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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명현당호] 松齋 李堣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2. 19. 20:06

안동의 명현당호


松齋 李堣

선생은 진성 이씨로 자는 명중(明仲)이며, 호는 송재(松齋)이다. 진사 계양(繼陽)의 아들이며, 퇴계 이황의 숙부이다. 성종 23년(1492)에 생원이 되고, 연산군 4년(1498)에 식년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이어 예문관검열, 대교, 봉교를 거쳐 1501년 성균관전적에 올라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사헌부헌납, 병조정랑 겸 지제교, 사헌부장령 겸 춘추관기주관, 봉상시첨정, 사간, 군기시부정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 동부승지에 임명되어 지제교와 춘추관수찬관을 겸하였다가 마침 입직하던 날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 협력하였고, 그 공로로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녹훈,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지고 우부승지로 벼슬이 승진되어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겸하였다. 중종 3년(1508)에 부모 봉양을 위하여 외직을 희망,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청렴과 검소를 위주로 백성을 다스려 왕으로부터 특별히 표리(表裏)를 하사받았고, 이듬해 동지중추부사로 전임,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형조참판을 거쳐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양친봉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그 뒤 영해‧김해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앞서 반정공신책봉 당시에 그를 녹훈시키는 문제로 물의가 있었는데, 1514년에 와서 입직승지로서 신절(臣節)에 어긋나게 행동하였다는 비난을 받아 삭훈되었다가 이듬해 안동부사로 서용되었다. 문장이 맑고 전아(典雅)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특히 시에 뛰어나 산천의 명승을 읊은 것이 『관동록(關東錄)』, 『귀전록(歸田錄)』에 전하고 있다. 최숙생(崔淑生) 등의 사류(士類)와 친하였다. 예안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송재집(松齋集)』 1권이 있다.

*출처: 유교넷. 한국국학진흥원
안동의 명현당호 > 당호편 > 松齋 李堣
http://www.ugyo.net/cf/frm/tuFrm.jsp?CODE1=02&CODE2=03&CLSS=3&sBookNmbr=C004&sMok_Nmbr=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