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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공 이종준] 景賢堂記(경현당기)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1. 2. 17:34

□용재공 이종준(慵齋公 李宗準)

 

【계대(系代)】 ①월성군(月城君) 이지수(李之秀) → 1世孫 ①정렬공(貞烈公) 규(揆) → 2世孫 판사복시사공(判司僕寺事公) 원림(元林) → 3世孫 ①화헌공(花軒公) 만실(蔓實) → 4世孫 ③대사헌공(大司憲公) 승직(繩直) → 5世孫 ⑤금호공(琴湖公) 시민(時敏) → 6世孫 ②용재공(慵齋公) 종준(宗準)

 

 

景賢堂記(경현당기)
-聞韶 金鴻洛 撰(문소 김홍락 찬)

 

先王之政禮之敎大而象德尊賢尤爲勸善化俗之一道也故建學立舍奉先生聖先師縟儀己畢緇帷載門+莘莘衿佩講禮敦學是以 彛倫明倫於上而敎化行於下矣降自叔季不復振作而鄕曲之間若有勳功德業卓越今古則慈孫追慕而薦祝之士林恊心而賛助之煥然文物蔚有可觀者猶驗一線遺風之未泯乎月城之李本東方著姓而上祖蘇判先生以羅代名臣有百世生民之澤諸孫之在梁蔚東之三邑有恊力同心出義捐金擇地於態上之周南里作講堂厨庖爲設享之擧而益慵齋兩先生以苗裔之賢有氣類之感欲幷 奉而爲列依滄洲故事用紙牌行事而議論己定工役方擧士林之居於近遠者莫不聞風而趍赴咸歎誠力之備至而共敦事禮之方便雖其孿如之孚有能動人者而好德之衷亦不可誣也嗟乎今去先生之世千有餘年而時世變遷載籍踈畧不得詳其萬一然盖其幽光潜德有積累之深故遺蔭餘慶有蕃衍之昌而兩先生又能光前届後文章德行輝映靑史宜其有一軆之典然物理相尋於無窮公議始發於今日而一片靈區今爲兩先生陟降之所千秋典型彷彿如在而有堂宏濶多士依歸窃惟難必者天而可必者亦天地珠玉之藏於山澤者其晦無窮此天之難必者也久而必顯此天之可必者也今先生尸祝之設歷幾代而杳冥則抑又天之難必者而含章而必顯抑又天之可必者乎後孫宰榮淳雨玖炯甫始終幹事者也役旣畢囑在禧琪宗跋沙四百里之遠訪余樊溪草盧責以記文益勤余亦愛其誠篤不敢固辭畧叙顚末而歸之以寓高山景行之忱慕云爾

 


●경현당기(景賢堂記) 역문(譯文)
-문소 김홍락 찬(聞韶 金鴻洛 撰)

 

선왕(先王)의 정치에 예의 가르침이 컸고 덕을 숭상하고 어진 이를 높이는 것은 착한 일을 권하고 풍속을 교화시키는 한길이라. 그런고로 학교를 세워서 옛 성현과 스승을 받들어 모실세 화문석에 의례를 마친 후 검은 장막을 사당에 치고 많은 폐물을 옷깃에 차니 예를 강하고 배움을 돈독히 함이라. 이러므로 의륜이 위에 밝고 교화가 아래 행하더니 말세로부터 다시 지음이 없고 향곡(鄕曲) 간에 훈공이나 덕업이 고금에 탁월하면 자손들이 축문에 천거하고 사림(士林)에서 협력하여 도와주니 문물이 빛이 나서 가히 볼만한 일이 있으니 한오리 유풍(遺風)이 없어지지 않음을 증험(證驗)함일진 저.
월성이씨(月城李氏)는 동방(東方)에서 늘어난 성(姓)이고 웃조상 소판공(蘇判公) 선생이 신라에 명신(名臣)으로 백 세에 생민(生民)의 은덕이 있어서 자손들이 양(梁)·울(蔚)·동(東) 세 읍에 사는 자들이 동심 협력해서 의연금(義捐金)을 내고 터를 웅상(態上)의 주남리(周南里)에 정하고 강당(講堂)과 주소를 지어 향사(享祀)치를 준비를 하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용재(慵齋, 李宗準) 두 선생은 후손이 어질고 기운이 유사한 느낌이 있어 함께 받들기로 하되 창주(滄洲)에 옛일을 모방하여 지패(紙牌, 종이 호패)로 행사하기로 의논이 정해져서 공사를 시작하니 멀고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성력(誠力)의 극진함을 탄복하고 함께 일의 방편을 도우니 비록 연결된 정성이 능히 남을 움직임도 있으나 덕을 좋아하는 마음도 속이지는 못하리라.

 

슬프다,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이 지남에 시세(時世)가 변천(變遷)되어 사적(事蹟)이 희미하나 그만한 분의 하나도 상세히 알 수 없으나 그러나 그윽한 광채와 잠긴 덕이 쌓이기를 깊게 한 거로 끼친 음덕(蔭德)과 남은 경사가 번영 창대하고 두 선생은 능히 앞을 빛내고 뒤에 미친 문장과 덕행이 청사에 빛나니 마땅히 일체의 떳떳함이 있으나 사물의 이수는 무궁토록 서로 찾게 되어 공론이 오늘에 시발(始發)되어 한쪽 지역이 이제 양선생 혼령이 오르고 내리는 곳이 되니 천추(千秋)에 전형(典型)이 옆에 뵙는 것 같고 마루가 크고 넓어 많은 선비들이 의지하고 돌아오리니, 그윽이 생각건대 기필하기 어려움도 하늘이요, 기필할 수 있는 것도 하늘이라.
구슬이 산택(山澤)에 묻혀서 무궁토록 빛을 못 내는 것은 이 하늘을 기필할 수 없음이요. 오랜 뒤에 늘어나게 되니 이는 하늘을 기필할지라. 이제 선생의 봉향(奉享)할 곳을 몇 대를 지나면서 막연하게 왔으니 또 하늘을 기필하기 어려움이요. 빛을 품고 반드시 나타나니 하늘을 가히 기필할진 저.
후손 재영(宰榮)·순우(淳雨)·구형(玖炯)은 시종(始終) 일을 주간(主幹)한 자라 역사(役事)가 끝나자 재희(在禧)·기종(琪宗)에게 위촉(委囑)하여 사백 리 먼 길을 걸어 번계(樊溪) 초려(草盧)에 나를 찾아 기문(記文)을 부탁함이 부지런하고 나도 또한 그 정성이 두터움을 사랑하여 감히 굳게 사양치 못하고 대략 그 시종(始終)을 펴서 돌리고 고산경행(高山景行)의 사모함을 붙이노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