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一)/정렬공◆◆이규

[동사강목 제13하] 기묘년 충숙왕 후 8년(원 순제 지원 5, 1339)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0. 15:59

[동사강목 제13하] 기묘년 충숙왕 후 8년(원 순제 지원 5, 1339)

춘3월 왕이 훙(薨)하니 폐왕이 즉위하였다.

왕은 재위(在位)가 전후 25년, 수(壽)는 46이었다. 왕은 폐왕을 대하는데 사랑이 적어 항상 발피(潑皮)라 불렀다. 그러나 유명(遺命)으로 습위(襲位)하게 하고, 홍빈(洪彬)을 권정동성사(權征東省事)로 삼았다. 왕은 엄의(嚴毅)하고 심중하고 총명하였으며 문장에 능하고 예서를 잘 썼다. 성품이 청결함을 좋아하여 한 달에 목욕하는 데 쓰이는 여러 가지 향이 10여 분(盆)이고, 저포(苧布)가 60여 필이나 되었는데 수건(手巾)이라 이름하였으며 환관들이 훔쳤으나 왕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원에서 충숙(忠肅)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사신(史臣)은 이렇게 적었다.

충렬(忠列)ㆍ충선(忠宣)ㆍ충숙(忠肅)ㆍ충혜(忠惠) 4대를 내려오면서 부자가 서로 헐뜯어 천자의 조정에서 송사까지 하게 되어 천하 후세에 비웃음을 남겼으니 다른 것은 볼 것도 없다. 충숙왕은 만년에 국사를 버려 두고 교외에 나가 머물면서 박청(朴靑) 등 세 환관들을 신임하여 위복(威福)이 하층으로 옮겨졌고, 그 아들과 손자가 무두 흉사를 만나 요절하였으니 한탄스러운 일이다.

○ 사신을 원에 보내어 사위(嗣位)를 청하였다.

행성(行省)에서 전 평리(評理) 이규(李揆)를 보내어 원에 가서 습위를 청하니 태사(太師) 백안(伯顔)은 말하기를,

“왕도(王燾)는 본래 좋은 사람이 아니며 게다가 질병이 있어 죽을 것이고, 발피(潑皮)가 적자(嫡子)라고 해서 반드시 왕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고(暠)만이 가하다.”

하여, 등이 온갖 계책으로 청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수익 서경요 (공역)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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