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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10세손 홍계공 이종혁] 鴻溪李公墓誌銘(홍계이공묘지명)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4. 22. 23:09

□판사공(判事公) 10세손 홍계공(鴻溪公) 이종혁(李宗赫)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公) 사강(思剛) → 2世孫 ②연와공(蓮窩公) 말손(末孫) → 3世孫 유경(有慶) → 4世孫 ①선공감공(繕工監公) 순년(舜年) → 5世孫 ②화남공(華南公) 여격(汝格) → 6世孫 系子 동지중추부사공(同知中樞府事公) 춘영(春榮) → 7世孫 ①인담공(林潭公) 희백(希白) → 8世孫 ②쌍오당공(雙梧堂公) 처인(處仁) → 9世孫 ①임덕공(林德公) 동윤(東尹) → 10世孫 ①홍계공(鴻溪公) 종혁(宗赫)

 

 

鴻溪李公墓誌銘(홍계이공묘지명)
-禮判(예판) 成原黙(성원묵) 撰(찬)

 

公即洛下人也浮沉半世事功無所著見而歿然其在世也自卿大夫之貴皆曰斯人也章甫韋布之老皆曰某甫其少者皆曰某丈婦孺之無知輿臺之蜀賤皆曰某公望之若山斗愛之如親戚是豈但門闌之美而威德之高而致之哉惟公檏古曠淡孝養進善之道忠厚退讓之心汎愛仁親之義卓然有古君子遺風餘韻即之者心醉聞之者懷感淺㴱雖殊名譽無差及其歿也人無知不知而莫不同聲而惜之相吊而悲之至于墓木已拱而人之慕之彌遠而彌不能忘者盖以彝性所同自有孚感而然矣公之曾孫承雨謀壽石之誌具狀請余余莫以不文辭之謹按公姓李諱宗赫字和仲號鴻溪月城人 麗忠宣朝參理諡貞烈曰揆后縣監曰汝格五世孫也曰春榮贈右尹曰希白參奉曰處仁號雙梧以德行著聞即公三代祖也曰東尹曰崔氏公考若妣也曰癸卯十月初五日曰辛亥十一月十二日公生卒也曰姜氏公配也曰金莊鰲山向辛原公墓也公幼而異凡容儀端正而有安和之色志氣靜肅而無抱東之勤孝友敦睦出於天性旣冠曰輒謁于廟躳自掃庭每遇先忌肅將虔事及其外憂朝夕哀奠如孺子慕三年盧墓哀動傍人事崔夫人貧無資采於山漁於水咸適甘旨之供昏以定晨以省不違勤誠之節如有不豫色則下氣怡聲務悅慈顔其平居也德性溫正雖在燕閒之中惰慢之容不說於體鄙悖之言不出於口使人莫不敬重由是士有勤獎之善邑有米肉之饋雖愚夫愚婦孩童賤隷競稱孝子家而間有獻養之供者皆以德之致之也豈以阿私而然哉後丁內憂哀號攀擗執喪如禮又於廬墓克盡其誠嗚呼公之德孝非人所及也公之子有曰松齋公之孫有曰農隱亦以孝聞人古之云是祖是孫止於此夫公生五男一女曰光運松齋曰光澤曰光潤曰光國曰光植光運生一男一女曰寅達光澤生二男一女曰景達農隱曰震達光潤生二男一女曰廷達曰興達光國生二男三女曰孝達曰啓達出繼光植生二男三女曰五達曰世達寅達生二男二女曰夏雨曰商雨景達生二男五女曰承雨曰能雨震達生三男曰元雨曰時雨曰海雨廷達生二男曰賛雨曰信雨出繼興達生二女取廷達子信雨爲嗣孝達生二男二女曰陽雨曰漢雨五達無嗣世達生一男一女曰聖雨至玄孫皆幼其外裔則未及笄井總不枚擧者亦四十餘人銘曰
孝源百行人啓鮮能純乎天至得見於公徵請輿誦有乎斯彰竹子桐孫不盡其風誠極有感善必餘慶

 


●홍계이공묘지명(鴻溪李公墓誌銘) 역문(譯文)
-예판(禮判) 성원묵(成原黙) 찬(撰)

 

공은 낙하(洛下) 사람이라 반세기 동안 세상에 살다가 아무 공적도 없이 죽었으나 그 세상에 살아있을 때 공경대부(公卿大夫)의 귀한 신분으로도 이 사람 모씨(某氏)라도 존칭을 하고 늙은이는 모씨(某氏) 어린이는 모(某) 어른이라 하며 무지한 부녀자와 미천한 항간에 사람들도 아무 공(公)이라 하여 높이 보기를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이하고 사랑하기를 친척과 같이 생각하니 이 어찌 한 문중(門中)의 아름다운 일 아니리요. 위엄이 있다 해서 될 일이 또한 아니로다. 공은 순박한 옛날 군자와 같이 부모에 효도하고 착한대 나아가는 도리와 매사에 충후(忠厚)하여 사양지심(辭讓之心)과 널리 사랑하고 어진 이를 찬하는 의리가 옛날 군자(君子)의 덕(德)이 있어 공과 직접 대하면 마음이 복종되고 듣기만 해도 마음이 감동되니 깊고 얕은 것은 비록 다르나 그 명예는 차등이 없고 그 사후에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아깝다 하여 문상을 마치고 슬퍼하더니 묘소에 심은 나무가 아름이 된 오늘날까지 잊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느낀 바가 있어 그러함이라. 공의 증손 승우(承雨)가 묘소에 비(碑)를 세우고자 나에게 비문(碑文)을 청하니 내가 사양할 수 없어 아래와 같이 쓰노라.
공의 성은 이씨(李氏) 휘는 종혁(宗赫) 자는 화중(和仲) 호는 홍계(鴻溪)니 월성인(月城人)이라. 고려(高麗) 충선왕(忠宣王) 때 벼슬 참리(參理)로 시(諡)는 정렬(貞烈) 규(揆)의 후손이요. 현감(縣監) 여격(汝格)의 5대손이며 휘 춘영(春榮)은 증(贈) 우윤(右尹)이요, 휘 희백(希白)은 참봉(參奉)이요, 휘 처인(處仁) 호 쌍오(雙梧)는 덕행(德行)으로 소문이 높았으니 공의 고조·증조·조부 3대요, 휘 동윤(東尹)과 최씨(崔氏)는 공의 양친(兩親)이라. 계묘(癸卯) 10월 초 5일에 공이 나고 신해(辛亥) 11월 12일에 공이 졸하고 강씨(姜氏)는 공의 배위(配位)요, 금장오산(金莊鰲山) 신좌(辛坐)는 공의 묘소라.
공이 어릴 때부터 범인(凡人)과 달라 용모가 단정하고 안정되고 회가(和氣) 있는 모양이며 뜻과 기(氣)가 고요하고 엄숙하여 부지런하고 효우(孝友) 돈목(敦睦)이 천성(天性)에서 나고 장성하여 사당(祠堂)에 참배하고 사당 뜰을 매일 같이 청소하며 선재 제삿날이 오면 엄숙하고 삼가더니 부친상을 당하여 아침저녁 상식에 슬퍼하기를 어린 아들이 부모 생각하는 것과 같이하며 3년 시묘(侍墓)에 슬퍼함이 남을 감동하게 했으며 모 부인을 섬김에 가난하여 산에 가서 사냥하고 물에 가서 고기 잡아 입에 맞는 음식을 제공하며 혼정신성(昏定晨省)을 게을리 아니하고 부모가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기운을 낮추고 소리를 화하게 하여 어머니를 즐겁도록 노력하고 평상시에도 덕성(德性)이 온자(溫慈)하고 장대하여 조용한 여가에도 게으른 빛을 보이지 않고 저속한 말은 입에 담지 않으니 사람들이 공경하고 중히 여겨 선비들은 권장하고 천인들로 쌀과 고기를 들이니 어리석은 부부와 어린이 천인(賤人)들까지 효자라고 다투어 부르며 음식가지 가져오니 공의 덕화(德化)가 아니랴.
뒤 모친상을 당하여 애통 과례(過禮)하고 또 여막(廬幕)과 묘소에 그 정성을 다하니 공의 덕효(德孝)는 사람마다 따를 수가 아니라 공의 아들에 송재(松齋)가 있고 손자에 농은(農隱, 경달景達)이 있어 다 효행(孝行)으로 소문이 높으니 옛말에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 하더니 공의 집을 말함일진대 공의 5남 1녀를 낳으니 장(長)에 광운(光運)이니 송재(松齋)고 다음이 광택(光澤)·광윤(光潤)·광국(光國)·광식(光植)이라. 광운(光運)은 1남 1녀를 생하니 남은 인달(寅達)이요, 광택(光澤)은 2남 1녀를 생하니 경달(景達) 호는 농은(農隱)이요, 다음이 진달(震達)이요, 광윤(光潤)은 생 2남 1녀하니 장에 정달(廷達)이요, 다음이 흥달(興達)이요, 광국(光國)은 생 2남 3녀하니 장에 효달(孝達) 다음이 계달(啓達)인데 양자(養子) 갔고 광식은 2남 3녀를 낳으니 오달(五達)과 세달(世達)이며 인달(寅達)이 생 2남 2녀하니 장에 하우(夏雨)·상우(商雨)요, 경달(景達)이 생 2남 5녀하니 승우(承雨)와 능우(能雨)요, 진달(震達)이 생 3남하니 장에 원우(元雨)·시우(時雨)·해우(海雨)요, 정달(廷達)이 생 2남하니 찬우(賛雨)·신우(信雨)는 출계(出系)요, 흥달(興達)은 생 2녀하여 정달(廷達)의 아들 신우(信雨)를 양자(養子)하고 효달(孝達)은 생 2남 2녀하니 양우(陽雨)·한우(漢雨)요, 오달(五達)은 무후(無後)하고 세달(世達)은 1남 1녀하니 성우(聖雨)요, 현손(玄孫)은 다 어리고 딸들은 대개 시집을 안 갔고 여기에 기록 못 한 수가 40여 인이라.
명왈(銘曰) 효(孝)는 백행(百行)에 근원이니 사람마다 행하기 어렵고 하늘이 낸 순수한 효자(孝子)는 공에 보았도다. 모든 사람이 송덕(頌德) 하니 그 자취가 더욱 빛이 난다. 아들과 손자에 그 유풍(遺風)이 다하지 않으니 정성이 지극하면 감동함이 있고 착한 일을 하면 경사가 있으리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