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눌재유고이홍준

[訥齋遺稿] [丘墓文] 先兄莊六堂墓誌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7. 14:38

눌재유고(訥齋遺稿) / 丘墓文


先兄莊六堂墓誌(선형장륙당묘지)

公諱宗準。字仲勻。姓李月城世家。父生員時敏。祖大司憲繩直。丁酉生。乙巳文科。戊午被禍。世稱慵齋。削官職及第而己。諱節義黨人。而己返葬金溪。先人之壠也奉祀。德淵家李之子也。葬後七年。乙丑二月日。 弟弘準撰。公準書。

*출처: 용재유고(慵齋遺稿) > 訥齋先生遺稿
*참조: 용눌재집(慵訥齋集) > 訥齋先生遺稿 > 丘墓文 > 先兄莊六堂墓誌



○1505. 이홍준이 찬(撰)하고 이공준(李公準)이 쓴 이종준의 묘지문(墓誌文).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http://kyujanggak.snu.ac.kr/home/index.do?idx=06&siteCd=KYU&topMenuId=206&targetId=379&gotourl=http://kyujanggak.snu.ac.kr/home/MOK/CONVIEW.jsp?type=MOK^ptype=list^subtype=sm^lclass=AL^mclass=^sclass=^ntype=mj^cn=GK04282_00



세상을 떠난 형 장륙당의 묘지[先兄莊六堂墓誌]

공의 휘는 종준宗準이고 자는 중균仲勻이며 성은 이씨李氏이니 대대로 월성月城에서 이름난 집안이다. 아버지는 생원 시민時敏이고 할아버지는 대사헌 승직繩直이다. 공은 정유년(1477)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1) 을사년(1485)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무오년(1498)에 사화를 당하였다. 세상에서 용재慵齋라 칭한다. 관직이 삭제되었으니 급제를 하였을 뿐이고, 절의로 꺼림받으니 무오당적의 사람일 뿐이다. 금계촌金溪村 선조 묘역에 반장하니, 제사를 받드는 덕연德淵은 막내(이공준李公準)의 아들이다.

장례를 지낸 7년 뒤 을축년(1505) 2월 아무 일에 아우 홍준弘準이 짓고 공준公準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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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유년(1477)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 이종준은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생원시 합격은 확인되지 않는다.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한국국학진흥원(2020.10) > 눌재선생유고 > 구묘문丘墓文 > 세상을 떠난 형 장륙당의 묘지[先兄莊六堂墓誌]
*한국국학진흥원: https://www.koreastudy.or.kr/



●선형장륙당공묘지(先兄藏六堂公墓誌) 역문(譯文)
-아우 홍준 지음(弟 弘準 撰)
-아우 공준 서(弟 公準 書)


공(公)의 휘(諱)는 종준(宗準)이고 자(字)는 중균(仲勻)이다. 성은 월성이씨(月城李氏)1)로 세가(世家)2)이다. 부친은 생원(生員) 시민(時敏)이요, 조부는 대사헌(大司憲) 승직(繩直)이다. 정유년(丁酉年, 성종8 1477년)에 생원(生員)에 합격하고 을사년(乙巳年, 성종16 1485년)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했으며 무오년(戊午年, 연산군4 1498년)에 사화(史禍)를 당했으니 세상이 용재(慵齋)라 일컬었다.
벼슬을 삭탈(削奪) 당하자 당인(黨人)3)은 절의(節義, 절개와 의리)라 했다. 선인(先人)의 묘가 있는 금계(琴溪)에서 반장(返葬)4)하고 질(姪)인 덕연(德淵)을 아들로 삼아 봉사(奉祀)케 했다.
장례를 치른 7년 후 을축년(乙丑年, 연산군11 1505년) 2월 일에 동생 홍준(弘準)이 찬(撰)하고 공준(公準)이 글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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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성이씨(月城李氏) : 경주의 옛 이름이 월성(月城)이므로 경주이씨(慶州李氏)를 월성이씨(月城李氏)라고도 한다.
2) 세가(世家) : 대대로 나라의 중요한 자리에 있거나 큰 녹을 받았던 집안을 이르는 말. 세족(世族).
3) 당인(黨人) : 당파(黨派)를 이룬 사람.
4) 반장(返葬) : 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제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서 장사지냄.

*경주이씨 월성군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