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一)/계천군◆이종직

계천군(鷄川君) 이종직(李從直)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0. 16:17

계천군(鷄川君) 이종직(李從直)


○세종조(世宗朝) 문과관지(文科官至) 군수(郡守) 증판윤(贈判尹), 계천군(鷄川君). ○전북 부안군(扶安郡) 동진면(東津面) 당하리(堂下里) 진양서원(津陽書院) 배향(配享).
○配는 풍양조씨(豐壤趙氏) 도평의(都評議) 숭(崇)의 女.



*출처: 1987년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

 


*참고: 서파(西坡) 안리(安理) -계천군鷄川君) 이종직(李從直)의 사위[婿]

○西紀一三九三年癸酉生
號西坡又號樂園不樂仕進累徵不赴外補宜寧翌年道伯以治蹟褒陞醴泉郡事端宗遜位投紱歸鄕卜居府南大龍山篤志牢隱逍遙終老遺命子孫勿仕
○墓大龍山桂谷子坐有碑族孫應昌撰行狀
○甲戌後孫宗熙敎煥敎悳等改立烏石碑燭臺石外裔孫曉岩李中轍撰碣海觀尹用求書見總錄享龍淵祠
○配淑人慶州李氏
父郡守鷄川君從直祖大護軍蔓實曾祖判司僕寺事元琳月城君秀之五代孫
○墓祔公兆後子坐歲祀十月十二日 <順興安氏 族譜>


○조선 태조 계유년(1393)에 출생하였다. 호를 서파(西坡)라 하였으며 또 낙원(樂園)이라 하였는데, 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아 여러 번 불렀으니 취임하지 아니하였다. 의령(宜寧)에 부임하였는데, 다음 해에 도백(道伯)이 치적(治蹟)이 훌륭하다고 아뢰어 예천군사(醴泉郡事)에 제수되었으나 단종(端宗)이 손위(遜位)하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부(府)의 남쪽에 대룡산(大龍山)에 집을 짓고는 뜻을 돈독히 하고 굳게 은둔하여 한가로이 여생을 마쳤으며, 자손들에게 벼슬하지 말도록 유명(遺命)하였다.
○묘는 대룡산 계곡(桂谷)의 자좌(子坐)인데 묘비가 있다. 후손 응창이 행장(行狀)을 찬하였다.
○갑술년에 후손 종희(宗熙)·교환(敎煥)·교덕(敎悳)등이 오석(烏石)으로 만든 비(碑)와 촉대석(燭臺石)을 개수(改修)하였으며, 외손인 효암(曉岩) 이중철(李中轍)이 묘갈을 찬하고 해관(海觀) 윤용구(尹用求)가 썼는 봐, 총록에 보인다. 용연사에 배향되었다.
○배위는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로, 부친은 군수인 계천군鷄川君) 종직(從直)이고, 조고는 대호군(大護軍) 만실(蔓實)이며, 증조는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원림(元琳)이고, 월성군(月城君) 수지(秀之)의 五대손이다.
○묘는 공의 묘소 뒤에 부묘하였는데 자좌(子坐)이다. 세사(歲祀)는 10월12일이다. <순흥안씨 족보>

 

순흥안씨부제학공파세보

 

순흥안씨부제학공파세보

 

순흥안씨대동보 (상계제1파)

 

순흥안씨대동보 (상계제1파)

 

*참고: 通訓大夫醴泉郡事西坡先生安公墓碣銘 幷序
○配淑人慶州李氏。鷄川君從直女月城君之秀五世孫。墓祔先生。<효암문집(曉庵文集) 曉庵文集卷之十二 이중철(李中轍)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