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용재공◆이종준

[연산군일기] 김일손 등을 벤 것을 종묘 사직에 알리고 중외에 사령을 반포하다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2. 10:35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27일 신유 1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김일손 등을 벤 것을 종묘 사직에 알리고 중외에 사령을 반포하다


○辛酉/告誅金馹孫等于宗廟、社稷, 受百官賀, 頒赦中外曰:

恭惟, 我世祖惠莊大王以神武之資, 當國家危疑, 群姦盤據之際, 沈機睿斷, 戡定禍亂, 天命、人心自有歸屬, 聖德神功卓冠百王。 增光祖宗艱大之業, 貽厥子孫燕翼之謀, 繼繼承承, 式至今休。 不意姦臣金宗直包藏禍心, 陰結黨類, 欲售兇謀, 爲日久矣。 假托項籍義帝之事, 形諸文字, 詆毁先王, 滔天之惡, 罪在不赦, 論以大逆, 剖棺斬屍。 其徒金馹孫權五福權景裕朋姦黨惡, 同聲相濟, 稱美其文, 以爲忠憤所激, 書諸史草, 欲垂不朽, 其罪與宗直同科, 竝令凌遲處死。 馹孫李穆許磐姜謙等誣飾先王所無之事, 傳相告語, 筆之於史, 李穆許磐竝處斬, 姜謙決杖一百、籍沒家産, 極邊爲奴。 表沿沫洪瀚鄭汝昌茂豐正 等, 罪犯亂言, 姜景叙李守恭鄭希良鄭承祖等, 知亂言而不告, 竝決杖一百、流三千里。 李宗準崔溥李黿李冑金宏弼朴漢柱任熙載康伯珍李繼孟姜渾等俱以宗直門徒, 結爲朋黨, 互相稱譽, 或譏議國政, 謗訕時事, 熙載決杖一百、流三千里, 李冑決杖一百、極邊付處, 宗準崔溥李黿宏弼漢柱伯珍繼孟姜渾等, 決杖八十、遠方付處, 而流人等竝定烽燧庭爐干之役。 修史官等見史草, 而不卽啓, 魚世謙李克墩柳洵尹孝孫等罷職, 洪貴達趙益貞許琛安琛等左遷。 隨其罪之輕重, 俱已處決, 謹將事由, 告于宗廟、社稷。 顧予寡昧, 剪除姦黨, 戰懼之念旣深, 而喜幸之心亦切。 肆於七月二十七日昧爽以前, 强竊盜、關係綱常外, 已決正、未決正, 咸宥除之。 敢以宥旨前事, 相告言者, 以其罪罪之。 於戲! 人臣無將, 旣伏不道之罪。 雷雨作解, 宜霈惟新之恩, 故玆敎示, 想宜知悉。



김일손 등을 벤 것을 종묘 사직에 고유하고, 백관의 하례를 받고 중외에 사령(赦令)을 반포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세조 혜장 대왕(世祖惠莊大王)께서 신무(神武)의 자질로 국가가 위의(危疑)하고 뭇 간신이 도사린 즈음을 당하여, 침착한 기지와 슬기로운 결단으로 화란(禍亂)을 평정시키시니 천명(天命)과 인심이 저절로 귀속되어, 성덕(聖德)과 신공(神功)이 우뚝 백왕(百王)의 으뜸이었다. 그 조종(祖宗)에게 빛을 더한 간대(艱大)한 업적과 자손에게 끼친 연익(燕翼)의 모훈(謨訓)을, 자자손손 이어 받아 오늘에까지 이르러 아름다웠었는데, 뜻밖에 간신 김종직이 화심(禍心)을 내포하고, 음으로 당류(黨類)를 결탁하여 흉악한 꾀를 행하려고 한 지가 날이 오래되었노라.

그래서 그는 항적(項籍)의제(義帝)를 시해한 일에 가탁하여, 문자에 나타내서 선왕(先王)을 헐뜯었으니, 그 하늘에 넘실대는 악은 불사(不赦)의 죄에 해당하므로 대역(大逆)으로써 논단하여 부관 참시(剖棺斬屍)를 하였고, 그 도당 김일손·권오복·권경유가 간악(姦惡)한 붕당을 지어 동성 상제(同聲相濟)하여 그 글을 칭찬하되, 충분(忠憤)이 경동한 바라 하여 사초에 써서 불후(不朽)의 문자로 남기려고 하였으니, 그 죄가 종직과 더불어 과(科)가 같으므로 아울러 능지 처사(凌遲處死)하게 하였노라.

그리고 일손이 이목·허반·강겸 등과 더불어 없었던 선왕의 일을 거짓으로 꾸며대서 서로 고하고 말하여 사(史)에까지 썼으므로, 이목·허반도 아울러 참형(斬刑)에 처하고, 강겸은 곤장 1백 대를 때리고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여 극변(極邊)으로 내쳐 종으로 삼았노라.

그리고 표연말(表沿沫)·홍한(洪瀚)·정여창(鄭汝昌)·무풍정(茂豊正) 총(摠) 등은 죄가 난언(亂言)에 범했고, 강경서(姜景敍)·이수공(李守恭)·정희량(鄭希良)·정승조(鄭承祖) 등은 난언(難言)임을 알면서도 고하지 않았으므로 아울러 곤장 1백 대를 때려 3천 리를 밖으로 내치고, 이종준(李宗準)·최부(崔溥)·이원(李黿)·이주(李胄)·김굉필(金宏弼), 박한주(朴漢柱)·임희재(任熙載)·강백진(康伯珍)·이계맹(李繼孟)·강혼(姜渾) 등은 모두 종직의 문도(門徒)로서 붕당을 맺어 서로 칭찬하였으며, 혹은 국정(國政)을 기의(譏議)하고 시사(時事)를 비방하였으므로, 희재는 곤장 1백 대를 때려 3천 리 밖으로 내치고, 이주는 곤장 백 대를 때려 극변(極邊)으로 부처(付處)하고 이종준·최보·이원·김굉필·박한주·강백진·이계맹·강흔 등은 곤장 80대를 때려 먼 지방으로 부처함과 동시에 내친 사람들은 모두 봉수군(烽燧軍)이나 정로한(庭爐干)의 역(役)에 배정하였고, 수사관(修史官) 등이 사초를 보고도 즉시 아뢰지 않았으므로 어세겸(魚世謙)·이극돈(李克墩)·유순(柳洵)·윤효손(尹孝孫) 등은 파직하고, 홍귀달(洪貴達)·조익정(趙益貞)·허침(許琛)·안침(安琛) 등은 좌천(左遷)시켰다. 그 죄의 경중에 따라 모두 이미 처결되었으므로 삼가 사유를 들어 종묘 사직에 고하였노라.

돌아보건대 나는 덕이 적고 일에 어두운 사람으로 이 간당(奸黨)을 베어 없앴으니, 공구한 생각이 깊은 반면에 기쁘고 경사스러운 마음도 또한 간절하다. 그러므로 7월 27일 새벽을 기하여 강도·절도와 강상(綱常)에 관계된 범인을 제외하고는 이미 판결이 되었든 판결이 안되었든 모두 사면하노니, 감히 유지(宥旨)를 내리기 이전의 일로써 서로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죄를 다스릴 것이다.

아! 인신(人臣)이란 난리를 만들 뜻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부도(不道)의 죄가 이미 굴복하였으니, 뇌우(雷雨)가 작해(作解)099) 하듯이 마땅히 유신(惟新)의 은혜에 젖도록 하겠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敎示)하는 것이니, 이 뜻을 납득할 줄 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23장 B면 【국편영인본】 13 책 325 면
【분류】 역사-편사(編史)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역(軍役) / 왕실-사급(賜給)

[註 099] 뇌우(雷雨)가 작해(作解) : 《주역(周易)》 해괘(解卦) 대상(大象)에 ‘뇌우(雷雨)가 작(作)하는 것이 해(解)이니, 군자가 이용하여 과(過)를 사하고 죄를 유(宥)한다.’ 하였음.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ja_10407027_001



권경유(權景裕)

? ~ 1498년(연산군 4, 戊午年).
군요(君饒), 자범(子汎), 치헌(痴軒), 효강공(孝康公).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무오사화 때 김일손(金馹孫)과 함께 죽임을 당한 조선 전기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사림이며 문인이다. 사림 성장기에 권주(權柱), 권달수(權達手), 이주(李胄) 등과 함께 안동 지역 사림파의 의리 정신을 조정에서 떨쳤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군요(君饒)·자범(子汎), 호는 치헌(癡軒). 권집지(權執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영화(權永和), 외할아버지는 이승손(李承孫), 아버지는 광주판관(光州判官) 권질(權耋), 처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허혼(許混)의 딸이다.

권경유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했다. 1483년(성종 14) 진사가 되고 148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에 등용된 뒤 홍문관정자를 거쳐 1490년에는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부모를 공양하기 위하여 외직으로 나갈 것을 요청하여 제천현감으로 나갔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유자광(柳子光), 이극돈(李克墩) 등의 모함을 받아 7월 27일 권오복(權五福), 김일손, 이목(李穆), 허반(許磐)과 함께 처형되었다.

권경유는 평소 성품이 강직하였다. 일례로 김일손권경유 서재의 이름을 치헌(癡軒)이라 짓고 “그대는 외딴 고을의 현감을 자청하였으니 벼슬살이에서 바보짓이다. 그대는 조용히 앉아서 못된 토호와 간사한 향리를 무찌르며 홀아비와 과부를 어루만지는 데에만 마음을 두고 세금 걷는 데에 서투르니 정사에 어리석다”라고 역설적으로 칭찬하였다. 또 남효온(南孝溫), 김일손, 강경서(姜景敍) 등과 함께 사장(詞章)·정사(政事)·절의(節義)·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예컨대 남효온권경유에 대해 “성품이 강의(剛毅)하고 일을 만들기를 즐기지 않았다”라고 평하였다.

시호는 효강(孝康)이며, 중종반정 후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1874년 형 권경우(權景祐, 1448~1501)와 함께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수곡리에 있는 수곡서원(水谷書院)에 배향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Contents?local=andong&dataType=01&contents_id=GC02401202



*이조정랑 권경유(權景裕)는 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의 처조부(妻祖父)이고. 妻父는 권작(權綽)이다.




이원(李黿)

?∼1504(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낭옹(浪翁), 호는 재사당(再思堂). 이제현(李齊賢)의 7세손이며, 이계번(李繼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윤인(李尹仁)이다. 아버지는 현령 이공린(李公麟)이며, 어머니는 증이조판서 박팽년(朴彭年)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5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