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눌재유고이홍준

[訥齋遺稿] [丘墓文] 自製墓碣銘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7. 14:40

눌재유고(訥齋遺稿) / 丘墓文


自製墓碣銘(자제묘갈명)

噫悅生惡死。人之常精以死爲。諱口不敢言。惑之甚矣。有如漆園。㝕之忘骸楊王楊孫之裸葬。世無人矣。其知死生之說而。不爲懷者。有幾人哉。余嘗有詩曰。無生卽無死​。有生卽有死。生死兩悠悠。造物無終始。雖未及遠觀。之徒所見如斯而。己凡人觀化之後。倩人碣辭。虛張逸筆以沒其實尤可笑也。此老平生懶拙。力農以給妻孥。七擧不中。優遊溪山以。是終焉。銘曰。
旣無材又無德。人而己。生無爵死無名。魂而已。憂樂空毁譽息。土而已。


*참조: 용재유고(慵齋遺稿) > 訥齋先生遺稿 > 自製碑文
*출처: 용눌재집(慵訥齋集) > 訥齋先生遺稿 > 丘墓文 > 自製墓碣銘


○이홍준이 쓴 자신의 비문(碑文).
○사람이 죽은 뒤에 허세를 부려 그 실제를 고쳐서 비문을 쓰니 우스운 일이라고 하며‚ 자신은 스스로 비문을 작성하되 재주도 덕(德)도 관직도 없으며 죽어서 드러날 혼(魂)도 없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http://kyujanggak.snu.ac.kr/home/index.do?idx=06&siteCd=KYU&topMenuId=206&targetId=379&gotourl=http://kyujanggak.snu.ac.kr/home/MOK/CONVIEW.jsp?type=MOK^ptype=list^subtype=sm^lclass=AL^mclass=^sclass=^ntype=mj^cn=GK04282_00



스스로 지은 묘갈명[自製墓碣銘]

아,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미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나 죽음을 꺼려 입으로 감히 말하지 않는 것은 매우 미혹된 것이다. 세상에는 칠원漆園의 늙은이처럼 육신을 잊거나,1) 양왕손楊王孫처럼 나장祼葬한 사람2)이 없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알면서 마음에 두지 않는 자가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내가 일찍이 지은 시가 있으니 아래와 같다.

태어남이 없다면 죽음도 없고 無生卽無死
태어남이 있다면 죽음이 있네 有生卽有死
생과 사의 두 이치 아득하니 生死兩悠悠
조물주는 처음과 끝이 없다네 造物無終始

비록 달관한 자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소견이 이와 같을 뿐이다.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남에게 묘갈의 글을 청하여 부질없이 과장된 문장으로 떠벌려 실상을 매몰시키니 더욱 가소롭다. 이 늙은이는 평생 게으르고 서툴러 힘써 농사지어 이것으로 처자식을 먹였다. 일곱 번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하여 산수에서 여유롭게 지내면서 생을 마친다.
명銘에 이렇게 말한다.

이미 재주가 없고         旣無才
덕도 없으니               又無德
사람일 뿐이다             人而已
살아서 작위가 없고       生無爵
죽어서 이름 없으니       死無名
혼일 뿐이다                魂而已
근심과 즐거움 부질없고 憂樂空
헐뜯음과 칭송 그치니    毁譽息
흙일 뿐이다                土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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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원(漆園)의……잊거나 : 칠원의 늙은이는 장자(莊子)를 말한다. 『장자』 「덕충부(德充符)」에 “죽고 사는 문제 또한 중대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나 “죽음과 삶, 보존과 패망, 곤궁함과 영달, 가난함과 부유함, 현명함과 어리석음, 치욕과 명예, 배고픔과 목마름, 춥고 더움 따위는 사물의 변화이며 천명이 흘러 행하는 것이다.”라는 등의 말을 통해서 장자는 인간들의 형해(形骸, 육체 적조건)에 대한 집착을 타파할 것, 참다운 덕은 형상을 초월한 내면성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2) 양왕손(楊王孫)처럼 나장(祼葬)한 사람 : 나장은 수의(壽衣)를 입히지 않고 장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사람인 양왕손이 죽기 전에 아들에게 유언하여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땅속에 들어가 자연의 도를 따르려 하니 내 뜻을 어기지 마라. 죽으면 포대로 시신을 감싸서 일곱 자 땅 밑에 집어넣은 뒤 곧바로 발 있는 부분부터 포대를 꺼내 직접 살이 땅에 닿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대본의 ‘王楊孫’은 전고를 참작하여 ‘楊王孫’으로 고쳐 번역하였다.(『漢書』 卷67 「楊王孫傳」)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한국국학진흥원(2020.10) > 눌재선생유고 > 구묘문丘墓文 > 스스로 지은 묘갈명[自製墓碣銘]
*한국국학진흥원: https://www.koreastudy.or.kr/



●성균진사눌재공묘지명 역문(成均進士訥齋公墓誌銘 譯文)
   -홍준 스스로 지음(弘準 自製)

아! 슬프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통 가지는 마음이다. 죽음을 싫어하되 입으로 감히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미혹한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일이다. 칠원(漆園, 장자가 몸이라는 곳에 있는 칠원에 옻 밭을 맡아보는 관리가 되었었다)의 늙은이 같은 이는 그 해골이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양왕손(楊王孫, 한나라 성고(城固) 사람. 황노(黃老)의 술을 배워서 죽을 때 아들에게 수의를 입히지 말고 나체로 매장하라고 유언하였다.)의 나매장(裸埋葬) 같은 경우는 세상에 그러한 사람이 없다. 죽고 사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에 생각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내가 일찍이 시를 한 수 지었으니 가로되

생이 없으면 죽음도 없으리라. / 無生卽無死
생이 있으면 죽음이 따르리라. / 有生卽有死
살고 죽는 것이 다 아득하니 / 生死兩悠悠
조물은 처음도 끝이 없도다. / 造物無終始

내가 비록 달관(達觀)한 사람은 못되나 보는 바가 이와 같을 따름이다. 평범한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묘갈(墓碣)의 내용을 남에게 청하여 붓을 들어 허장성세(虛張聲勢)하여 사실을 바꾸면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이 늙은이가 천성이 게을러서 농사하여 처자를 먹여 살릴 뿐이고 일곱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다 낙방하였으니 시내와 산에 마음껏 놀다가 이로써 마칠 것이다. 명에 이르되
이제 재주도 없고 또 덕도 없으니 그저 평범한 사람일 따름이요. 살아서 관작(官爵)이 없고 죽어서 이름이 없으니 그저 한 넋일 따름이다. 기쁨과 근심이 훼예(毁譽, 비방과 칭찬)가 그쳤으니 그저 한 줌의 흙이 될 따름이다.


*경주이씨 월성군파보


●진사(進士) 이홍준(李弘準)의 묘

개단부곡(皆丹部曲) 운봉산(雲峯山)에 있다. 스스로 갈명을 지어 이르기를 다음과 같이 했다. “아!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함은 인간의 상정(常情)이라, 죽음을 꺼려 입으로 감히 말하지 못함 또한 미혹됨이 심하다. 저 장자(莊子)가 형해를 잊는다는 것과 왕양손(王楊孫)이 벌거벗은 몸으로 장사를 지낸다는 말과 같은 것은 지금 세상엔 다시없구나. 그는 생사(生死)를 잘 알면서도 이를 마음속에 두지 않는 자라 하겠다.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일찍이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생(生)이 없으면 곧 사(死)도 없고
생이 있으면 곧 사가 있게 되나니
생과 사는 모두 덧없는 것이요
조물(造物)도 끝과 시작이 없는 것을

비록 달관(達觀)에 이르지 못한 무리라 하더라도, 본 바가 이와 같을 뿐이다. 대개 사람이 관화(觀化)한 뒤에 자손 된 자가 남에게 갈사(碣辭)를 청하여 헛된 이야기를 늘어놓고 붓을 제멋대로 놀리어 그 실상을 없게 만드니 더욱 가소롭구나, 이 늙은이는 평생토록 게으르고 졸렬한 것으로 자임(自任)하여 항상 농사에 힘씀으로써 처자식을 먹여 살렸고 일곱 번이나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지 못했지만 계산(溪山)에서 우유(優游)*)하면서 평생을 마쳤다. 이에 명(銘)하여 말하노라,
‘이미 재주도 없고 또 덕도 없으니 사람일 뿐이요, 살아서 작록도 없고 죽어서 명성도 없으니 혼일 뿐이며, 근심과 즐거움이 없어지고 헐뜯음과 칭찬이 사라졌으니 흙일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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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優游): 1.유유자적하다 2.우물쭈물하다 3.망설이다


*출처: 영가지(永嘉誌)


[林下筆記] 訥齋自銘

訥齋李弘準卽宗準之弟也。 製自銘曰。 旣無材又無德。人而已。生無爵死無名。 魂而已。憂樂空毁譽息。土而已。

◦눌재(訥齋)가 스스로 쓴 묘갈명

눌재 이홍준(李弘準)은 이종준(李宗準)의 아우이다. 자신의 묘갈명을 짓기를,

“이미 재주가 없고 또 덕이 없으니 사람일 뿐이고, 살아서는 벼슬이 없고 죽어서는 이름이 없으니 혼일 뿐이고, 근심과 즐거움이 다하고 훼손과 칭찬이 다 없어졌으니 흙일 뿐이다.”

하였다.


* ⓒ 한국고전번역원 | 안정 (역) | 2000
*출처: 고전번역서 > 임하필기 > 임하필기 제28권 > 임하필기 제28권 > 춘명일사(春明逸史)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432A_0310_010_0370_2007_006_XML


◈《임하필기(林下筆記)》는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편찬한 39권 33책의 필기류(筆記類) 편저이다.
○이유원의 자는 경춘(景春), 호는 귤산(橘山) 또는 묵농(墨農), 시호는 충문공(忠文公)이다. 본관은 경주(慶州)로 조선 중기의 명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9세손이다.


* ⓒ 임하필기(林下筆記). 한국고전번역원
  http://db.itkc.or.kr/dir/pop/heje?dataId=ITKC_BT_1432A



訥齋 李弘準 自銘 / 금부록v1(金缶錄v1)
-박재형(조선) 편저 (朴在馨(朝鮮) 編著)

訥齋李弘準自銘

飛不盡翰昔人所歎君而止斯運
命所關我銘其碣以關不刊

公容貌端雅如淸水芙蓉志
操瀅潔如氷壺秋月

旣無才又無德人而已生無爵死
無名魂而已憂樂空毁譽息土
而已[주:訥齋李弘準自銘]


*출처: 금부록(金缶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C14B^32_001&aa15no=001&aa20no=C14B^32_001_0042



무신력(戊申曆)

▣ 025
【별지시작】
僧誦經之處曰蜂坮。僧聚會之所曰叢林。
靑田核。酒名。
金粟。燈火。
烏銀。炭。
莫邪。卽干將之妻。劍。
鳳味。鴝眼。硯名。
玄駒。蟻。
封姨。風神。
愚公欲移山。
武夷精舍在五曲。

旣無才又無德。人而已。
生無爵死無名。魂而已。
優樂空毁譽息。土而已。
李弘準自銘。

【별지끝】

일기명: 무신력 (戊申曆)
저자: 이중명 (李重明)
원소장처: 한산이씨 대산종가


*출처: 유교넷. 한국국학진흥원
  http://www.ugyo.net/yk/ilki/ilkiKisaView.jsp?ttype=agreement&data1=1910&data2=11&data3=11&iTcnt=2&scroll=1&SearchType=time&B_SUJI_ID=KSAC_M_D00500904&B_BOOK_ID=KSAC_T_D00500904_001&B_KWON_ID=001&B_STYLE_ID=001&iPage=1&B_KISA_ID=00255&iSeq=1



내면기행 :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저 | 이가서 | 2009년 10월 01일
쪽수, 크기 : 612쪽 | 164*230*35mm


제4부 웃어나 보련다
1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이다 / 이홍준(李弘準),〈자명(自銘)〉-381

책속에서 & 밑줄긋기
P.383 : 이홍준은 스스로 작성한 짧은 묘지명에서 "재주 없는데다 덕 또한 없으니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나면서부터 진리를 터득한 생지(生知)의 성인도 아니고, 배워서 진리를 터득하는 학지(學知)의 현인이나 철인도 못 되며, 시행착오의 곤란을 겪으면서 삶이 무엇인지를 터득해가는 곤지(困知)의 보통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곤지(困知)조차 못하여 중인(中人, 보통사람)만도 못하다는 냉혹한 자기비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살아서는 벼슬 없고 죽어서는 이름 없으니 혼일 뿐이다"라고 자조하여본다. 지각을 가진 혼령이 아니라 지각도 없는 어둑어둑한 명혼(冥魂)으로 끝난다면 정말 서글플 따름이라고 두려워한다.

저자 : 심경호
1955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일본 교토(京都)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중국문학)을 수료하고, 1989년 1월에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으로 교토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강원대 국문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2년 성산학술상과 2006년 일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선생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을 수상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자에 뽑히기도 했다.

저서로 『다산과 춘천』, 『한문산문의 미학』,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국문학연구와 문헌학』, 『김시습평전』, 『한시기행』, 『한시의 세계』, 『산문기행』,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한학입문』, 『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등이 있다. 역서로『주역철학사』, 『불교와 유교』, 『일본한문학사』, 『금오신화』, 『당시읽기』, 『한자학』, 『중국자전문학』, 『역주 원중랑집』, 『중국 고전시, 계보의 시학』 등이 있다.


*출처: yes24, 알라딘
  http://www.yes24.com/24/goods/3542523?scode=032&OzSrank=3


내면기행 : 옛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

심경호 저 | 민음사 | 2018년 03월 16일
768쪽 | 840g | 135*200*40mm

목차

6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 - 이홍준, 「자명(自銘)」

책 속으로

재주 없는 데다
덕 또한 없으니
사람일 뿐.
살아서는 벼슬 없고
죽어서는 이름 없으니
혼일 뿐.
근심과 즐거움 다하고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
- 이홍준(李弘準, ?~?), 「자명(自銘)」중에서

*출처: yes24   http://www.yes24.com/24/goods/59316499?scode=032&OzSrank=1


2011/9/29 [라디오북클럽] "자기 묘비명을 쓴 옛 선비들" - <내면기행> 심경호 지음


자기 묘비명을 쓴 옛 선비들

웰다잉 운동의 하나로 ‘유서쓰기’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서를 쓰면서 탄식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데요, 아마도 천 년을 살 것처럼 욕심 부리고, 자신만 챙기며 살아오다가 문득 그런 나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이겠지요.

옛사람들은 죽음의 허무를 극복하려면 영원히 썩지 않을 세 가지를 이루라고 했습니다. 즉 덕을 쌓고 공을 이루고 진실한 말을 하는 이 세 가지야말로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사람들은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쓰는 풍습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살아 있는 동안 자기의 묘표(墓表)와 죽은 이의 행적을 적는 묘지(墓誌)를 적고, 스스로를 애도하는 만시를 지은 것이지요. 중국에서 문인들 사이에 일었던 풍습이었지만 우리나라도 적어도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는 조선 시대 선비 50여 명의 묘지를 소개하면서 동양의 현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았으며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고, 죽음 뒤의 구원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죽음의 문제를 깊이 성찰할 수 있었고 달관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학문을 이루고 권세를 얻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혹은 한순간에 영락하여 초라하기 그지없는 최후를 맞이하기도 하면서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는 어느 시점에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묘비명을 쓰는 일은 죽음을 준비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보자는 마음가짐일 수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일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적어 내려간 묘비명 한 편 한 편 읽어보자니 어느 글이나 인생에 대한 예찬과 허무함, 업적의 공과에 대한 성찰과 아쉬움과 한탄이 짙게 느껴지지만 그중에 무명씨나 다름없는 선비 이홍준(李弘準)의 묘지가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재주 없는데다/덕 또한 없으니/사람일 뿐./살아서는 벼슬 없고/죽어서는 이름 없으니/혼일 뿐./근심과 즐거움 다하고/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남은 것은 흙뿐.(自銘, p.381)”

내 묘비명에는 어떤 글이 쓰일까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 뿐입니다.

오늘의 책, 심경호의 <내면기행>(이가서)입니다.


*YTN Radio [라디오북클럽] "자기 묘비명을 쓴 옛 선비들" 중에서.
  http://radio.ytn.co.kr/program/?f=2&id=15409&page=84&s_mcd=0243&s_hcd=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