗實錄
世宗實錄


*출처: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이승직(李繩直)

1378(우왕 4, 무오) ~ 1431(세종 13, 신해)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 경주(慶州). 경주 출생. 이조판서(吏曹判書) 만실(蔓實)의 자로 송도(松都)에서 출생했다. 생원(生員)ㆍ진사시(進士試) 합격하여 태종(太宗) 때에 순금사호군(巡禁司護軍)ㆍ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하고, 세종(世宗) 때에 양주부사(楊州府使)ㆍ공조(工曹)ㆍ형조참의(刑曹參議)ㆍ경상감사(慶尙監司)ㆍ대사헌(大司憲)을 역임했다. 재임시 청렴하고 밝은 정사를 펴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뽑히었다. 경기도 포천(抱川)에 살다가 만년에 처향(妻鄕 : 栢竹堂 裵尙志의 사위임)을 따라 서후(西後) 금계리(金溪里)로 옮겨와 살았다.

◎참고문헌 : 永嘉誌ㆍ慶州李氏譜



대사헌공(大司憲公) 이승직(李繩直)

○대사헌공파조(大司憲公派祖)
대사헌(大司憲).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字는 승평(繩平). ○1378년 무오(戊午, 우왕禑王 4)生 사마시(司馬試)에 급제(及第)하고 특배사헌부장령(特拜司憲府掌令). 태종(太宗) 11년 신묘(辛卯)에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세종(世宗) 2년 경자(庚子) 문과(文科)에 올라 양주목사(楊州牧使)를 거쳐 경상도관찰(慶尙道觀察)로 재임시(在任時) 국옥(鞠獄)의 명단(明斷)과 경륜(經倫)에 밝고 청백(淸白)함이 당세(當世)에 으뜸이라 세종(世宗) 9년 정미(丁未)에 형조참의(刑曹參議)로 세종(世宗) 11년 을유(乙酉)에 특배대사헌(特拜大司憲)에 올라 격무(激務)로 인한 신허(身虛)로 누차 사직소(辞職疏)를 올렸으나 불윤(不允)하시니 결국 악성(惡性)의 배창(背瘡)으로 세종(世宗) 12년 경술(庚戌) 11월 5일 53歲를 일기(一期)로 대중(臺中)에서 종세(終世)하시니 세종(世宗)께서도 고기반찬을 금(禁)하시고 치상관(治喪官)을 보내시어 치상범절(致喪凡節)을 돌보게 하셨다. ○경상도관찰사시(慶尙道觀察使時) 종부인(從夫人)하야 소자광주이거우금계촌(所自廣州移居于琴溪村)이나 반장우양주지동(返葬于楊州池洞)하여 실전(失傳)으로 배씨묘(裵氏墓) 좌상(左上) 삼위합설(三位合設) 제단(祭壇)하니 ○단비명(壇碑銘)은 문소(聞韶) 김응환(金應煥)이 지음. 진양서원(津陽書院) 배향(配享).
○配는 정부인(貞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 감정(監正). 증호조판서(贈戶曹判書) 량(亮)의 女. 전서(典書)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의 계손(係孫)의 孫女. 生4男1女.
○配는 정부인(貞夫人) 흥해배씨(興海裵氏). 려조(麗朝)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두문동(杜門洞) 칠십이(七二賢)의 일현(一賢)으로 숙종조(肅宗朝) 증자헌대부(贈資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 백죽당(柏竹堂) 상지(尙志)의 女. 生1男.
○墓는 안동(安東) 금계(琴溪) 사망(仕望,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묘좌유단갈(卯坐有短碣) 갈명찬(碣銘撰). 유훈(遺訓)으로 육전(六典)에 대한 상소문(上疏文) 2편이 있음.

*출처: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