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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종보 논단] 조선왕조실록 공개, 족보가 혼란을 겪고 있다 / 이상우 편집위원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4. 9. 28. 23:11

경주이씨종보 제395호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7면
[논단] 조선왕조실록 공개, 족보가 혼란을 겪고 있다

전통의 우리 족보가 조선실록의 공개로 혼란을 겪고 있다. 번역본이 온라인에 탑재되면서 예견되었던 일이다. “족보에 이조 판서를 지냈다고 나와 있는데, 실록에는 왜 없지. 족보에는 없는데, 실록을 보면 역모로 사사되었다고 하네….” 등등 논란과 의문은 끝도 없다. 실록이 온라인을 탄 후, 어떤 역사 사전은 아예 “의견이 다를 수 있다”라고 주석까지 달아 놓았다. 사회적 반응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다.

챗 GPT와 족보 구동 머지않아
4대 사화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사화는 대개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정치적인 권력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다툼이 크다. 무오사화 때 피화 된 의정부 사인 ‘이종준(李宗準)의 벽서사건’도 사례 중의 하나다. 지금까지 알려진 벽서사건은 이종준이 함경도로 귀양 가던 중 마곡역 벽상에 이사중의 시(詩) 한 수를 써 붙여놓고 떠났는데, 함경도 관찰사 이승건이 이를 불충한 시라고 조정에 고하여 고문받다가 옥사했다는 게 줄거리다. 족보에는 “무오사화에 피화 됨에 홍귀달 등 대신들이 극간 하였으나 구명치 못했다”라고만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종준의 부도(不道) 고변도 나와
하지만, 실록에서는 전혀 다른 기록도 나온다. 연산군일기 31권 1498년 11월17일 1번째 기사를 보면, “이종준과 이총(李摠)을 함경도에서 끌어오게 하였다. (중략…) 종준이 당도하여 품속에서 한 서장(書狀)을 꺼내어 올리는데, 거의 만 자에 달하였다. 이는 다 총이 유배당했을 때의 부도(不道)한 말들인데 밀 먹인 종이에 쓴 것을 부연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추국 사실을 바깥 사람에게 누설치 말라”는 연산군의 경고도 나온다.
이종준은 함경도로 가는 귀양길에 왕실 종친 이총(난언죄)을 만나 동행한다. 총이 마곡역에 당도할 때까지 부도한 말을 하여 이를 부도로 만들었는데 그 분량이 일만자(一萬字)에 달하였다는 것이 요지다. 부도는 조선 십악대죄 중 하나로, 남을 저주하는 말을 하거나, 말을 전하여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죄다. 왕실과 조정에 부도한 말을 하면 참형이다.

그런데 문제의 부도는 어디로 가고, 추관들은 이종준과 이총 중 누가 시를 썼느냐에만 집중한다. 결국 이종준에게 무고죄를 씌워 신장(訊杖)으로 처형한다. 죄가 없다는 이총에게도 벌이 내려진다. 서민으로 삭적하고 장 백 대를 쳐 거제도로 내 친다. 이상하지 않은가, 죄가 없다면서…. 실록에는 시평도 나온다. 후일 중종(中宗)은 ‘지극히 사직을 위한 훌륭한 시’라고 평한다. 이 모두를 모아보면 충신 이종준을 죽인 진짜 이유는 부도 같다. 부도를 찾아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조선실록 순기능 역할 기대
다른 성씨의 사례도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철수를 막자, 왜군이 명군과 짜고 선조(宣祖)에게 충무공을 모함한다.
왜군 철수를 갈망하는 선조가 충무공을 내치려 하자, 누구 하면 다 아는 유명 대신들의 만행과도 같은 언행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 말이 역사 속에서 나와 세간에 알려지면 손 가락질 받을 정도다.
조선실록은 곳곳에서 실체적 진실을 증명해 나가고 있다. 순기능의 공이 크다. 앞으로 오픈 지능의 첫 GPT가 실록-각종 역사물, 그리고 족보를 묶어 구동하면 혼란은 본격화할 것이다. 인간 이상의 지능의 가진 AGI까지 실용화하면 그 후유증은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유구한 역사의 족보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족보는 족보고, AGI는 AGI라고 하면 낭패가 벌어질 것이다. 검증에 검증을 거듭한 새로운 형태의 족보가 탄생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이상우 편집위원
〈약력〉
전 문화일보 사회부장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전 가천대 부총장
전 중앙화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