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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순위공 5세손 진사공 이재환] 成均進士李公墓碣銘(성균진사이공묘갈명) 幷序(병서)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8. 20:47

□충순위공(忠順衛公) 5세손 진사공(進士公) 이재환(李再煥)

【계대(系代)】 ①충순위공(忠順衛公) 이숭준(李崇準) → 1世孫 순릉참봉(順陵參奉) 덕림(德林) → 2世孫 ③이(苡) → 3世孫 系子 증공조참의공(贈工曹參議公) 응조(應祚) → 4世孫 성극(成極) → 5世孫 ①진사공(進士公) 재환(再煥)


成均進士李公墓碣銘(성균진사이공묘갈명) 幷序(병서)
–豊山(풍산) 鶴沙(학사) 金應祖(김응조) 撰(찬)

新羅佐命功臣諱謁平之後。冠冕赫世。世稱三韓甲族。入我 朝。有諱繩直。官至大司憲。中遭士禍幾不振。有諱德林。 順陵參奉。子菖。將仕郞。子應祚。 贈工曹參議。子成柱。於公爲高曾祖考。妣眞城李氏。諱善鳴女。以萬曆甲辰。生公于安東金溪村。諱再燠。字晦之。少聰警。受業張敬堂。甚見器重。乙丑乙亥。遭考妣喪。壬午。始中進士。自是無意於進取。留連觴詠。遺落世事。超然有醉鄕之遺風焉。戊戌六月。中酒微有病。猶能論文作詩。不異平日。十九日。翛然而逝。豈所謂不是猶醉臥者歟。十二月。葬豐山外河廻大峴山亥向原。從先兆也。嗚呼。公之容秀而淸。公之操端而雅。公之才穎而敏。生于積善之門。畢竟至此。天獨何心歟。配副護軍權稷女。生四男。垣,垷,翹,垶。四女。權錫祚,金烒,申世允。一未行。內外孫男女十餘人。銘曰。

古固有麴糱之托而昏冥之逃者。蓋緣時命之不遇。公而止於斯。豈非脩短榮枯之有數歟。嗚呼。千秋萬歲兮峴山靑。荒原一抔兮埋玉樹。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2
*한국문집총간 > 학사집 > 鶴沙先生文集外集卷之一 > 墓碣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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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집(鶴沙集)은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의 文集이다.
○김응조(金應祖) 1587년(선조 20)~1667년(현종 8).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 아헌(啞軒)이고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유성룡(柳成龍), 장현광(張顯光), 정경세(鄭經世)의 문인(門人).


*학사집(鶴沙集). ⓒ 한국고전번역원.


●성균진사월성이공묘갈명 병서 역문
(成均進士月城李公墓碣銘 幷序 譯文)

-풍산(豊山)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찬(撰)

신라(新羅) 좌명공신(佐命功臣) 알평(謁平)의 뒤로 벼슬이 대대로 혁혁(赫赫)하여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세상이 말하더니 아조(我朝, 朝鮮)에 들어와서 승직(繩直)이 벼슬이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중간에 사화(士禍)를 만나서 침체해졌다. 휘 덕림(德林)은 순릉참봉(順陵參奉)이요, 자에 이(苡)며 이(苡)의 아들은 응조(應祚)니 증공조참의(贈工曹參議)요, 응조(應祚) 자에 성극(成極)이니 공의 고조·증조·조부·부친이 된다. 비(妣)는 진성이씨(眞城李氏) 휘 선명(善鳴)의 따님이다.
만력(萬曆) 갑진년(甲辰年, 1664년)에 공을 안동(安東) 금계촌(金溪村)에서 출생하니 휘는 재환(再煥)이요, 자는 회지(晦之)라.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장경당(張敬堂, 장흥효張興孝)에 배웠는데 심히 큰 인물로 보았다. 을축년(乙丑年)과 을해년(乙亥年)에 양친의 초상을 당했고 임오년(壬午年, 1702년)에 처음 진사과(進士科)에 합격하고 다시는 더 진취할 뜻이 없어 술 마시고 글 읊는 것에만 몰두하고 세상일은 돌아보지 않으니 취향의 유풍(遺風)이 있었다. 무술년(戊戌年, 1718년) 6월에 술에 중독되어 약간 병이 있었으나 오히려 글을 의논하고 시를 짓고 하는 데는 평일과 다름이 없으니 19일에 홀연히 세상을 뜨니 이것이 이른바 술에 취해 누운 것이 아닐까. 12월에 풍산(豊山) 외하회대현산(外河廻大峴山) 해향(亥向) 언덕에 장사하니 선대 묘소와 가직할 따름이라 슬프다.
공의 용모가 빼어나고 맑으며 공의 조행(操行)은 단정하고 아담하며 공의 재주는 뛰어나고 민첩하니 적선(積善)한 가문이 필경(畢竟)이 지경이 되니 하늘은 무슨 뜻이런고. 배(配)는 부호군(副護軍) 권직(權稷)의 따님이다. 4남을 두니 원(垣)과 현(垷)·교(翹)·성(垶)이고 4녀는 권석조(權錫祚)·김식(金烒)·신세윤(申世允)과 출가 못 한 한 딸이 있어 내외손(內外孫) 남녀 10여 인이 있다. 새겨 가로대
옛날에는 후사가 있었으나 나중에 없어진 것은 시운(時運)을 만나지 못함이라. 공이 이에 이르니 이 어찌 오래 살고 짧게 살고 영화롭고 쇠퇴한 것도 운수에 있음이 아니런가. 슬프다, 천추만세(千秋萬歲)토록 대현산(大峴山)이 푸를 것이요, 거친 언덕의 한 줌 흙에는 옥을 묻었도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