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안내/경주이씨◇소개

씨족의연원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6. 8. 08:59

씨족의연원


가. 시조와 진한(辰韓) 6촌

경주이씨의 시조(始祖)는 알평(謁平)이고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다. 『삼국유사』에는 기원전 117년에, 경주이씨의 시조인 <알평공>이 하늘에서 신라의 4영산(靈山)의 하나인 경주 동북에 있는 금오산(金鰲山)의 표암봉(瓢巖峰)에 내려왔다고 한다. 신라 6촌(村)은 알천양산촌 (閼川楊山村)·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취산진지촌(嘴山珍支村)·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등인데 『삼국사기』에는 유리왕(儒理王) 9년 봄에 6부(部)의 이름을 고쳤는데, 양산부(楊山部)→밑돌부(及梁部) 이씨(李氏)/고허부(高墟部)→새돌부(沙梁部) 최씨(崔氏)/대수부(大樹部)→점돌부(漸梁部) 손씨(孫氏)/우진부(于珍部)→본피부(本彼部) 정씨(鄭氏)/가리부(加利部)→한기부(漢祇部) 배씨(裵氏)/명활부(明活部)→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로 했다고 하는데,『삼국유사』에는 이와 달리 새돌부(沙梁部)를 정씨(鄭氏)의 본관으로 기록하고 있다. 시조의 영지(領地)인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은 뒤에 밑돌부(及梁部)가 되는 뿌리의 마을로 6촌의 모체이고 밑돌부의 촌장인 알평(謁平)은 6촌의 부족사회를 영도하는 수장이었다.

나. 계대(系代)와 분파(分派)

경주이씨의 시조는 알평(謁平)이다. 시조 이후 신라 말의 거명(居明) 전까지는 계대(系代)가 자세하지 않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이제현(李齊賢)의 묘지(墓誌)를 지으면서 신라말에 소판(蘇判)에 이른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세계(世系)를 자세하게 적은 것이 계기가 되어 소판공(蘇判公)을 중시조(中始祖) 곧 기세조(起世祖)로 모시고 있다. 경주이씨에서 분적(分籍)한 합천이씨(陜川李氏)의 계보(系譜)에는 알평 이후의 계차(系次)가 명시되어있고 또 경주이씨 문중(門中)의 어떤 이가 수백 년 전에 계보를 발견했노라고 제시한 것이 있으나 선대 때부터 대종보(大宗譜)의 총편(總編)의 말미에 참고 자료로 제시해 놓았을 뿐 정식 계대로 채택하지는 않고 있다. 경주이씨 분적종(分籍宗)은 알평의 후손 가운데 양식(陽植)을 시조로 하는 우계이씨(羽溪李氏)·위(渭)를 시조로 하는 차성이씨(車城李氏)·개(開)를 시조로 하는 합천이씨·거명의 6세인 주좌(周佐)를 시조로 하는 아산이씨(牙山李氏)·주복의 아들 우칭을 시조로 하는 재령이씨(載寧李氏)·거명의 17세인 조(蓨)의 아들 영재(永梓)와 군재(君梓)를 시조로 하는 진주이씨(晉州李氏)·거명의 23세 반계(攀桂)를 시조로 하는 원주이씨(原州李氏) 등으로 분적되었다. 우리나라의 이씨(李氏)는 중국에서 귀화해 온 몇몇 본(本)의 이씨를 제외하면 거의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에서 파생(派生)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시조(中始祖) 거명(居明)으로부터 분파하여 14개 대종파로 나뉘어 있으나 중앙화수회를 중심으로 현재는 10개 대종파가 일가(一家)로서 부끄럽지 않은 결속력(結束力)을 과시하고 있다.

대종파(大宗派) 분파는 대체로 거명(居明)으로부터 분파를 하기 시작하는데, 16세 인정(仁挺)을 파조(派祖)로 하는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17세 관(琯)을 파조로 하는 이암공파(怡菴公派)·그 아우 제현(齊賢)을 파조로 하는 익재공파(益齋公派)·그 아우 지정(之正)을 파조로 하는 호군공파(護軍公派)·역시 17세 천(蒨)을 파조로 하는 국당공파(菊堂公派)·그 아우 매(邁)를 파조로 하는 부정공파(副正公派)·그 아우 과(薖)를 파조로 하는 상서공파(尙書公派)·그 아우 조(蓨)를 파조로 하는 사인공파(舍人公派)·15세 강(康+羽)을 파조로 하는 판전공파(判典公派)·21세 지수(之秀)를 파조로 하는 월성군파(月城君派)·19세 양오(養吾)를 파조로 하는 직장공파(直長公派)·그 아우 존오(存吾)를 파조로 하는 석탄공파(石灘公派)·그 아우 존중(存中)을 파조로 하는 진사공파(進士公派)·그 아우 존사(存斯)를 파조로 하는 교감공파(校勘公派)등 14개 대종파로 나뉘었다. 현재는 10개 대종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 문중의 명문(名門) 여섯집

대파(大派)의 종회(宗會) 가운데는 가장 현달(顯達)한 가문(家門)부터 별칭이 있는데, 상서공파의 [오신(五臣)집]이 있고 [오신집]속에 [백사(白沙)집]이 가장 두드러지며 그 다음으로 익재공파의 [팔별(八鼈)집]이 있고 [팔별집] 후손에 좌의정 경억(慶億)의 [화곡(華谷)집]이 두드러지고 국당공파의 [팔정(八廷)집]이 있고·정순공파(靖順公派) 계대인 우의정(右議政) 완(浣)의 [매죽헌(梅竹軒)집] 등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라. 족보와 항렬

경주이씨의 세보(世譜)는 숙종 10년(서기 1684년)의 [갑자보(甲子譜)]·영조 24년(서기 1748년)의 [무진보(戊辰譜)]·순조 14년(서기 1814년)의 [갑술보(甲戌譜)] 등 세 대동보(大同譜)를 ≪갑무갑 3대보(甲戊甲 3大譜)≫라고 부르며 그후의 모든 소지(小誌. 족보의 기록)의 연원을 삼고 있다. 최근의 경주이씨대종보(慶州李氏大宗譜)로는 서기 1987년의 [정묘보(丁卯譜)]가 있다. 경주이씨의 항렬(行列)은 34세(世)까지는 익재공후 재사당공파,국당공후 문정공파,국당공후 정순공파,상서공파(정헌공파 등) 4집안에서 각기 따로 정하여 사용하였고 35~70세까지는 고종 때의 영의정이었던 귤산공(橘山公) 유원(裕元)이 제정하였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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