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용재공◆이종준

화론(畵論) 2. 조선전기의 화론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1. 8. 1. 19:25

화론(畵論)

-회화의 창작·감상 그리고 회화 양식의 변천 및 발달을 부분적으로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이론.

2. 조선전기의 화론
고려시대 사대부들의 문인화 정신을 이어받은 조선 초기의 사대부들도 그들의 문집에 무수한 제화시(題畫詩)나 화찬을 남겼다. 이들 중 많은 부분이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 槿域書畫徵』에 인용되어 조선시대 회화사나 화론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대표적인 것들로는 서거정(徐居正)의 『사가정집 四佳亭集』·『필원잡기 筆苑雜記』·『동문선』, 강희맹(姜希孟)의 『진양세고 晉陽世稿』,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慵齋叢話』·김일손(金馹孫)의 『탁영집 濯纓集』,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 龍泉談寂記』 등을 들 수 있다.

초기의 사대부들이 시·서·화 삼절(三絶)을 높이 평가한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화가의 높은 경지를 이해하는 감상자와의 관계에 대하여 『탁영집』에 기록된 이종준(李宗準)의 그림에 관한 다음과 같은 구절은 당시 사대부들의 회화관을 잘 보여 준다.

“……서·화·시문은 모두 한 가지 흉중의 토자(土苴)라 흉중에 들은 것이 없으면 어찌 능히 시서화로 꽃피울 수 있겠느냐……내가 팔 폭 화폭 중에 앉으니 어느새 내 몸이 중균(仲均, 李宗準)의 흉중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즉, 이 구절에서 화가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을 그의 가슴속에 들어간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어, 그림을 보면 화가를 보는 듯하다는 송나라 사대부들의 이론을 한층 더 발전시킨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강희맹은 사대부의 생활 속에서 그림이 여기 이상의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구실을 하였음을 주장하여 크게 주목된다. 즉, 그는 “군자가……책상에 앉아 종이에 붓을 날려 만물을 정관(靜觀)할 때에 마음으로는 터럭만 한 것도 능히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손으로 그림을 그릴 때 내 마음도 극치에 도달하는 것이다.

무릇 모든 초목과 화훼는 눈으로 그 진수를 보아 마음으로 얻는 것이요, 마음에 얻은 진수를 손으로 그려 내는 것이니, 한 번 그림이 신통하게 되면 한 번 나의 정신(마음)도 신통하게 되며, 한 번 그림이 정신을 신통하게 되면 한번 마음도 신묘하게 된다.”고 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역(逆)으로 그림이 정신을 신통하게 하고 마음을 신묘의 경지로 이끌어 준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성종의 회사(繪事)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것으로 본 사대부들은 그림을 말기(末技), 또는 말예(末藝)라고 하여 중국과 고려의 군주 중 그림에 탐닉하여 국운의 쇠함을 초래하였던 예를 들어가며 비난한 것으로 보아, 사대부 자신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묵희(墨戱) 정도 이외에는 그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듯하다.

사대부 화가 강희안(姜希顔)이 자신이 후대에 그림으로 명성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작품을 모두 없애 버렸다는 이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집필 (1997년) 이성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론(畵論)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4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