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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진사(成均進士) 눌재공(訥齋公) 이홍준(李弘準) 묘지명(墓誌銘)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1. 20. 16:07

慶州李氏金石錄卷之十三(경주이씨금석록 권지십삼)
後孫 裕元編輯(후손 유원 편집)

墓誌(묘지)
弟弘準撰公準書(제 홍준 찬 공준 서)

成均進士訥齋公墓誌銘(성균진사눌재공묘지명)
弘準自製(홍준 자제)


 

 

 

先兄藏六堂公墓誌(선형장륙당공묘지)
-弟(제) 弘準(홍준), 弟(제) 公準(공준)

公諱宗準。字仲勻。姓李月城世家。父生員時敏。祖大司憲繩直。丁酉生員。乙巳文科。戊午被禍。世稱慵齋。削官職及第而己。諱節義黨人而己。返葬金溪先人之壠也。奉祀德淵家李之子也。葬後七年。乙丑二月日。 弟弘準撰。公準書。

*용재유고(慵齋遺稿) > 訥齋先生遺稿 > 墓誌文


●선형장륙당공묘지(先兄藏六堂公墓誌) 역문(譯文)
   -제((弟) 홍준(弘準) 찬(撰), 제(弟) 공준(公準) 찬(書)

공(公)의 휘(諱)는 종준(宗準)이고 자(字)는 중균(仲勻)이다. 성은 월성이씨(月城李氏)1)로 세가(世家)2)이다. 부친은 생원(生員) 시민(時敏)이요, 조부는 대사헌(大司憲) 승직(繩直)이다. 정유년(丁酉年, 성종8 1477년)에 생원(生員)에 합격하고 을사년(乙巳年, 성종16 1485년)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했으며 무오년(戊午年, 연산군4 1498년)에 사화(史禍)를 당했으니 세상이 용재(慵齋)라 일컬었다.
벼슬을 삭탈(削奪) 당하자 당인(黨人)3)은 절의(節義, 절개와 의리)라 했다. 선인(先人)의 묘가 있는 금계(琴溪)에서 반장(返葬)4)하고 질(姪)인 덕연(德淵)을 아들로 삼라 봉사(奉祀)케 했다. 장례를 치른 7년 후 을축년(乙丑年, 연산군11 1505년) 2월 일에 동생 홍준(弘準)이 찬(撰)하고 공준(公準)이 글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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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성이씨(月城李氏) : 경주의 옛 이름이 월성(月城)이므로 경주이씨(慶州李氏)를 월성이씨(月城李氏)라고도 한다.
2) 세가(世家) : 대대로 나라의 중요한 자리에 있거나 큰 녹을 받았던 집안을 이르는 말. 세족(世族).
3) 당인(黨人) : 당파(黨派)를 이룬 사람.
4) 반장(返葬) : 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제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서 장사지냄.



成均進士訥齋公墓誌銘(성균진사눌재공묘지명)
-弘準(홍준) 自製(자제)

噫悅生惡死。人之常情以死爲。諱口不敢言。惑之甚矣。有如漆園。㝕之忘骸楊王孫之裸葬。世無人矣。其知死生之說而。不爲懷者。有幾人哉。余嘗有詩曰。無生卽無死​。有生卽有死。生死兩悠悠。造物無終始。雖未及達觀。之徒所見如斯而。己凡人觀化之後。倩人碣辭。虛張逸筆以沒其實尤可笑也。此老平生懶拙。力農以給妻孥。七擧不中。優遊溪山以。是終焉。銘曰。
旣無才又無德。人而己。生無爵死無名。魂而已。憂樂空毁譽息。土而已。


*용재유고(慵齋遺稿) > 訥齋先生遺稿 > 自製碑文


●성균진사눌재공묘지명(成均進士訥齋公墓誌銘) 역문(譯文)
   -홍준(弘準) 자제(自製)

아! 슬프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통 가지는 마음이다. 죽음을 싫어하되 입으로 감히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미혹한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일이다. 칠원(漆園, 장자가 몸이라는 곳에 있는 칠원에 옻 밭을 맡아보는 관리가 되었었다)의 늙은이 같은 이는 그 해골이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양왕손(楊王孫, 한나라 성고(城固) 사람. 황노(黃老)의 술을 배워서 죽을 때 아들에게 수의를 입히지 말고 나체로 매장하라고 유언하였다.)의 나매장(裸埋葬) 같은 경우는 세상에 그러한 사람이 없다. 죽고 사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에 생각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내가 일찍이 시를 한 수 지었으니 가로되

생이 없으면 죽음도 없으리라. / 無生卽無死
생이 있으면 죽음이 따르리라. / 有生卽有死
살고 죽는 것이 다 아득하니 / 生死兩悠悠
조물은 처음도 끝이 없도다. / 造物無終始

내가 비록 달관(達觀)한 사람은 못되나 보는 바가 이와 같을 따름이다. 평범한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묘갈(墓碣)의 내용을 남에게 청하여 붓을 들어 허장성세(虛張聲勢)하여 사실을 바꾸면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이 늙은이가 천성이 게을러서 농사하여 처자를 먹여 살릴 뿐이고 일곱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다 낙방하였으니 시내와 산에 마음껏 놀다가 이로써 마칠 것이다. 명에 이르되
이제 재주도 없고 또 덕도 없으니 그저 평범한 사람일 따름이요. 살아서 관작(官爵)이 없고 죽어서 이름이 없으니 그저 한 넋일 따름이다. 기쁨과 근심이 훼예(毁譽, 비방과 칭찬)가 그쳤으니 그저 한 줌의 흙이 될 따름이다.


●진사(進士) 이홍준(李弘準)의 묘

개단부곡(皆丹部曲) 운봉산(雲峯山)에 있다. 스스로 갈명을 지어 이르기를 다음과 같이 했다. “아!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함은 인간의 상정(常情)이라, 죽음을 꺼려 입으로 감히 말하지 못함 또한 미혹됨이 심하다. 저 장자(莊子)가 형해를 잊는다는 것과 왕양손(王楊孫)이 벌거벗은 몸으로 장사를 지낸다는 말과 같은 것은 지금 세상엔 다시없구나. 그는 생사(生死)를 잘 알면서도 이를 마음속에 두지 않는 자라 하겠다.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일찍이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생(生)이 없으면 곧 사(死)도 없고
생이 있으면 곧 사가 있게 되나니
생과 사는 모두 덧없는 것이요
조물(造物)도 끝과 시작이 없는 것을

비록 달관(達觀)에 이르지 못한 무리라 하더라도, 본 바가 이와 같을 뿐이다. 대개 사람이 관화(觀化)한 뒤에 자손 된 자가 남에게 갈사(碣辭)를 청하여 헛된 이야기를 늘어놓고 붓을 제멋대로 놀리어 그 실상을 없게 만드니 더욱 가소롭구나, 이 늙은이는 평생토록 게으르고 졸렬한 것으로 자임(自任)하여 항상 농사에 힘씀으로써 처자식을 먹여 살렸고 일곱 번이나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지 못했지만 계산(溪山)에서 우유(優游)*)하면서 평생을 마쳤다. 이에 명(銘)하여 말하노라,
‘이미 재주도 없고 또 덕도 없으니 사람일 뿐이요, 살아서 작록도 없고 죽어서 명성도 없으니 혼일 뿐이며, 근심과 즐거움이 없어지고 헐뜯음과 칭찬이 사라졌으니 흙일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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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優游): 1.유유자적하다 2.우물쭈물하다 3.망설이다


*영가지(永嘉誌)


○이홍준이 쓴 자신의 비문(碑文).
○사람이 죽은 뒤에 허세를 부려 그 실제를 고쳐서 비문을 쓰니 우스운 일이라고 하며‚ 자신은 스스로 비문을 작성하되 재주도 덕(德)도 관직도 없으며 죽어서 드러날 혼(魂)도 없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