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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편액] 경주이씨(慶州李氏)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3. 7. 3. 15:34

[한국의 편액] 경주이씨(慶州李氏)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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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산앙문山仰門
           74.0×176.0 / 해서楷書 / 경주이씨 표암화수회慶州李氏 瓢巖花樹會

경주이씨 시조인 이알평李謁平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 동천동에 건립한 표암재瓢巖齋 정문의 편액이다. ‘산앙’은 고인의 큰 덕행을 흠모한다는 뜻으로, 『시경』 「거할車舝」에 “높은 산처럼 우러르고 큰 길처럼 따라간다. [高山仰止 景行行止]”라고 한데서 인용하였다. 이알평은 신라 초기의 문신으로, 신라 개국 전에는 사로의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촌장이었다. 신라 유리왕 8년(기원전 32)에 이씨李氏 성을 하사 받은 이알평은 경주이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신라 법흥왕 23년 시호를 문선공文宣公으로 하였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79쪽 120 산앙문山仰門

192  전사청典祀廳
           53.0×102.0 / 행서行書 / 경주이씨 표암화수회慶州李氏 瓢巖花樹會

경주이씨 표암 화수회에서 보관해온 것으로, 이알평李謁平을 모신 표암재瓢巖齋의 춘추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곳의 편액이다. 이알평은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시조이자, 신라 초기의 문신이다. 신라 개국 전에는 사로의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촌장이었다. 기원전 32년 신라 유리왕新羅 儒理王 8년 이씨李氏 성을 하사 받은 이알평李謁平은 경주이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신라 법흥왕 23년 시호謚號를 문선공文宣公으로 하였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15쪽 192 전사청典祀廳



218  학남정사鶴南精舍
           71.2×237.0 / 해서楷書 / 경주이씨 학남정사慶州李氏 鶴南精舍

학남鶴南 이회경李晦慶(1784~1866)이 포항浦項 기계杞溪에 건립한 정사 편액이다. ‘학남鶴南’은 비학산飛鶴山 남쪽이란 뜻으로, 학과 함께 천 길 푸른 절벽을 날아 속세의 티끌을 멀리하여 정신과 마음을 수양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28쪽 218 학남정사鶴南精舍

227  호계정사虎溪精舍
           62.0×150.0 / 해서楷書 / 경주이씨 호계문중慶州李氏 虎溪門中

호계虎溪 이을규李乙奎(1508∼1546)가 경주시 강동면 호명리에 건립한 정사精舍 편액이다. ‘호계虎溪’는 지명으로 호계삼소에서 취한 말이다. 글씨는 이대원李大源이 쓴 해서체이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33쪽 227 호계정사虎溪精舍

003  경모재景慕齋
           62.0×124.0 / 행서行書 / 경주이씨 소정 덕봉공파문중慶州李氏 蘇亭 德峰公派門中

덕봉德峯 이진택李鎭宅(1738~1805)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여 세운 재사에 걸려 있던 편액이다. ‘경모재’에서 ‘경모景慕’는 ‘우러러고 사모한다’는 뜻이다. 후손이 선조 이진택의 학문과 덕행을 우러러고 사모하는 마음을 편액에 담았다. 경모재는 경주시 남산이 함께 어우러져 수려한 자연 경관을 이룬 곳에 위치한다. 이진택李鎭宅(1738~1805)은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덕봉헌德峯軒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39쪽 003 경모재景慕齋

012  보원당報遠堂
           58.0×170.0 / 해서楷書 / 경주이씨 표암화수회慶州李氏 瓢巖花樹會

경주이씨 시조인 이알평李謁平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 동천동에 건립한 표암재瓢巖齋 중당中堂의 편액이다. ‘보원’은 먼 조상을 정성껏 제사지내고 근본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줄임말이다. 이알평은 신라 초기의 문신으로, 신라 개국 전에는 사로의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 촌장이었다. 신라 유리왕 8년(B.C. 32)에 이씨李氏 성을 하사 받은 이알평은 경주이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신라 법흥왕 23년 시호를 문선공文宣公으로 하였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43쪽 012 보원당報遠堂

020  아동재사阿洞齋舍
           62.5×185.5 / 해서楷書 / 경주이씨 소정문중慶州李氏 蘇亭門中

경주이씨 입향조인 죽은竹隱 이지대李之帶(1369~145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주시 하동 천군동에 건립한 재사 편액이다. ‘아동阿洞’은 지명으로, ‘아배동阿陪洞’이라고도 부른다. 이지대는 무과에 급제한 뒤 경상도수군만호慶尙道水軍萬戶가 되어 왜구를 물리치는 공을 세웠고 세조의 왕위찬탈에 비분강개하여 울주군 두서
면 구량리로 내려와 유유자적하였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47쪽 020 아동재사阿洞齋舍

021  악강묘嶽降廟
           65.0×161.0 / 해서楷書 / 경주이씨 표암화수회慶州李氏 瓢巖花樹會

경주이씨 시조인 이알평李謁平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 동천동에 건립한 표암재瓢巖齋 사당 편액이다. ‘악강嶽降’은 『시경』 「숭고崧高」에 “산악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려 보후甫侯와 신후申侯를 태어나게 하였다.[維嶽降神 生甫及申]”라고 한 데서 취한 말로, 위인의 탄생을 칭송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알평은 신라 초기의 문신으로, 신라 개국 전에는 사로의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 촌장이었으나, 신라 유리왕 때 이씨李氏 성을 하사 받았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48쪽 021 악강묘嶽降廟

039  유후재裕後齋
           55.0×155.0 / 행서行書 / 경주이씨 표암화수회慶州李氏 瓢巖花樹會

경주이씨 표암 화수회에서 보관해온 편액으로, 시조始祖 이알평李謁平을 모신 재실 편액이다. ‘유후裕後’는 적덕유후積德裕後, 즉 덕을 쌓으면 후세가 번성해진다는 의미이다. 이알평은 신라 초기의 문신으로, 신라 개국 전에는 사로의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촌장이었으나, 신라 유리왕 때 이씨李氏 성을 하사 받았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57쪽 039 유후재裕後齋

040  율수문聿修門
           55.0×103.0 / 행서行書 / 경주이씨 표암화수회慶州李氏 瓢巖花樹會

경주이씨 시조인 이알평李謁平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 동천동에 건립한 표암재瓢巖齋의 내삼문 편액이다. ‘율수聿修’는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 에 “너의 할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 덕德을 닦을지어다. 길이 천명天命에 짝하는 것이, 스스로 많은 복福 구하는 길이니라.[無念爾祖 聿修厥德 永言配命 自求多福]”라고 한 데서 취한 말이다. 글씨는 극암克菴 이기윤李基允(1891~1971)이 쓴 행서체이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57쪽 040 율수문聿修門

051  조동문肇東門
           75.0×154.0 / 행서行書 / 경주이씨 표암화수회慶州李氏 瓢巖花樹會

경주이씨 시조인 이알평李謁平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 동천동에 건립한 표암재瓢巖齋의 사당인 악강묘嶽降廟 외삼문 편액이다. ‘조동肇東’은 경주이씨가 한국에 처음 생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알평은 신라 초기의 문신으로, 신라 개국 전에는 사로의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촌장이었으나, 신라 유리왕 때 이씨李氏 성을 하사 받았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63쪽 051 조동문肇東門

022  덕봉헌德峯軒
           69.0×155.0 / 전서篆書 / 경주이씨 소정 덕봉공파문중 慶州李氏 蘇亭 德峰公派門中

경주시 마동에 자리한 덕봉정德峯亭의 편액이다. 덕봉정은 덕봉德峯 이진택李鎭宅(1738~1805)의 호이고 그가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머물렀던 곳이다. 덕봉정사德峯精舍로 불리기도 하는 이 정자는 이진택이 태어난 외동읍 방어리를 떠나 구정동(현 소정리)에 초당을 지은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뒤 1905년에 이진택의 증손자인 야
은野隱 이우영李祐榮(1822~1913)이 증조부의 자취가 남아 있는 마동에 덕봉정을 건립하고 선조를 추모하였다. 글씨는 한말의 저명한 서계가인 김성근金聲根(1835~1919)이 썼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82쪽 022 덕봉헌德峯軒

037  만향정晩香亭
           45.2×106.0 / 행서行書 / 경주이씨 덕동 명실문중慶州李氏 德洞 明室門中

경주이씨 덕동 명실문중에서 기탁한 편액이다. ‘만향’은 ‘국화의 늦은 향기’라는 뜻으로, 서릿발 날리는 추운 때에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국화의 절개를 의미하는 듯 하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190쪽 037 만향정晩香亭

057  삼구정三龜亭
           84.0×179.5 / 해서楷書 / 안동김씨 소산문중安東金氏 素山門中

사헌부 장령을 지낸 김영수金永銖(1446∼1502)가 88세 되는 노모 예천권씨醴泉權氏를 즐겁게 해드리고자 1496년에 건립한 정자에 게시된 편액이다. ‘삼구정三龜亭’은 십장생十長生 중의 하나인 거북과 같이 생긴 세 개의 바위가 정자 터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에 정자를 지은 이유도 노모의 장수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글씨는 
용재慵齋라는 낙관이 선명한데, 「삼구정기三龜亭記」 지은 용재 성현成俔(1439∼1504)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가 기문을 지으면서 호를 허백당虛白堂이라고 썼으니, 혹시 그가 아니고 안동 출신이며 당대에 글씨로 유명한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1499)이 아닌가 한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200쪽 057 삼구정三龜亭

078  양졸당養拙堂
           39.5×93.5 / 해서楷書 / 경주이씨 호계문중慶州李氏 虎溪門中

호계虎溪 이을규李乙奎(1508∼1546)가 경주시 강동면 호명리에 건립한 호계정사虎溪精舍의 당호 편액이다. ‘양졸養拙’은 자신의 재능을 감추고 한가로이 지낸다는 의미로, 선비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거한다는 경우에 많이 쓰인다. 진晉나라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뭇 묘한 이치를 억누르고 생각을 끊어 마침내 한가로이 노닐며 양졸하노라.[抑衆妙而絶思, 終優游以養拙]”라고 한 데서 취한 말이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020)』 272쪽 078 양졸당養拙堂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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