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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공 10세손 증호조참판공 이홍적] 僉中贈戶曹參判李公墓誌銘(첨중증호조참판이공묘지명)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8. 20:57

□판사공(判事公) 10세손 증호조참판공(贈戶曹參判公) 이홍적(李弘迪)

【계대(系代)】 ②판사공(判事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公) 사강(思剛) → 2世孫 ①사헌부집의공(司憲府執義公) 계손(季孫) → 3世孫 ①성균진사공(成均進士公) 당(瑭) → 4世孫 의금부도사공(義禁府都事公) 이화(以和) → 5世孫 ③증이조참판공(贈吏曹參判公) 약용(躍龍) → 6世孫 ①금헌공(錦軒公) 희수(希壽) → 7世孫 ①보은현감공(報恩縣監公) 석립(碩立) → 8世孫 ①신암공(愼庵公) 억(檍) → 9世孫 증호조참판공(贈戶曹參判公) 경창(慶昌) → 10世孫 ③증호조참판공(贈戶曹參判公) 홍적(弘迪)



僉中贈戶曹參判李公墓誌銘(첨중증호조참판이공묘지명)
–文衡右相(문형우상) 金履喬(김이교) 撰(찬)

贈參議李公諱檍號愼庵殉節于虜難 國家表其閭曰忠臣之門其子諱慶昌蔭參奉贈參判生諱弘肇知中樞贈判書號嘉崖次諱弘濟次卽公也始祖謁平以新羅大人食阿餐居於慶州子孫籍焉公爲人慈諒明敏介潔有守早喪怙恃以爲終身痛與二兄同居一室奉之如嚴君與人交必以誠款不爲翕翕追逐遇聲色紛華意象落然常謂士寧愛簡亢誚不可屈己徇人有位高以善酗罵者嘗見公於伯氏判書公座歸語人曰其中有苦客令人不樂其見憚於人如此然處僚寀間雖弦韋異趣而咸愛慕之至或終身稱述而賤隸之一經腹事者追思不己居鄕足不入官府所處有樹竹湖山之勝左右圖書潛心玩繹以自娛爲詩文藻思贍敏操筆累百言辭理沛然以戊辰八月十九日卒享年七十五九月歸葬于禮山葛林山執義公兆右麓乾坐之原以子貴贈戶曹參判公諱弘迪字汝遠妣貞夫人平壤趙氏其考僉中慶哲公聘貞敬夫人南陽洪氏通德郞有華女縣監商彦孫慈而莊裕而介在室以孝友稱及歸公配德無違事夫子處娣姒俱可爲則公歿候三霜哀毀訓戒諸子家有正齊卒葬于德山金峙庚坐生二男長喜茂知中樞贈資憲階次喜泰喜茂生五男一女長彦重次彦培郡守出系子從叔父次彦愼縣監出系于叔父次彦白次彦鳳女適南陽洪弼猷公卒時諸孤俱穉弱各能成立孫裔登朝其進力未己公之斂不自有垂裕于後者今焉可徵斯所以見天道歟玆謹就其家牒仰公風儀間靖氣度穆然自令人起敬仍爲之銘銘曰
維賢維德維公之則維公淳行載也先德介爾不羣一是簡直夸毗馳騖彼哉軒紱泊然內蘊沈于下列旣斳厥施奚齡之嗇儒老之怛士友攸惜少子立揚榮賁窀穸其報也贏理岡終忒有不信者視此銘刻


*慶州李氏鼎珉錄 v2 (泰炯 編輯)


●첨중증호조참판이공묘지명 역문
(僉中贈戶曹參判李公墓誌銘 譯文)

-문형우상(文衡右相) 김이교(金履喬) 찬(撰)

참의(參議) 벼슬을 증직(贈職) 받은 이공(李公)의 휘는 억(檍)이요, 호는 신암(愼庵)이니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순절(殉節)하여 국가에서 그 집 거리를 표하여 충신(忠臣)의 문(門)이라 하고 그 아들 휘는 경창(慶昌)이니 참봉(參奉)으로 참판(參判)에 증직(贈職)되었고 그 아들 휘 홍조(弘肇)는 지중추(知中樞)로 판서(判書)를 증직(贈職) 호는 가애(嘉崖)이고 둘째 아들 홍제(弘濟)가 공의 휘다. 시조(始祖) 알평(謁平)이 신라대신(新羅大臣)으로 경주(慶州)에 있어 자손이 경주(慶州)로 관향(貫鄕)하다.
공의 사람됨이 자랑하고 영민하여 결백하더니 일찍 부친을 여의고 종신(終身)의 애통으로 삼고 두 형과 한 방에 거처하면서 형 받들기를 부친과 같이하고 남과 사귐에 반드시 믿음과 정성으로 하고 주색과 화려한 것을 만나면 뜻을 굳게 하여 선비가 고상하다는 책망은 들을지언정 자기 뜻을 굽혀 남을 따를 수는 없다 하더라. 어떤 사람인지 위는 높으나 남을 꾸짖고 흉보기를 좋아하더니 공의 백씨(伯氏, 홍조弘肇) 판서공(判書公) 댁에서 공을 보고 돌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반갑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즐겁지 못했다’ 하니 공을 꺼림이 이 같았다. 그러나 동료들과 함께 있으면 비록 취지는 달라도 다 공을 애모하여 죽을 때까지 공을 잊지 못하고 천인(賤人)들도 공의 일을 겪어본 자는 사모하여 마지않더라. 향중(鄕中)에 살면서 관청에는 발을 들이지 않고 거하는 집 앞에는 대나무를 심고 물과 산의 경치가 있으며 좌우에 쌓인 책을 연구하여 스스로 즐기고 시(詩)를 짓는 대로 의사(意思)가 풍후(豐厚)하여 붓을 들면 수백 수를 지어도 궁함이 없었다.
무진년(戊辰年) 8월 19일에 졸하니 향년(享年)이 75라. 9월에 예산(禮山) 갈림산(葛林山) 집의공(執義公, 계손季孫) 묘소 오른쪽 건좌(乾坐) 언덕에 장사지내다. 아들의 귀(貴)로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증직(贈職) 받다. 공의 휘는 홍적(弘迪)이요, 자는 여원(汝遠)이며 고는 첨중추(僉中樞) 경철(慶哲)이요. 비(妣)는 정부인(貞夫人) 평양조씨(平壤趙氏)다. 공의 배(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남양홍씨(南陽洪氏)니 통덕랑(通德郞) 유화(有華)의 따님이요, 현감(縣監) 상언(商彦)의 손녀니 자상하고 씩씩하며 너그럽고 깨끗하여 친정에 있을 때부터 효우 하다고 명성이 있더니 출가 후에도 부덕(婦德)에 어긋남이 없고 남편을 섬기고 동서 간에도 화합하고 법도에 맞도록 하다. 공이 별세 후에도 3년 상을 애통 속에 지내고 여러 아들을 경계하여 가정이 항상 정숙하더니 졸에 덕산(德山) 금치(金峙) 경좌(庚坐)에 안장하다.
생 2남 하니 장에 희무(喜茂)니 지중추(知中樞)로 자헌대부(資憲大夫)를 증직(贈職) 받고 다음은 희태(喜泰)고 희무(喜茂)는 생 5남 1녀 하니 장에 언중(彦重)이요, 차는 언배(彦培)니 군수(郡守)로 종숙(從叔, 희하喜夏)에 양자(養子) 갔고 다음은 언신(彦愼)이니 현감(縣監)으로 숙부(叔父, 희태喜泰)에 출계(出系)했고 다음은 언백(彦白), 다음은 언봉(彦鳳)이요. 딸은 남양(南陽) 홍필유(洪弼猷)에 출가하다. 공이 임종 때는 모든 아들이 여러 더니 지금 다 성장하고 손자들이 벼슬길에 올라 전망이 있으니 공의 음덕(陰德)이 자손에 미쳤음을 가히 알리라. 공가의 가첩(家牒)을 상고하여 공의 풍채가 정숙하고 가도가 화목함을 사모하니 자연 공경지심(恭敬之心)이 생기는 도다.
명왈(銘曰) 어질고 덕행은 공의 천성이요, 공의 순박한 행실은 선대의 덕을 실었도다. 계결하여 뭇에 휩쓸리지 않으니 한결같이 자명하고 정직하도다. 아첨하며 굽실거리는 저 벼슬아치로다. 깨끗하게 속에 쌓아 하열(下列)에 잠겼도다. 베푸는 것을 좋아하나 수명이 더 길지 못한 것이 아깝도다. 유림(儒林) 늙은이는 슬퍼하고 사우(士友)들은 애석해하다. 적은 아들이 귀히 되니 황천(皇天)에서 영화(榮華) 받네. 그 보답이 넉넉하니 천리(天理)가 분명하도다. 믿지 못하면 이 색인 글을 보라.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세보(月城君派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