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게시판/기◆행장◆비명

[시조 표암공 이알평] 碑閣重修記(비각중수기)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0. 11. 14. 13:42

□시조 표암공 이알평(始祖 瓢巖公 李謁平)

 


碑閣重修記(비각중수기)
-後孫(후손) 裕元(유원) 撰(찬)

 

慶州邑治之東月城未五里에 有山巖巖하야 背石而特立者는 曰瓢巖이니 我李氏鼻祖謁平의 肇降處也라

 

按三韓史乘하면 有神人이 降于瓢巖下하야 翊赫居世爲王하야 賜姓李氏하여 得壽二百歲하고 後姓이 蕃衍하야 羅麗以降으로 簪組蟬聯하야 遂爲大家하니 山非高而不敢不仰也며 巖雖古而不敢不敬也라

 

純祖丙寅에 族祖相國敬一과 宗丈尙書集斗兩公이 伐石謨竪하야 記述事跡하고 架椽薝하야 以庇風雨려니 丙午에 先君子文貞公이 巡到玆邑이라가 拜舊址하고 重修碑閣하며 讌宗族하야 聞風會者- 甚衆하니 寔報本追遠之意也라

 

噫라 嶠南은 今之鄒魯也라 山得正氣하야 磅礡淸淑하고 絃誦之聲이 家家尙聞而月城이 爲吾家鄕하니 奚特海南千里之謂也리요

 

先儒- 曰子孫之多- 雖至千滿人이라도 而莫非一本이라하니 原厥始而返諸本則千萬年이 一日也요 千萬人이 亦一身也니 然則碑閣之奉이 非玄元立廟之比라 惟我諸宗은 謹守焉하여 其勿替之니라

 

*1987년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

 


●비각중수기(碑閣重修記) 역문(譯文)
-후손(後孫) 유원(裕元) 찬(撰)

 

경주읍(慶州邑) 동쪽으로 월성(月城)에서 5리(五里)가 못되는 지점에 산이 높고 높아 돌을 등지고 우뚝하게 서 있는 것이 바로 표암(瓢巖)이니 우리 이씨(李氏)의 시조(始祖)이신 알평(謁平)이 처음 강생(降生)한 곳이다.

 

삼한사승(三韓史乘)을 살펴보면 신인(神人)이 표암(瓢巖) 아래에 내려와 혁거세(赫居世)를 도와 왕을 삼고 이(李)로 사성(賜姓)되며 이백세(二百歲)의 수(壽)를 누리고 후손(後孫)이 번창하여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를 지내오면서 벼슬이 이어지어 드디어 대가(大家)가 되었으니 산이 높지 않으나 감히 우러러보지 않을 수가 없으며 바위는 비록 오래되었으나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순조병인년(純祖丙寅年, 1806)에 족조(族祖) 정승인 경일(敬一)과 종장(宗丈) 판서(判書)인 집두(集斗) 양공(兩公)이 비석(碑石)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고 비각(碑閣)을 지어 풍우(風雨)를 방비하였다.

병오년(丙午年, 현종12 1846)에 우리 선친(先親) 문정공(文貞公)께서 이 고을에 순행하시었다가 옛터를 찾아 첨배하고 비각(碑閣)을 중수하고 종족들과 연회를 베풀자 소문을 듣고 모인 자가 심히 많았으니 이것이 바로 보본추원(報本追遠)하는 뜻이라 하겠다.

 

아! 영남(嶺南)은 지금의 추로(鄒魯)1) 의 고을이다.
산은 정기(正氣)를 얻어 방박(磅礡)하고 청숙(淸淑)하며, 현송(絃誦)2) 의 소리가 집집마다 들리는데 월성(月城)이 우리 집의 고향이 되었으니 어찌 바다의 남쪽 천리(千里)라고 이르겠는가.

 

선유(先儒)가 이르기를 ‘자손(子孫)이 많아서 비록 천만(千萬) 명에 이르러도 한 근본이 아님이 없으니 그 처음을 생각하여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천만년(千萬年)이라도 1일(一日)과 같고 천만(千萬) 명이라도 또한 일신(一身)과 같으니 그러한즉 비각(碑閣)을 받드는 것이 현원입묘(玄元立廟) 3)에 비할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제종(諸宗)들은 삼가 수호하고 깨끗이 간직하여 쇠체(衰替)하지 말을 지어다.’

 

------------------------------------------------------
1) 추로(鄒魯)의 나라: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순후한 풍속(風俗)이 있는 곳을 말함. 추(鄒)는 맹자(孟子)가 태어난 곳이고 노(魯)는 공자(孔子)가 태어난 곳이다.
2) 현송(絃誦)의 소리: 거문고 타고 글 외우는 소리로 선비들이 학문함을 말한다.
3) 현원입묘(玄元立廟): 당(唐)나라때 노자(老子)를 시조(始祖)로 추존하여 사당을 지어 받들었음.

 

*1987년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