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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오공(竹塢公) 이기종(李紀宗) 효행전(孝行傳)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3. 09:47

□죽오공(竹塢公) 이기종(李紀宗)

○配는 전주이씨(全州李氏) 경계(景契)의 女. ○配는 진주유씨(晉州柳氏) 진오(鎭五)의 女. *1987년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



竹塢處士孝行錄(죽오처사효행록)
–族人(족인) 昌雨(창우) 撰(찬)

昔韓文公作董生行曰嗟哉董生孝且慈刺史不能薦天子不聞名聲惟有天翁知何文定撰西山詩曰安得是邦賢使君即爲飛牋啓丹扆峨峨雙表旌高門題作西山汪孝子噫董汪之孝天獨知之民無稱焉而名始彰於韓子之文跡乃著何公之詩此非屛居行義之士隱晦於一時之暫而炳朗於百世之久者歟惟我湖中宗族碩德聞人盖亦多矣而最其根天之孝篤地之行惟獨一竹溪處士乎處士姓李貫慶州諱紀宗字汝綱竹塢其號也自在齠齔之時得一珍果美味必獻父母此乃懷橘舍肉之誠也日每定省溫淸不離跬步亦其扇枕驅蚊之衷也旣長菽水而盡歡甘毳以養志其有不安節不櫛不翔刀圭百方期於痊可王祥之卧冰孟宗之泣竹罔尃美於古矣旣失怙恃血淚三載幾至滅性每於忌日七戒三齋處若終身之喪焉眞所謂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之純孝世夫推其孝於百行而兄弟之友愛也一門和睦子孫之訓戒也三物俱備以至奴隷百口咸以恩撫州閭鄕黨舉稱懿範餘力學文卓然有古君子遺風雅韻可與唐之董汪並稱其孝行而惜哉世無賢刺史之薦揚聲名或幾乎湮沒然日後倘有如韓文公何文定者復出而稱賞之詠歎之則名必益彰跡必愈著矣余愧夫才拙文短曷以壽其傳以不朽耶略記顚末以備考覽焉

*慶州李氏鼎珉錄 v2 (泰炯 編輯)


●죽오처사효행록(竹塢處士孝行錄) 역문(譯文)
   -족인(族人) 창우(昌雨) 찬(撰)

옛날 한문공(韓文公)이 동생(董生)에게 글을 지어주었으되 슬프다, 동생(董生)이여 효도하고 사랑하는 것을 자사(刺史, 지방장관)가 천거(薦擧)를 안하니 천자(天子)가 명성을 듣지 못하고 오직 하늘만 안다 했고 문정(文定)이 서산시(西山詩)를 지으되 어찌하면 어진 지방관을 만나 효행을 나라에 알리고 높고 높은 정려각(旌閭閣)을 지어 서산왕효자(西山汪孝子)라 쓸고 하였으니 동씨(董氏), 왕씨(汪氏)의 효(孝)는 하늘만이 알아 백성은 아는 이가 없으니 그 이름이 처음으로 한자(韓子)의 글에 빛이 났고 그 자취는 시(詩)에 드러났으니 이것이 의리를 행한 선비가 한때는 숨었으나 백세(百世)에 이름이 더욱 빛남이 아닌가. 우리 호중(湖中)에 있는 일가의 덕행(德行)은 들은 사람이 많고 더욱 하늘에 타고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은 죽계처사(竹溪處士)뿐이랴.
공의 성은 이씨(李氏)요, 관은 경주(慶州)며 휘는 기종(紀宗)이며 자는 여강(汝綱)이었고 죽오(竹塢)는 그 호니 어릴 때부터 맛이 좋은 과일 한 개라도 얻으면 반드시 부모께 드리니 이게 이 귤과 고기를 품고 온정(溫淸)도 날마다 잠자리를 살펴 겨울에는 따시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하며 잠시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은 것은 베갯머리에서 부채질하는 것과 모기를 쫓아주는 일과 같다. 장성하여 음식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고 거처로 뜻을 기르며 부모가 편치 않으면 세수를 아니 하고 백방으로 약을 구해 병환을 낫게 하는 것은 왕상(王祥)의 얼음 위에 눕는 것과 맹종(孟宗)의 대나무에 우는 것만 아름다움이 아니라 양친을 여의고 3년을 피눈물로 지내느라 거의 죽을 뻔했고 매년 제사 때면 오래 재계하여 종신(終身) 상주(喪主)와 같이 애통하니 참 이른바 부모 살아서는 예로 섬기고 죽으면 장사도 예로 하고 제사 때도 예로 하는 순진한 효도라 하겠다.
백행(百行)에 근본인 효를 미루어 형제간에 우애함과 일꾼이 화목함과 자손을 훈계할 때도 삼물(三物)이 구비함과 노복백구(奴僕百口)에까지 다 은혜로 무마하니 향당(鄕黨)이 모범이라 칭찬하고 힘이 남으면 학문(學文)을 다 하여 높이 옛 군자(君子)의 틀이 있으니 당나라 동씨(董氏), 왕씨(汪氏)로 더불어 아울러 효행을 일컬으니 아깝다. 세상에는 어진 이의 천거(薦擧)가 없어 명성이 차츰 없어질 지경에 이르니 후일에 한문공(韓文公)과 한문정(韓文定) 같은 분이 다시 나서 칭송하고 시로 읊으며 명성이 나게 하고 빛나며 형적(形跡)도 다시 드러나리라. 내가 재주가 오졸하고 글이 짧으며 어찌 오래도록 전하여 썩지 않을까. 그 전말(顚末)을 대략 기록하여 후일 참고하는데 준비한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