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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安東)의 서원(書院) 향사(享祀) 경광서원(鏡光書院)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14. 01:05

안동(安東)의 서원(書院) 향사(享祀)


경광서원(鏡光書院)



1. 所在地 : 安東市 西後面 金溪 2里 92
2. 享祀日 : 9월 中丁
3. 沿 革
이 서원은 1568년(선조 1)에 유정사(有定寺) 자리에 서당을 창건한 뒤 1662년(현종 3)에 정사(精舍)로 개칭하고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1354-1413) 선생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선생의 위패를 봉안했다. 다시 1649년(인조 27)에 춘파리사(春坡里社)를 창건하여 용재 선생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 선생을 모셨다. 그런 뒤 1686년(숙종 12)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경당 선생의 위패를 옮겨서 백죽당 선생용재 선생과 함께 제향했다. 선현 배향과 인재 양성에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하여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1873년에 단소(壇所)를 설립하여 향사를 지내왔다. 그러다가 1972년에 지방유림과 후손들이 발의하여 복원되었다.
서원 내의 건물로는 정면 3칸의 맞배지붕 형식을 갖춘 존현사(尊賢寺), 정면 5칸의 맞배지붕인 숭교당(崇敎堂), 신문(神門), 주소(廚所) 등이 있다. 존현사는 사당으로서 배상지 · 이종준 · 장흥효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중정일에 향사를 치루고 있다. 숭교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서원 내의 여러 행사와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며 양쪽 협실은 향사 때에 헌관들과 집사들이 사용하는 방으로서 동쪽은 헌관들이 사용하며 서쪽은 집례, 축관, 집사 등이 사용한다.

주향인 배상지(1354~1413) 선생은 본관이 흥해(興海)이고 자는 부전(不傳), 호는 백죽당으로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의 외손자이다. 고려말에 판사복지사(判司僕寺事)를 지냈으나 조정이 문란함에 벼슬을 버리고 안동 금계에 퇴거해 있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비분강개하여 두문불출 하였다. 뒤에 병조판서로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실기 1책이 있다.

이종준(?~1499) 선생은 본관이 경주이고 자는 중균(仲鈞), 호는 용재(傭齋), 용헌(傭軒), 부휴자(浮休子), 상우당(尙友堂), 태정일민(太庭逸民), 장육거사(藏六居士)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1485년(성종16)에 별시문과에 1등 3인으로 급제하였고 의성현령으로 있으면서 <경상도지도>를 만들었다. 1493년에 사헌부지평이 되었으며,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당시 선생은 풍류로 명성이 있어 일본호송관 또는 북평사(北評事) 등의 직책에 임명되었고 의정부사인에 이르렀다.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 때 김종직 선생의 문인으로 몰려서 함경도 부령으로 귀양가는 도중에 단천군 마곡역을 지나다가, 송나라 이사중(李師中)이 바른말하다 귀양가는 당개(唐介)를 송별하면서 지은 시 한 수를 써 놓고 갔는데, 함경도 관찰사 이승건(李承健)이 이는 나라를 비방하고 왕(王)을 기롱(譏弄)한 것이라고 조정에 고하였다. 저서로는 《용재유고》가 있다. 시 · 서 · 화에 능하였고 그림은 매 · 죽을 잘 그렸다고 하나 전하는 유작은 없다. 현재 장식화풍으로 그려진 〈송학도(松鶴圖〉) 1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고 있으며 선생의 전칭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장흥효(1564~1633) 선생은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자는 행원(行源), 호는 경당(敬堂). 부장(部長) 팽수(彭壽)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김성일(金誠一) · 유성룡(柳成龍)을 사사하고, 뒤에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문명이 높았다. 관계진출을 단념하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제자가 수백 명에 달하였다. 특히, 역학(易學)을 깊이 연구하여 호방평(胡方平)의 《역학계몽통석(易學啓蒙通釋)》의 분배절기도(分配節氣圖)를 보고 오류된 것을 의심하여 이를 고증 연구하여 20년 만에 십이권도(十二圈圖)를 추연(推演)하였다. 문하에 이휘일(李徽逸) 등 학자가 있다. 1633년에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교지가 도착되기 전에 작고하였다. 뒤에 지평에 추증되고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경당문집》이 있다.


4. 享祀儀禮
1) 分定禮
분정례는 향사 때에 참석한 사람들의 소임을 나누어 결정하는 절차이다. 헌관들과 축관, 집례의 직책은 이미 결정되었으나 나머지 직책은 이때에 모두 결정한다.
분정례는 일반적으로 일몰 전에 한다. 그러나 이 서원은 향사례를 오전에 하기 때문에 분정례는 어침에 한다. 모든 참석자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강당인 숭교당에 둘러 서 있는다. 헌관들은 남쪽을 향하여 마루 가운데에 서고 헌관들의 좌측에는 축관과 집례가 선다. 그리고 유사들은 헌관들의 맞은편에 서며 나머지 참석자들은 헌관들 오른쪽에 연장자 순으로 선다. 이렇게 모두 자리가 정렬되면 상읍례를 하고 모두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유사는 벽에 걸린 분정판을 떼어 내리고, 먹과 한지 등을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조사를 선정해서 분정 때 집필하나 편의상 참석자 중에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선임한다. 집필자가 선정되면 문중어른은 미리 작성한 시도록을 가지고 분정을 시작한다. 각자의 소임은 나이와 경륜 등을 고려하여 선정한다. 이윽고 집필이 끝나고 참석자의 소임이 결정되면 문중어른은 당부의 말을 하고 파좌를 알린다. 파좌가 되면 모두 상읍례를 하고 모두 숭교당에서 나간다.
을해년(乙亥年)의 집사분정은 다음과 같다.

初獻官

亞獻官

終獻官

大祝

陳設

贊者

李忠浩

金乙奎

金容洛

張元德

李吉濬
李炳卓

裵昌煥


謁者

贊引

奉香

奉爐

奉爵

尊爵

李濟寧

裵碩熙
張完燮

金成洙

李濟雄

裵東轍

李漢鎬


司奠

供飯

掌饌

滌器

盥洗

學生

張基業

裵善高

張亥燮

裵錫熙

裵善轍

裵用基


2) 陳 設
경광서원 향사는 중정일의 당일 아침에 시작한다. 향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전날 문중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서원으로 온다. 서원에 도착한 참석자들은 분정례를 준비하며 문중의 몇몇 사람은 전날 장을 봐온 제물을 가지고 사당으로 가서 진설을 한다. 제물은 제물단자에 의해 마련한 것으로 모두 익히지 않고 날 것으로 올린다. 제물물목은 제물단자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이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추세인 것 같다.



제물은 진설도에 따라서 진설하는데 주향인 배상지 선생 신위, 이종준 선생 신위, 장흥호 선생 신위 순으로 한다. 그러나 제물의 종류나 수량 및 진설 방법은 모두 같으며 상차림은 위와 같다.

3) 享祀禮
향사례는 분정례가 끝나고 진설이 완료되면 시작한다. 먼저 문중어른이 참석자에게 향사를 시작한다고 알린다. 참석자들은 사당으로 가기 위하여 숭교당 앞마당에서 도열을 한다. 향사례는 홀기에 따라 진행되는데 홀기는 다음과 같다.

贊者謁者贊引先入階間拜位○再拜○謁者及贊引各引獻官就外位○贊引引祝及諸執事入就位再拜○鞠躬○排○興○排○興○平身○贊引引祝及諸執事詣盥洗位○各就位○謁者及贊引各引獻官入就排位○再拜○鞠躬○排○興○排○興○平身○謁者進初獻官之左請行事○祝開櫝開簠簋

行初獻禮
謁者引初獻官詣盥洗位北向立○盥手○帨手○引詣栢竹堂先生尊所西向立○引詣神位前跪○上香三上香○尊爵俯伏興○小退○跪○讀祝俯伏興○次詣慵齋先生尊所西向立○引詣神位前跪○上香三上香○尊爵俯伏興○小退○跪○讀祝俯伏興○次詣慵齋先生尊所西向立○引詣神位前跪○上香三上香○尊爵俯伏興○小退○跪○讀祝俯伏○興○引降復位

行亞獻禮
贊引引亞獻官詣盥洗位北向立○盥手○帨手○引詣栢竹堂先生尊所西向立○引詣神位前跪○尊爵○俯伏興○次詣慵齋先生尊所西向立○引詣神位前跪○尊爵俯伏○興○次詣敬堂先生尊所西向立○引詣神位前跪○尊爵俯伏興○引降復位

行終獻禮
贊引引終獻官詣盥洗位北向立○盥手○帨手○引詣栢竹堂先生尊所西向立○引詣神位前跪○尊爵俯伏○興○次詣敬堂先生尊所西向立○引詣神位前跪○尊爵俯伏○興○引降復位獻官皆再拜○祝閉讀

行飮福禮
祝詣尊所以爵酌福酒○祝持俎及刀進減神位前胙肉○謁者引初獻官詣飮福位北向跪○祝進獻官之左東向以爵授獻官○獻官飮卒爵○以爵授祝祝受爵反爵于尊所○祝東向以胙授獻官獻官受胙授祝祝受胙降自東階出門俯伏興○引降復位○獻官皆再拜○鞠躬○排○興○排○興○平身○撤籩豆○祝入撤籩豆豆四籩四各移故處○在位者及學生皆再拜○鞠躬○排○興排○興○平身

望瘞
謁者引初獻官詣望瘞位北向立○祝取祝板降自西階瘞坎○謁者進初獻之左白禮畢禮畢○謁者引初獻官贊引各引獻官以次出○祝及諸執事俱復皆間拜位○再拜○鞠躬○排○興○排○興○平身○以次出○贊者謁者贊引就皆間拜位○再拜○出

찬자와 알자 및 찬인은 절하는 자리(사당 마당)에 나아가서 재배한다. 알자와 찬인은 각기 헌관을 인도하여 바깥자리에 나아간다. 찬인은 축관과 모든 집사를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로 나아가서 재배한다. 찬인과 축관과 모든 집사를 인도하여 손 씻는 자리로 나아가서 손을 씻고 닦는 다음 제자리로 돌아간다.
알자와 찬인은 각기 헌관을 인도하여 절하는 자리로 나아가서 재배한다. 재배가 끝나면 알자는 초헌관 앞으로 나아가 행사를 청하고 존현사 안에 있는 축관은 개독을 하고 제기를 연다.

<初 獻 禮>
알자가 초헌관 앞에 나아가 읍을 하고 손 씻는 곳으로 모셔와 다시 서로 읍을 한 다음 초헌관은 북향을 향해 손을 씻고 닦는다. 그러고 나서 읍을 한 후 계단으로 올라가서 읍을 하고 준소 앞으로 간다. 준소 앞에 온 초헌관은 중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고 알자는 서쪽을 향해 서 있는다. 사당 안으로 들어온 초헌관은 먼저 제일 좌측에 있는 배상지 선생의 신위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러고 나서 봉로와 봉향의 도움을 받아 향을 3번 올린다. 그러면 전작이 술잔을 내려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이 술잔을 다시 준소 옆에 있는 사준에게 준다. 사준이 이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서 봉작에게 준다. 봉작이 이 술잔을 다시 전작에게 주면 전작은 이 잔을 초헌관에게 내밀었다가 제상에 올려놓는다. 이어서 초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뒤로 물러나 꿇어앉는다.
다음에 축관이 초헌관 왼편에 나아가서 동쪽을 향해 꿇어앉은 후 축문을 읽는다. 이때 현관을 비롯한 모든 유사와 집사는 엎드려 있는다.
독축이 끝나면 초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이종준 선생의 신위 앞으로 나아가서 꿇어앉는다. 초헌관은 신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봉로와 봉향의 도움을 받아 향을 3번 올린다. 삼상향이 끝나면 전작은 술잔을 들고 봉작에게 주고 봉작은 술잔을 받아 다시 사준에게 내밀면 사준은 술잔에 술을 따른다. 사준은 술이 채워진 술잔을 봉작에게 주고, 봉작은 이 잔을 전작에게 준다. 전작은 이 술잔을 초헌관에게 내밀어 초헌관이 손을 대는 시늉을 하면 전작은 이를 제상 위에 올려놓는다. 헌작이 끝나면 초헌관은 뒤로 조금 물러나 꿇어앉는다. 그러면 축관이 초헌관 옆으로 와서 서쪽을 향해 꿇어앉고 독축을 한다. 이때도 모든 참석자들은 엎드려 있는다. 독축이 끝나면 축관은 물러나고 다른 사람들도 몸을 일으킨다. 초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다음 신위 앞으로 간다.
장흥효 선생의 신위 앞에 온 초헌관은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 향을 3번 올린다. 그리고 나서 술을 올리는데 전작과 봉작, 사준을 돕는다. 헌작이 끝나면 독축을 하기 위하여 축관이 초헌관 옆으로 와서 서쪽을 향해 꿇어앉는다. 독축은 모두 3번 하는데 홀기에 나와 있는 축문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某年某月某朔某日 某干支後學某官姓某敢昭告于
先師 贈兵曹判書栢竹堂裵先生時危高蹈世易特立淸風百代起我後學謹以淸酌鷄腥祗薦時事尙


先師 贈弘文館副提學慵齋李先生 業傳明師志勵秋霜廉頑立儒百世不忘謹以淸酌鷄腥祗薦時事尙


先師 贈司憲府持平敬堂張先生 早承師訓力學安貧敎誨不倦惠我後人謹以淸酌鷄腥祗薦時事尙


독축을 하는 동안 모두 엎드려 있는다. 이윽고 독축이 끝나면 축관은 제자리로 가고 다른 사람들도 몸을 일으킨다. 초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동문으로 나간다. 알자는 초헌관이 나오면 읍을 하여 맞이하고 원래의 위치까지 안내한 후 읍을 하고 나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亞 獻 禮>
찬인이 아헌관을 인도하여 손 씻는 곳으로 간다. 아헌관은 손을 씻고 닦은 다음 백죽당 선생 준소 앞으로 중문을 통해 들어가 신위 앞에 꿇어앉는다. 찬인은 아헌관을 준소까지 인도하여 서향을 향해 서 있는데 아헌관이 신위 앞에 꿇어앉으면 초헌례와 마찬가지로 전작은 제상에서 빈 술잔을 내려 봉작에게 준다. 봉작은 이 잔을 받아 제주항아리 옆에 있는 사준에게 주면 사준은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서 다시 봉작에게 준다. 봉작은 이 잔을 받아 전작에게 준다. 전작이 이 술잔을 아헌관에게 내밀었다가 제상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헌작이 끝나면 아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 일어난다.
그리고 아헌관은 이종준 선생의 신위 앞으로 간다. 아헌관이 신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으면 전작이 잔을 가지고 술을 채워 와서 아헌관에게 내민다. 아헌관이 손을 대는 시늉을 하면 전작은 술잔을 제상 위에 올려놓는다. 이어서 아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그리고 아헌관은 다시 장흥효 선생의 신위 앞으로 꿇어앉는다. 전작은 술잔을 가지고 술을 채워 아헌관에게 내민다. 아헌관은 손을 대는 시늉을 하고 전작은 니를 제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고 나서 아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동문으로 나간다. 찬인은 아헌관이 나오면 읍을 하면서 맞이한다. 아헌관은 찬인의 안내를 받아 제자리로 돌아간다.

<終 獻 禮>
찬인이 종헌관을 인도하여 손 씻는 곳으로 가서 북쪽을 향해 서 있는다. 종헌관은 손을 씻고 닦는 다음 백죽당 선생 준소 앞으로 나아간다. 이어서 사당 중문을 통햐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앉는다. 그러면 전작이 제상에 빈 술잔을 내려 봉작에게 준다. 봉작은 이 잔을 받아 사준에게 준다. 사준은 이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서 봉작에게 준다. 봉작은 이 잔을 전작에게 준다. 전작은 이 잔을 종헌관에게 내밀었다가 제상에 올린다. 이어서 종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 일어난다.
그리고 종헌관은 다시 헌작을 하기 위하여 이종준 선생의 신위 앞으로 가서 꿇어앉는다. 이어서 전작, 봉작, 사준에 의해서 제상에 술잔을 올린다. 그리고 종헌관은 몸을 엎드렸다 일어난다.
이종준 선생께 헌작이 끝나면 종헌관은 장흥효 선생 신위 앞에 나아가서 꿇어앉는다. 전작은 술잔을 가지고 술을 채워 종헌관에게 내민다. 종헌관은 잔에 손을 대는 시늉을 하고 전작은 이를 제상 위에 올린다. 그리고 나면 종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동문으로 나간다. 이때 축관은 폐독을 한다. 찬인은 종헌관이 나오면 안내하여 제자리로 모신다.

<飮 福 禮>
축관은 준소로 나아가서 복주를 뜨고 또 신위 앞에 진설된 고기를 조금 떼어낸다. 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음복하는 곳으로 나아간다. 초헌관이 북쪽을 향해 꿇어앉아 있으면 축관은 현관 왼편에 나아가서 동쪽을 향해 헌관에게 술잔을 준다. 초헌관은 이를 받아 마신다. 이어서 축관이 고기 조각을 주면 안주를 집어 먹는 시늉을 한다. 그러고 나서 초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동쪽 계단으로 내려다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축관은 다시 서문으로 들어간다. 초헌관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헌관들은 재배를 한다. 재배가 끝나면 제기를 덮는다. 그런 후 모두 재배를 한다.

<望 瘞>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망예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초헌관은 북쪽을 향해 서 있으면 축관이 축문을 가지고 서쪽 계단으로 내려가 땅을 파고 묻는다, 그러고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에 따라 제자리로 돌아간다.
초헌관이 제자리로 오면 알자는 초헌관에게 향사례가 끝났음을 아뢴다. 알자와 찬인은 각기 초헌관과 헌관을 인도하여 차례로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축관과 모든 집사는 절하는 위치로 나아가서 재배한 후 차례로 나간다. 또한 찬자와 알자 및 찬인도 절하는 자리로 가서 재배하고 나간다.

4) 飮福開座
이 서원의 향사는 다른 서원과 달리 오전 10시 경에 지내기 때문에 향사가 끝나면 바로 음복개좌를 한다. 헌관과 유사 및 집사들은 숭교당에 둘러 앉는데 그 위치는 분정례를 행할 때와 같다. 즉 헌관들이 남쪽을 향하여 마루 가운데 위치하고 축과 집례가 그 좌측에 위치하며 유사들은 헌관들과 마주보는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나머지 참석자들은 헌관들과 유사들 사이에 위치한다. 이렇게 자리가 정돈되면 서로 상읍례를 하고 앉는다. 문중어른이 나와서 개좌를 알리면 준비한 음복상이 들어온다. 음복상은 헌관들과 축관, 집례는 독상이고 나머지는 삼겹상이다. 음복상에는 쇠고기, 밤, 대추 등의 제물과 술안주로 가오리찜을 놓는다.
음복상이 다 나오면 참석자들 중에 나이가 적은 사람이 초헌관의 잔에 술을 먼저 따른다. 그리고 아헌관, 종헌관, 축관, 집례, 연장자 순으로 술을 따른다. 술이 각자의 잔에 다 채워지면 문중어른이 “초헌관 순배요.”라고 외치면 모두 상읍례를 한 후 마신다. 잔을 내려놓을 때에도 상읍례를 한다. 초헌관 순배가 끝나면 아헌관 순배를 한다. 참석자들 중에서 나이가 적은 사람이 아헌관 잔에 먼저 술을 따른 후 초헌관, 종헌관 등의 순으로 술을 따른다. 문중어른이 “아헌관 순배요.”라고 외치면 모두 잔을 든 후 상읍례를 하고 마시고 다시 상읍례를 하고서 내려놓는다. 다음은 종헌관 순배이다. 역시 나이가 적은 사람이 나와서 종헌관, 초헌관, 아헌관 등의 순으로 술을 따른다. 그리고 문중어른이 “종헌관 순배요.”라고 외치면 모두 상읍례를 하고 마시면 잔을 니랴놓을 때도 상읍례 한 후 내려놓는다. 그러고 나서 문중어른이 향사에 참석하여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파좌를 알린다.

5. 薦 望
음복개좌가 끝나면 문중어른과 유사 그리고 헌관들이 모여 다음 향사 때의 임원들을 선임하는 의논을 한다. 임원의 선임은 전임 원장이나 문중에서 추천하여 결정하게 되는데 유림에서 덕망 있고 학식이 높은 사람으로 선임한다.
의논 끝에 임원들이 결정되면 망기를 작성하는데 고유사 1명, 재유사 2명의 망기를 작성한다. 망기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위의 3명 외에 망기를 받는 사람으로 아헌관, 종헌관, 축관, 찬자가 있는데 이들의 망기는 향사일 한달 보름 전이나 두달 전에 열리는 당회 때에 선임되어 작성한 후 보내게 된다. 당회 때에는 이러한 망기작성 외에 향사에 초청하는 사람들에게 회문(回文)이라는 초청창도 작성하여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때에 향사에 대한 경비 등 전반적인 사항을 의논하여 결정한다.


출처: 안동(安東)의 서원(書院) 향사(享祀)
경광서원(鏡光書院)

안동민속박물관(安東民俗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