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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제사] 張興孝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2. 20. 22:57
안동의 제사


44.張興孝



□ 位置 : 安東市 西後面 城谷里 264番地 敬堂宗宅

□ 神主
◦ 考位
顯先祖考贈通善郞司憲府持平行將仕郞昌陵參奉府君神主
◦ 配位
顯先祖妣恭人安東權氏神主
顯先祖妣恭人安東權氏神主

□ 諱日
◦ 考位 : 2月 7日
◦ 配位 : 安東權氏 9月 25日
安東權氏 10月 10日

□ 略歷
선생의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으로 명종(明宗) 19년(1564)에 태어나 인조(仁祖) 11년(1633)에 몰(歿)하였다. 자(字)는 행원(行原)이고 호(號)는 경당(敬堂)이다. 공은 태사(太師) 정필(貞弼)의 후(后)요, 전력부위 팽수(彭壽)의 아들이다.
학봉(鶴峯)과 서애(西厓) 양(兩) 선생의 문인(門人)으로 천자(天姿)가 순수(純粹)하여 심학(心學)을 전수(傳受)받았다. 공은 평생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제자교육에 힘쓴 학자이다. 그러나 인조 때에 선생의 뛰어난 학문(學問)과 행의(行誼)로 참봉(參奉)에 추천(推薦)되었으나 직첩(職牒)이 도착(到着)되기 전에 운명(殞命)하였다.
선생은 역학(易學)을 깊이 연구(硏究)하여 호방평(胡方平)의 《역학계몽통석(易學啓蒙通釋)》중 분배절기도(分配節氣圖)의 오류를 지적하고 이를 고증하고 연구하여 십이권도(十二卷圖)를 추연하였다. 공은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과 같이 저술이나 심오한 이론서를 남기지는 않았으나 『인수변(人獸辨)』, 『일원소장도(一元消長圖』, 『십팔목도(十八木圖)』, 『무극태극유무변(無極太極有無辨)』과 같은 나름대로 특색 있는 논술을 남겼다.
숙종(肅宗) 때 사림의 소청(疏請)으로 통선랑(通善郞)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에 증직(贈職)되었고, 문집(文集) 4책(冊)이 전한다. 백죽당 배상지, 용재 이종준과 함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유교넷. 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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