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양평공◇이양생

[용재총화] 慵齋叢話卷之四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1. 13:24

慵齋叢話卷之四


雞城君李陽生。本庶孼賤人。嘗以造屨資生。入壯勇隊。從征李施愛有功。賜功臣號。嘉善封君。目不知書。然性純謹樂易。無一毫私曲。嘗過舊肆。見微時所與交者。必下馬論懷而後去。其妻則我叔姑家婢也。容貌麤陋。年老無子。人有勸之者曰。君有大功。宦至宰樞。且無胤嗣。何不更娶名家女爲婦生子乎。答曰。吾少時所與共貧困。而一朝棄之不可也。以賤人而娶良家女。有害於義不可也。吾嫡兄微弱不能振。不如以其子爲後。賴吾功蔭。庶幾大吾宗也。人皆謂知分而有長者風。性度弘大。雖紗緞美衣。卽脫以與人。曾無一毫吝惜之意。又能善於馳射。其搏虎雖馮婦不及也。見人顏色。必辨盜賊。十擧而不一失。雖部雍不若也。每有捕虎捕盜之事。朝廷委而任之。

*출처: 고전원문 > 대동야승 > 용재총화 > 慵齋叢話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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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총화 제4권

○ 계성군(雞城君) 이양생(李陽生)은 본래 서자로 미천한 사람이다. 일찍이 신을 만들어 겨우 먹고 살았는데, 장용대(壯勇隊)에 들어가 이시애를 정벌하는 일에 공이 있어서 공신호(功臣號)를 하사받아 가선(嘉善)에 이르고 봉군(封君)되었으나 글을 몰랐다. 그러나 성품이 순진하고 근엄하고 화락하여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었다. 일찍이 옛 장터를 지나다가 이전에 미천하였을 때 사귀었던 친구를 보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얼싸안고 서로 이야기한 뒤에 떠났다. 그 아내는 나의 종년인데, 용모가 추하고 보잘것없는 데다가 나이가 많아도 자식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권하기를, “그대는 큰 공이 있어 벼슬이 재추(宰樞)에 이르렀으나 뒤를 이을 자식이 없으니, 어찌 다시 이름있는 가문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 자식을 낳지 않느냐.” 하였으나, 그는, “내가 젊었을 때 빈곤을 같이하였는데, 하루아침에 버리는 것은 옳지 못하며, 천인으로서 양가의 딸을 취함은 의에 해가 되니 옳지 못하다. 내 적형(嫡兄)이 미약하여 떨치지 못하니 그 아들로써 대를 삼아 내 음공에 힘입게 하면 이는 곧 우리 종가를 크게 함이 될 것이다.” 하니, 사람들이 모두, “분수를 아니 장자(長者)의 풍이 있다.” 하였다. 성품과 국량이 넓고 커서 비록 좋은 비단옷을 남에게 벗어 주더라도 조금도 아까워하는 뜻이 없었다. 또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잘했으며, 그가 호랑이를 잡는 것은 풍부(馮婦)D033)라 할지라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사람의 안색을 보고서 도적을 분변하여 10에 1이라도 실수가 없었으니 소옹(邵雍)D034)이라도 이만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매양 호랑이를 잡고 도적을 잡을 일이 있으면 조정에서는 이 사람에게 위임하였다.

[주-D033] 풍부(馮婦) : 예전에 용력(勇力)이 있어서 범을 때려 잡았다는 사람.
[주-D034] 소옹(邵雍) : 세상에서는 소강절(邵康節) 선생이라 한다. 점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김용국 이지형 (공역)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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