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유물/안동지역◇유적

안동(安東)의 현판(懸板) 경광서원(鏡光書院)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14. 13:36

安東의 懸板 (上)



경광서원(鏡光書院)



이 건물은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이다. 서후면 소재지로 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가 소재지 못 미쳐서 오른편으로 사천(沙川)을 따라 들어가면 산자락의 소나무 숲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은 당초 유정사(有定寺)란 절이었는데 사람에게 1568년에 서당을 건립하고 1662년 경광정사라고 이름을 바꾼 뒤 백죽당 배상지, 용재 이종준 두 선생의 위패를 봉안했다. 1687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경당 선생의 위패를 옮겨서 백죽당, 용재 두 선생과 함께 제향했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873년 단소를 설립하여 향사해 왔다. 197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설되어 매년 9월 중정일(中丁日)에 제향하고 있다. 강당과 묘우만 남아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6의 대청마루를 배치하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은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두 건물 좌우에는 모두 풍판을 달았다.

배상지(1354~1413)의 자는 부전(不傳)이며 호는 백죽당으로 정평공 손홍량 선생의 외손자이다. 고려말에 판사복시사를 지냈으나 조정이 문란함에 벼슬을 버리고 안동 금계에 있다가 망국에 이르자 비분강개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이종준(1454~1498)의 자는 중균(仲均)이며 호는 용재로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다. 문장과 서화에 모두 뛰어났으며 절의가 있었다. 장흥효(1564~1633)의 자는 행원(行原)이며 호는 경당이다. 학봉(鶴峯)과 서애(西厓)의 문인으로 심학(心學)을 전수(傳受)받았으며 과거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학문(學問)과 행의(行誼)로 인조 때 창릉 참봉에 추천되었으나 직첩이 도착하기 전에 운명하였다.



출처: 안동(安東)의 현판(懸板)
경광서원(鏡光書院)

안동민속박물관(安東民俗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