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용재공◆이종준

김해성의 에세이문학 작가 등단 및 추천작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2. 4. 10. 16:33

김해성의 에세이문학 작가 등단 및 추천작

 

조선왕조 국새國璽를 찾아서

김 해 성

 

1980년대 초 미국 뉴욕지사에 근무할 때였다. 지역 교포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한 한국인 목사가 벼룩시장에서 조선왕실 국새를 사서 일본인 수집가에게 우리 돈 3억 원에 팔아 횡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는 6‧25 때 파병되었던 미군이 조선왕실 유물을 많이 가지고 왔는데

국새가 3개 정도 더 미국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주축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 되었다.

미국인들은 노년이 되면 살던 집을 팔고 텍사스나 캘리포니아 등 따뜻한 지역에 작은 집으로 이사하여

단촐 하게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지고 있는 물건 중 필요한 것만 빼고는 중고시장이나 벼룩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혹시 그런 행운을 만날까 하여 주말마다 벼룩시장을 뒤지고 다녔다.

국새가 손에 들어오면 팔자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동네 주변만 돌아 다녔는데 점차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 등 인근의 벼룩시장으로 범위를 넓혔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으나 국새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미국인 친구가 필라델피아에 미국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남북전쟁 전에는 노예시장이었던 곳이라고 했다. 귀가 솔깃했다.

주말에 나는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그곳에 갔다. 그 벼룩시장을 처음 본 순간 엄청난 규모에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축구장 두 배 정도 넓은 면적에 노점상들이 바둑판 같이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있었다.

중국 도자기와 토기, 인도 공예품, 이집트 석조유물, 히틀러 시대 독일군 철모 등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 넓은 곳을 뒤지고 다녀도 국새는 보이지 않았다.

신문 기사에 대하여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조선왕조 국새는 하나뿐이 아니었을까? 공연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궁금증을 견딜 수 없어 역사에 조예가 있는 한국 친구에게 조선왕조 국새에 대한 자료를 찾아서 보내달라고 하였다.

조선왕조 국새는 여러 개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명나라에서 보내준 고려국새를 사용했고 인조 때부터

청나라로부터 받은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을 조선 후기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그 외에 실무용 국새가 있었다.

중국의 외교문서에는 대보大寶, 일본과의 외교문서에는 이덕보以德寶, 관료 임명장과 국왕명령서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 국왕 유서에는 유서지보諭書之寶, 과거 합격증에는 과거지보科擧之寶를 사용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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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국새는 왕조 권위의 상징이었다.

단순한 도장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산 선조의 영혼이 면면히 깃들어져 있는 값진 보물이었다.

이렇게 귀한 나라의 상징이 일제 강점기와 6‧25 때 많이 유실되었다고 하니 가슴 아픈 일인데

유실된 국쇄가 매물로 거래가 된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

그래도 지식인으로 자부하던 사람으로 잠시나마 이재의 대상으로 알고 벼룩시장을 돌아다닌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선조의 영혼을 찾아 제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로 필라델피아 벼룩시장에 갔을 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미국 노점상이 말을 걸어 왔다.

“일본 사람인가? 중국 사람인가?”

“한국 사람이다.”

“이거 읽을 수 있는가?”

그가 내민 것은 팔만대장경과 비슷한 검은 색 목판이었다. 폭이 50㎝는 되는 것 같았다.

용재선생문집목록’慵齋先生文集目錄’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조선시대 유물임이 분명했다.

“한국 것 같다. 몇 개 더 있는가?”

“이것뿐이다.”

“얼마에 팔겠는가?”

“100불!”

“여기 흠집이 있으니 50불 주겠다.”

지루한 협상 끝에 결국 75불에 낙착을 보았다. 목판을 사가지고 오면서 마음이 설렜다.

조선왕실 국새는 아니지만 국보급에 속하는 문화재가 아닐까?’

집에 가지고 와서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으니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풍스럽기도 하거니와 집주인의 교양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친구에게 용재선생에 대해 알아보아 달라고 편지와 목판 사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용재에 대한 자료를 듬뿍 보내왔다.

용재는 이종준李宗準(1458-1499)의 호이며 연산군 때 문필가였다. 성종 때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서장관書壯官을 지냈다.

조선왕조 국새를 찾으려는 내 노력은 실패했지만 용재선생문집목록 목판 발견으로 결실을 맺었으니

꿩 대신 닭을 잡은 셈이었다. 가끔 상상해 볼 때가 있다. 만약 국새가 내 손에 들어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거금에 팔지 않고 마음을 바꿔 문화재청에 기증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정부 표창장과 금일봉을 받았을 것이고 신문에도 짤막한 기사가 났을 것이다.

‘○○기업 뉴욕지사장, 미국 벼룩시장에서 조선왕조 국새를 사서 문화재청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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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록 조선왕조 국새를 찾지 못했지만 누군가 국새를 찾아서 미국 박물관이나 일본인에게 팔지 말고

우리나라로 가지고 오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꼭 국쇄를 찾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선조의 영혼을 외국 하늘에서 떠돌게 하는 것은 후손 된 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 된다.

 

출처: 재경 춘고 35회 https://cafe.daum.net/chun35/nIU/2089 

 

김해성 동창의 에세이문학 작가 등단 및 추천작

조선왕조 국새國璽를 찾아서김 해 성 1980년대 초 미국 뉴욕지사에 근무할 때였다. 지역 교포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한 한국인 목사가 벼룩시장에서 조선왕실 국새를 사서 일본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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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성(35회) 동문 에세이문학 추천 수필가 등단

 

김해성(35회) HS 인터내셔널 대표가 에세이문학에 출품한 '조선왕조 국새(國璽)를 찾아서'로 완료 추천을 받아 수필가로 등단했다.

심사위원회는 김 수필가의 완료 추천작에 대해 “조선왕조 국새를 찾으러 나섰던 체험을 소재로 쓴 글이라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며 “국새와 용재 선생에 대한 탐구가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 글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김 수필가는 “글이 영글어 간다고 느낄 즈음에 등단 소식을 들었다. 뛸 듯 날 듯 기뻤다”며 “그러나 이 기쁨이 내겐 큰 짐이고 채찍이고 책임이다.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김 수필가는 춘천고와 연세대를 졸업했으며, 럭키 의약품사업부 전무, LG상사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일현수필문학회, 조선에듀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재경춘천고등학교동창회 https://cafe.daum.net/chuncheongo.com/5IDS/2556 

 

김해성(35회) 동문 에세이문학 추천 수필가 등단

김해성(35회) HS 인터내셔널 대표가 에세이문학에 출품한 '조선왕조 국새(國璽)를 찾아서'로 완료 추천을 받아 수필가로 등단했다. 심사위원회는 김 수필가의 완료 추천작에 대해 “조선왕조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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