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만오일고이상현

[晩悟公逸稿卷之二] [附錄] 晩悟齋記 [永嘉后人 權相用 謹撰]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9. 17:55

晩悟公逸稿卷之二 / 附錄


晩悟齋記 [永嘉后人 權相用 謹撰]

佳湖之水。發源於太白穿峽而來。故其恁常噴薄而不㴠畜。至于佳湖。兩山環抱而束其恁滙而成潭。㴠泓澄澈。勝狀倶備。宜爲碩人之考槃也。粤昔處士月城李公。家于湖之上恁。牓其所寢曰晚悟。享期㶊壽。而終于是。嗚呼。公以慵齋先生遠裔。深慨家聲之不振。發憤讀書。兼治舉子業。以立揚爲期。見時像不 古。即卷而歸。爲政于家。以孝友敦睦。爲茶飯常事。憂宗族譜系之不詳。收㪚族家乗。而爲派譜。琴溪慵齋舊墟。感枯杏之復甦。壇以築之。詩以識之。其行治大槩。一出於衛先報本。嗚呼其㜫矣。盖晚悟云者。實公之所自省而自勉也。實非始無悟而晚有所悟也。讀聖賢書而躬孝友之行。公之悟。蚤也。見淆漓之風 而脫名利之臼。公之悟。蚤也。占一區形勝而作江湖之主。公之悟。蚤也。特以人到晚景。經歴多而戒慮深。更一事而悟一理。所更事多。則所悟亦隨而多焉。公之所謂晚悟云者。盖以此也。公至死。精神不爽。言貌如常時。此其悟之之驗歟。公曾孫成鎬。收拾公遺文。將公布之。就佳湖舊居。因其齋而掲以舊扁。於是湖之勝。益有光焉。豈非堂搆之善者乎。噫。使守是齋者。悟于齊家。悟于處世。一如先公之悟。則方是爲晚悟家人。然則悟之一字。爲公家世守之箴戒。足矣。成鎬問記於余。因書此 而歸之。歲黒龍。政元節。永嘉后人。權相用。謹撰。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http://ugyo.net/yk/gds/gdsKisaView.jsp?B_SUJI_ID=KSAC_M_A04000011&B_BOOK_ID=KSAC_T_A04000011_001&B_KWON_ID=005&B_STYLE_ID=005&iPage=2&B_KISA_ID=00080



◎만오재기(晚悟齋記) 역문(譯文)
-영가후인(永嘉后人) 권상용(權相用) 근찬(謹撰)

가호(佳湖)의 물은 근원이 태백산(太白山)에서 시발(始發)하여 좁은 산협(山峽)을 뚫고 오는 거로 그 흐름이 항상 급류를 이루어 고이지 않으니 가호에 이르러서 양첩산(兩疊山)에 둘러싸여 그 흐름을 둔화시켜 못을 이루니 깊고 맑아서 장관을 이룬지라 석인현사(碩人賢士)들이 즐기는데 적당하다. 옛날 처사(處士) 월성이공(月城李公)이 호수의 위에 집을 짓고 침실에 만오재(晚悟齋)라 이름하여 높은 수명을 누린 뒤에 이 집에서 세상이 마치 슬프다.
공이 용재선생(慵齋先生) 후예(後裔)로서 가문이 한미(寒微)함을 한탄하고 독실히 글을 읽고 과거에 힘을 기울여 입신양명을 기약하였으나 시대가 고금이 다름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와 집을 다스릴 제. 효우(孝友)와 돈목(敦睦)을 지표로 삼고 종족간(宗族間)의 계통이 미상(未詳)한 것을 근심하여 산재한 족친(族親)의 가승(家乘)을 모아 파보(派譜)를 만들고 용재선생(慵齋先生)이 살던 옛터에 죽었든 은행나무가 다시 살아남에 감동하여 단(壇)을 쌓고 글을 지어 기록하니 공의 행적이 한결같이 조상을 호위하고 근본에 보답하는 데에 있었으니 슬프다, 그 아름다움이여.
공이 만오(晩悟)라 호를 한 것도 실상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면려(勉勵) 함인지라. 처음부터 깨달음이 없다가 늦게 깨달았다 해서 만오(晩悟)라고 호를 한 것이 아니라 성현(聖賢)의 글을 읽고 몸소 효우(孝友)를 행하였으니 공의 깨달음이 일직했고 시대의 혼란함을 보고 명예와 이로움을 버렸으니 공의 깨달음이 일직했으며 명승지를 찾아 강호의 주인이 되었으니 공의 깨달음이 일직했다. 특히 사람이 만년(晩年)에 이르러 경력이 많고 생각함이 깊어서 한 가지 일을 경험하면 한가지 이수를 깨달으니 경험함이 많을수록 깨달음이 많아지는 것이 원리라. 공이 만오(晩悟)라 한 것도 이을 의미한 것이리라.
공이 임종을 당해서 정신이 혼미하면서도 언어와 모습이 평상시와 같았으니 이것이 깨달은 증거일진저. 공의 증손(曾孫) 성호(成鎬)가 공의 남긴 글을 모아서 장차 공포할 세. 가호(佳湖) 옛날 살던 곳에 가서 그 집에 만오재(晩悟齋)란 현판을 다시 걸으니 가호(佳湖)의 명승이 더욱 빛이 나니 어찌 이 집으로 인연 함이 아닐까. 슬프다. 앞날 이 집을 지킬 사람에게 집 다스리는 법도를 깨닫고 처세하는 법을 깨달음이 공의 깨달음과 같이한다면 이것이 만오공(晩悟公) 집, 사람이라 할지니 그런즉 깨달을 오(悟)자 한 글자가 공의 집 대대로 이어 지키는 잠명(箴銘)에 만족하리라. 성호(成鎬)가 나에게 만오재기(晩悟齋記)를 청하기로 이 글을 써서 주노라.

흑룡(黑龍, 임진, 1953년) 정월 영가후인(永嘉后人) 권상용(權相用) 지음)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