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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3세손 순천부교수공 이춘성] 通訓大夫順天府敎授公墓碣銘(통훈대부순천부교수공묘갈명)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1. 24. 19:30

□판사공(判事公) 3세손 순천부교수공(順天府敎授公) 이춘성(李春城)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②추암공(追巖公) 진강(臻剛) → 2世孫 ③모암공(慕巖公) 치정(致禎) → 3世孫 ①순천부교수공(順天府敎授公) 춘성(春城)

 

通訓大夫順天府敎授公墓碣銘(통훈대부순천부교수공묘갈명)
-文化 柳寅瑗 謹撰(문화 유인원 근찬)

 

月城之李自羅麗至于本朝圭組烜爀蔚然爲東方巨族肇祖于新羅佐命功臣諱謁平世居月城至于麗季有諱之秀三重大匡金紫光祿大夫月城君生諱揆右參贊襲封月城君諡貞烈始居抱川生諱元林入本朝判司僕寺事贈領相再傳而有諱臻剛號追菴擢文科行順天府使師事佔畢齋燕山戊午禍作見機南歸隱居于扶安東津坊堂北山下子孫世居焉寔公之祖考也諱致貞禮曹佐郎妣淑人光山金氏以穆陵甲戌生自幼至孝溫淸定賓一無睽違就學也材質卓越經史子書無不貫通深透道義之奥專務爲己之學聲望藹蔚士流咸服以孝友篤行薦聞于朝特加通訓之資除順天府敎授公亦有意于造士育英嚴師弟子之禮而律身以正直化人以德義黌舍難容而循循雅餝有胡安定之風焉湖南省儒蔚興至令稱之葬于將軍峰先塋下巽坐原配淑夫人溫陽鄭氏墓合祔嗚呼以若公之敎化未得展抱于邦國而止于一嵎夫子所謂割鷄牛刀者耶碩果之不食將有循環之日也月城氏門安得不昌大乎后孫在南草公略歷徵余以墓文發潜闡幽彜性 所同猥此捃摭之表公藏焉

 


●통훈대부순천부교수공묘갈명 역문
(通訓大夫順天府敎授公墓碣銘 譯文)
-문화 유인원 지음(文化 柳寅瑗 謹撰)

 

월성이씨(月城李氏)는 신라(新羅)·고려(高麗)에 이르러 혁혁한 공을 세운 동방(東方)의 거족(巨族)이다. 신라(新羅) 좌명대신(佐命大臣) 알평(謁平)의 후손으로 고려말(高麗末)에 휘 지수(之秀)는 삼중대왕(三重大匡)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월성군(月城君)이라. 월성군(月城君)이 아들 규(揆)를 낳으니 우참찬(右參贊)으로 시호는 정렬(貞烈)이요. 이분이 원림(元林)을 낳으니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요. 조부 진강(臻剛)의 호는 추암(追巖)이요, 문과(文科)에 합격하고 순천부사(順天府使)에 올랐다. 스승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가 연산(燕山) 무오화(戊午禍, 1498년)로 인하여 호남(湖南)으로 돌아가 은거(隱居)했다. 부안(扶安) 동진(東津) 방당북산(坊堂北山) 아래 자손(子孫)들이 거주했다. 부는 치정(致貞)이고 예조좌랑(禮曹佐郎)이요, 배(配)는 숙인(淑人) 광주김씨(光山金氏)다.

 

공의 이름은 춘성(春城)이요, 선조(宣祖) 7년 1574년에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였으며 재주가 탁월(卓越)해서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통달하고 실천의 학문을 주장하여 선비들이 많이 추종하였고 효우(孝友)와 독행(篤行)으로 천(薦)하여 통훈(通訓) 급의 벼슬을 내려주고 순천부교수(順天府敎授)를 제수했다. 영재교육에 뜻을 두어 자세하고 엄하게 가르쳐서 호안정(胡安定)의 풍토가 있었으며 호남(湖南) 지방에 유풍(儒風)이 성하게 일어났었다. 묘는 장군봉(將軍峰) 선영(先塋) 아래 손좌(巽坐) 언덕에 있다. 배(配)는 숙부인(淑夫人) 온양정씨(溫陽鄭氏)이고 묘는 합장(合葬)했다.
아아! 공과 같은 교화(敎化)를 전국에 펴지 못하고 한 지방에 그치였으니 닭 잡는 데 우도(牛刀)를 사용함과 같으니 그 받지 못할 몫은 후손에 끼치리니 경주이씨(慶州李氏)의 가문(家門)이 어찌 창대(昌大)하지 않으리오. 공의 후손이 나에게 묘문(墓文)을 청하므로 이와 같이 공의 묘에 표한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워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