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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재공 1세손 황산도찰방공 이덕장] 黃山道察訪慶州李公墓道竪碣告由文(황산도찰방경주이공묘도수갈고유문)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1. 24. 22:01

□눌재공(訥齋公) 1세손 황산도찰방공(黃山道察訪公) 이덕장(李德璋)

 

【계대(系代)】 ③눌재공(訥齋公) 이홍준(李弘準) → 1世孫 황산도찰방공(黃山道察訪公) 덕장(德璋)

 

 

黃山道察訪慶州李公墓道竪碣告由文
(황산도찰방경주이공묘도수갈고유문)
–代傍孫作(대방손작)

 

恭惟府君質粹才敏慵訥古宅樂有名門內承庭訓外受師詮倜儻老氣超邁不群早試擧業稟在爲親其在京師草䟽幾陳時値昏朝朝著紛紜不在其位縮首緘唇懷寶莫售澤而不川世不我與晦跡林樊榮貴何物樂我眞天敎養後進孶孶勤勤亦粤賢配稟性淸閑守分安居少不憂貧生平履歷家法是遵天萬無知莫保仍昆霜露蒸甞外裔承傳香火之絶拕至幾年傍孫狀惕食息靡安峻發公議竪石定論墓前顯銘退翁偉言乃鑱乃竪山阿改觀敢曰報本微誠組仲襟紳章甫濟濟如雲敢告厥由敬薦明禋

 


●황산도찰방경주이공묘도수갈고유문 역문
(黃山道察訪慶州李公墓道竪碣告由文 譯文)
-영가 권숙 근찬(永嘉 權肅 謹撰)

 

삼가 부군(府君)을 생각하노니 바탕은 순수(純粹)하시고 재조(才操)는 민서(敏捿) 하심이라. 용눌(慵訥, 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눌재공訥齋公 이홍준李弘準)의 고택(古宅)이요. 명문(名門)에 낙(樂)이 있도다.
안으로는 가정(家庭)의 훈계(訓戒)를 계승(繼承)하였고 밖으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도다. 척당(倜儻, 고상高尙하고 뛰어남) 한 노기(老氣)는 초매(超邁, 남을 뛰어넘어 월등越等함) 하여 무리하지 않았도다. 일찍이 과업(科業)을 시험(試驗)하였으나 받은 성품(性品)이 어버이를 위하는 데 있었도다. 그 경사(京師)에 계실 적에 상소문(上疏文)을 초고(草稿)하여 몇 번을 베풀었도다. 때가 혼조(昏朝)를 만나서 조정(朝廷)이 시끄러웠도다. 그 위(位)에 있지 않아서는 머리를 쭈그리고 입을 다물었도다. 보화(寶貨)를 품고 팔아보지 못하고 갇혀있고 흘러가지 못했도다. 세상(世上)이 나를 돌보지 않아서 자취를 숲속에 감췄도다. 영귀(榮貴)한 것이 어떤 물건인고. 내 참 하늘을 즐거워하였도다. 후진교양(後進敎養) 하기를 부지런히 힘썼도다. 또한, 어진 배위(配位)께서 받은 성품(性品)이 청한(淸閑)하였도다. 분수(分數)를 지켜서 편히 살아 조금도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았도다. 평생에 밟아서 지내온 것이 가법(家法)을 이 좇음이로다. 천도(天道)가 일지 못하여 자손을 보전하게 아니했도다. 제전(祭典)의 향화(香火)를 외손(外孫)에 이어 전하였더니 향화(香火)의 끊긴 것이 몇 해에 이르렀도다. 방손(傍孫)이 슬퍼하고 두려워하니 식식(食息)이 편치 못한 것이로다. 크게 공의(公議)를 발(發)하니 돌을 세우자는 정론(定論)이었도다. 묘(墓) 앞의 현명(顯銘)은 퇴옹(退翁)의 위언(偉言)이라. 이에 새기고 이에 세우니 산언덕이 경관이 고쳐졌도다. 감히 근본을 갚는다고 이르니 작은 정성을 대강 폈도다. 띠띠고 의관(衣冠)한 분들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들었도다. 감히 그 사유를 고하노니 공경하여 밝게 제사(祭祀)를 올릴지어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