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충민공◇이명민

[세종실록] 불당 경찬회를 베풀다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1. 14:09
세종실록 122권, 세종 30년 12월 5일 정사 1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불당 경찬회를 베풀다


○丁巳/佛堂成, 設慶讃會, 凡五日而罷。 佛堂制作, 窮極侈麗, 金珠眩目, 丹靑耀日。 以絳綃裁縫被楹, 謂之柱衣, 以防汚毁。 刻香木爲山, 安黃金佛三軀于其中。 其金佛, 安平大君嘗監鑄于誠寧大君第, 令近仗具冠帶, 如衛大駕儀輿入于內, 親賜觀覽, 然後安于佛堂。 其築外垣時方凍洌, 垣之內外, 燃炭以溫之, 須臾而燥。 宗親、大君、諸君爭設日齋, 惟恐或後。 議政府左參贊鄭苯、兵曹判書閔伸提調其役, 皆賜毛衣; 李命敏以督役, 超資授職。 初以政府六曹隨例諫諍, 及承監督之命, 務極奢侈, 以稱上意, 識者譏之。 及作會, 命都承旨李思哲, 先期致齋于其所, 統察諸事。 又令各司長官親監供給饌品, 皆內廚饔人所辦, 與御膳無異。 又供外僧及社長於佛堂外乾川, 一日所供, 不下七八百人, 所費米二千五百七十餘石。 爲製新曲, 被之管弦, 樂器皆令新造。 以工人五十、舞童十人預習之, 用以供佛, 謂之音聲供養。 鍾磬梵唄絲竹, 聲聞大內。 思哲朴堧金守溫雜於群僧, 踴躍周匝, 不徹晝夜, 汗出渾身, 略無倦色。 命敏與一宦者宣言: "方精勤時, 出門顧見, 舍利放光, 光如火焰。 中有白氣, 濃結滴落, 若眞珠然。" 聞者譏之曰: "誠有是歟? 何故在門外命敏獨見, 而堂內衆人, 未之見也?" 會罷, 首陽大君圖慶讃會, 又製契文, 列書與會人名, 作軸分與之。 注書成任亦與焉, 首陽大君語曰: "汝謂孔子之道, 與釋迦孰優?" 任曰: "孔子之道, 吾嘗讀其書, 粗知其義, 至若釋氏, 吾不嘗見, 其書未敢知也。" 大君曰: "釋氏之道過孔子, 不啻霄壤。 先儒曰: ‘雖欲挫燒舂磨, 無所施。’ 此未知其理而妄言者也。"


불당(佛堂)이 이룩되니, 경찬회를 베풀고 5일 만에 파하였다. 불당의 제도가 사치와 화려함이 지극하여 금과 구슬이 눈을 부시게 하고, 단청이 햇볕에 빛나며, 붉은 비단으로 재봉(裁縫)하여 기둥에 입혀서 주의(柱衣)라고 이름하여 더럽혀짐을 방지하고, 향나무를 새겨 산(山)을 만들고 금부처 세 구(軀)를 그 가운데 안치하였으니, 그 금부처는 안평 대군(安平大君)이 일찍이 성녕 대군(誠寧大君) 집에서 감독해 만든 것이다. 근장(近仗)으로 하여금 관대(冠帶)를 갖추고 대가(大駕)를 호위하는 의식과 같이 대내(大內)에 메고 들어가게 하여, 친히 관람하신 뒤에 불당에 안치하였다. 그 바깥담을 쌓을 때에 자꾸 얼어서, 담의 안팎에 숯불을 피워서 따뜻하게 하니, 잠시 만에 담이 말랐다. 종친(宗親)·대군(大君)·제군(諸君)들이 다투어 일재(日齋)를 베풀어 혹 뒤질까 염려하였고, 의정부 좌참찬 정분(鄭苯)과 병조 판서 민신(閔伸)이 그 역사(役事)에 제조(提調)가 되었으므로, 모두 털옷[毛衣]을 하사하고, 이명민(李命敏)은 역사를 감독한 일로써 품계를 뛰어올려 벼슬을 제수하였다. 정분민신은 처음에는 의정부와 육조(六曹)의 당상(堂上)으로써 예(例)에 따라 간(諫)하였으나, 감독의 명을 받음에 미쳐서는 지극히 사치하게 하기를 힘써서 임금의 뜻을 맞추니, 식자(識者)들이 이를 비난하였다. 경찬회를 베풀자, 도승지 이사철(李思哲)에게 명하여 기일 전에 그곳에서 치재(致齋)하고 모든 일을 통찰(統察)하게 하며, 또 각사(各司)의 장관(長官)으로 하여금 공급할 찬품(饌品)을 친히 감독하게 하니, 모두 내주 옹인(內廚饔人)045) 이 장만한 것으로 어선(御膳)과 다름이 없고, 또 외승(外僧)과 사장(社長)을 불당밖의 건천(乾川)에서 공궤하니, 하룻 동안에 공궤한 사람이 7,8백 명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소비한 쌀이 2천 5백 70여 석이었다. 신곡(新曲)을 지어 관현(管絃)에 올리고, 악기(樂器)를 모두 새로 만들어서 공인(工人) 50명과 무동(舞童) 10명으로 미리 연습시켜서 부처에게 공양하여, 음성공양(音聲供養)이라고 일렀으니, 종(鍾)·경(磬)·범패(梵唄)·사(絲)·죽(竹)의 소리가 대내(大內)에까지 들리었다. 정분·민신·이사철·박연(朴堧)·김수온(金守溫) 등이 여러 중[僧]들과 섞이어 뛰고 돌면서 밤낮을 쉬지 아니하니, 땀이 나서 몸이 젖어도 피곤한 빛이 조금도 없었다. 이명민이 한 환자(宦者)와 더불어 선언하기를,

"바야흐로 정근(精勤)할 때에 문(門)에 나와 돌아보니, 사리(舍利)가 빛을 내는데, 빛이 불꽃과 같고, 가운데에 흰 기운이 있어 진하게 맺혀서, 떨어지는 것이 진주(眞珠)와 같았다."

고 하니, 듣는 자들이 비난하기를,

"진실로 그런 것이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문밖에 있는 명민만이 홀로 보고, 당(堂) 안에 있는 여러 사람은 보지 못하였을까."

하였다. 회(會)를 파하고는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경찬회를 그림으로 그리고, 또 계문(契文)을 지어 모임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벌여 써서 축(軸)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으니, 주서(注書) 성임(成任)도 참여하였다. 수양 대군이 말하기를,

"너는 공자(孔子)의 도(道)와 석가(釋迦)가 누가 낫다고 이르느냐."

하니, 성임이 대답하기를,

"공자의 도는 내가 일찍이 그 글을 읽어서 대강 그 뜻을 알거니와, 석씨(釋氏)에 이르러서는 내가 일찍이 그 글을 보지 못하였으니, 감히 알지 못합니다."

하매, 대군이 말하기를,

"석씨의 도가 공자보다 나은 것은 하늘과 땅 같을 뿐만 아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비록 좌소용마(挫燒舂磨)046) 하고자 할지라도 베푸는 바가 없다. ’고 하였으니, 이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말한 것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8책 122권 12장 A면 【국편영인본】 5책 106면
【분류】사상-불교(佛敎) / 건설(建設) / 예술-미술(美術)

[註 045] 내주 옹인(內廚饔人) : 궁내에서 음식 만드는 사람.
[註 046] 좌소용마(挫燒舂磨) : 몸을 꺾어 태우고 찧어서 가는 것.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da_13012005_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