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용재공◆이종준

재사당선생일집 망헌선생유고 용재선생유고 동계실기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2. 13:28

재사당선생일집 망헌선생유고 용재선생유고 동계실기




초기사림파문집 역주총서 7

재사당선생일집(再思堂先生逸集) 이원(李黿) 지음, 김보경 옮김

망헌선생유고(忘軒先生遺稿) 이주(李胄) 지음, 김성준 옮김

용재선생유고(慵齋先生遺稿) 이종준(李宗準) 지음, 정현섭 옮김

동계실기(桐溪實記) 권달수(權達手) 지음, 김진경 옮김

점필재 2014.07.30



책 소개

「초기사림파문집역주총서」 제7권 『재사당선생일집 망헌선생유고 용재선생유고 동계실기』.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때 화를 입은 인물들의 문집을 역주한 것이다. 이들은 성종 때 점필재 김종직에게 직·간접적인 학문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연산군 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해보려고 하다가 결국 좌절당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글에서 조선전기라는 문제의 시대로 들어가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말

조선전기는 그 어느 시기보다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훈구파와 사림파라는 선명한 구도가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을 주도하고 거듭된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정치권력을 틀어쥐었던 훈구파, 그리고 그들의 배타적 독점과 누적된 병폐를 비판하며 성장한 재지사족 출신의 사림파하는 대립 구도가 그것이다. 전자는 文章華國을 문학론의 주요 논거로 활용했기에 사장파, 후자는 心性修養을 문학론의 핵심 논리로 내세웠기에 도학파라 명명하기도 한다. 이처럼 명확한 만큼 조선전기 연구는 조선후기와 비교할 때, 한산하기 그지없다. 관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간 고립된 섬과도 같다.
물론 조선전기라는 시대가 현재 우리의 삶과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어 관심으로부터 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다채롭기 그지없는 조선 후기의 눈부신 모습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실재로 조선후기가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임을 입증하기 위해는 조선전기를 ‘암흑의 시대’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실학이 이전 시기에 대한 자기반성 또는 누적된 병폐를 비판적으로 딛고 일어난 탈 중세적 또는 근대적 운동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조선전기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훈구파하면 으레 부화하고 퇴영적인 모습을 떠올리고, 사림파하면 으레 경직되고 고답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세종과 성종으로 대표되는 그 시기가 조선을 유교 문명국가로 완성시킨 시기였음도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적확한 이해일까. 조선전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이런 소박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더욱이 조선전기 훈구파와 사림파의 구분이 사상적으로든 사회경제적으로든 통념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비판은 점차 설득력을 높여 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조선전기의 실체적 진실을 재론하지 않을 수 없는 때이다. 당대 인물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된 까닭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선전기를 이끌어갔던 인물군상의 동태에 실증적으로 다가가려는 여정을 기획하게 되었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인간이야말로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다. 그리고 그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이 남긴 기록을 비껴갈 수 없다. 살아생전의 시문을 수습하여 엮은 문집은 그래서 중요하다. 물론 문집은 한 인간의 생애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정돈된 자료인 동시에 한 인간의 행적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완결된 서사이기도 하다. 때문에 문집에는 문집 주인공은 물론 문집을 편찬한 시대의 분투가 아로새겨져 있기 마련이다. 조선전기 문인의 문집을 꼼꼼하게 번역하며 그 시대를 읽어보겠다는 장대한 목표는 그렇게 해서 분명해졌다.
우리는 그 첫 번째 역주 대상을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때 화를 입은 인물들의 문집을 역주한 것이다. 이들은 성종 때 점필재 김종직에게 직·간접적인 학문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연산군 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해보려고 하다가 결국 좌절당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아니, 조선전기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이 불러온 파국의 절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혔던 당사자들이었다. 그렇다면 바로 그들의 삶에서 조선전기라는 문제의 시대로 들어가는 단서를 찾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연구자를 모으고, 방대한 분량의 문집을 지속적으로 역주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마침내 미더운 연구자들이 하나 둘 모였고,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역주 작업을 위한 재정 지원도 받게 되었다. 그때 그 기쁨, 지금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햇수로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젊은 연구자의 진로가 다기했던 만큼, 작업을 함께 한 연구자들도 적지 않게 바뀌었다. 그리고 문집에 담겨있는 시문의 난해함은 우리의 의욕보다 훨씬 더 단단한 벽으로 다가왔다. 번역을 하는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적업인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간은 결국 번역작업의 끝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제 출간을 앞두고 오래 전에 번역한 것들을 다시금 훑어보니, 잘못되고 아쉬운 대목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더 미룰 수 없어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세상에 내놓는다. 앞으로 공부해 나가면서 고치고 보완해나갈 것을 다짐하며 그간, 힘든 역주 작업에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14년 6월 20일
역주자를 대신하여 정출헌이 쓰다



차례

용재선생 유고
용재선생유고 서문

357 용재선생유고서 김희주

363 시詩
363 삼소도에 적다
364 차운하다 추강 남효온이 짓다
365 친구의 부채에 적다
366 권향지와 함께 계운의 「영설」에 차운하다 배율 향지響之는 수헌睡軒의 자이고, 계운季雲은 탁영濯纓의 자이다
369 강계에 유배가서 소무굴을 읊다
370 내성군에 노닐러 가는 추강 남효온을 보내다 내성奈城은 영월寧越의 옛이름이다
371 수헌의 등루시운에 화답하다
372 또
373 수헌 시에 차운하다
374 침류정에 적다

375 소疏
375 대직을 사양하다

378 잡저雜著
378 금 군위 묘갈
380 유산악부시 발문
390 전적벽부 서첩 발문

384 부록附錄
384 용재가 점필재의 근체를 갱운한 것에 화답하다 수헌 권오복
385 이중균이 의성의 임지로 가는 것을 보내다 4수
387 용재거사에 부치다 정혀암 희랑
388 용재의 그림에 적다 최숙생
389 무오당적
395 중균의 그림에 쓰다 김탁영
397 용재 이 선생 묘석 음기 홍목재 여하
399 묘갈명 병서
401 행장
415 사화수말

418 경광기사鏡光記事
418 경광서원 상량문 신열도
419 봉안문 학사 김응조
420 상향 축문 학사 김응조
421 백록 상향 축문
422 개제시 제문 이보
423 조야회통략
424 의성읍지
426 기사년 유생의 상소로 인해 추증할 때 예조의 회계
428 백록 상량문
429 중건 상량문
430 찾아보기
434 용재선생유고 원문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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