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만오일고이상현

[만오일고(晩悟逸稿)] 晩悟李公逸稿序 <역문>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8. 19:02

만오일고(晩悟逸稿)


晩悟李公逸稿序

士之處世。随時隱見。見 則可以行吾所學。而 隱亦可以守吾道也。是 以。易曰。遯而亨。程子釋之曰。君子遯藏。所以伸 道也。此其所謂處畎畒。 而樂堯 舜之道者。堯 舜 之道。孝弟而已。世之人 能眞知而無㦖在。果幾人哉。日慶州李君成鎬。 袎其曾大人晩悟公狀碣。 示余。因言曰。吾祖蓄德 不章。不惟不遇。家世自 經戊午禍。沈湮落拓。慵齋先生遺徽餘憲。雖有 杞宋之嘆。先子一生殫 誠。自力於追先敦本之事。 楸齋霜露之節。牖下蘋 藻之薦。所在盡禮。靡不用極。餘力積學。文望斐 菀。此皆夙夜不懈。勉修 本分之所當爲而已。由 是而孝弟行於家。忠信 孚於鄕。幷世知己。如趙小竹 東淳洪菊軒 菊燮徐 研雲 昶輔諸公。皆折節推詡。又 嘗徒㶊齋權先生。質疑修 問。多有警發。慵爺冠屨之 藏。在琴溪舊墟北。遺裔散處。典護實難。先子極心 經紀。儀物備具。鴨脚樹 復甦於萬年之久。而又爲 野火所灾。先子痛哭築 壇。西山金先生和四韻詩歎賞之。一時先進。多追 次之。至今爲巾衍美蹟。 時移事往。耳目浸遠。 不肖孱仍。深懼先蹟之 潛晦。方欲公傳遺文。編之爲一糾。願吾丈之弁其首 也。不佞始辭之固。成鎬甫 泫然曰。先大庭晩悔公。亦 嘗和杏壇詩。其謂有不敢 忘者。謹攷閱其狀碣。而略書顚末如右。厠名卷端而 歸之。歲赤鼠淸明節。 宣城 金東鎭謹序。

*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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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이공문집서(晚悟李公文集序) 역문(譯文)
-선성(宣城) 김동진(金東鎭) 서(序)

선비가 세상의 삶에 때에 따라 숨기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나니 드러낸즉 가히 나의 배운 바를 행할 것이요. 숨어도 또한, 가히 나의 도리를 지킬지라 이런고로 주역(周易)에 이르되 숨어도 형통하다 했고 정자(程子)가 해명해 이르되 군자(君子)는 숨어서 도(道)를 편다 했으니 이것이 그 전토(田土)에 묻혀 살면서 요순(堯舜)의 도(道)를 즐김을 이름이니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제(孝悌)일 따름이니 세상 사람이 그 참을 알면서 답답히 여기지 않는 자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가. 하루는 경주이군(慶州李君) 성호(成鎬)가 자기 증조부 만오공(晩悟公) 가장(家狀)과 묘갈명(墓碣銘)을 가지고 나에게 보이면서 말하되 나의 할아버님이 덕(德)을 쌓았으나 빛이 나지 않는 것은 오직 때를 못 만났을 뿐 아니라 집이 무오화(戊午禍)를 겪은 뒤로부터 낙척(落拓) 한미(寒微)하여 용재(慵齋) 선조의 남긴 아름다움과 법이 없어지는 탄식만 있더니 선자(先子, 만오공晩悟公을 말함) 일평생 정성을 다해 선조를 추모하고 근본을 돈독히 하는데 힘을 기울여 가을 상로지절(霜露之節)을 당하면 바라진 문 아래 빈조(蘋藻, 제사에 쓰는 나물)의 천신(薦紳, 벼슬이 있는 사람)을 있는 대로 예를 다하기를 극도로 쓰지 않음이 없었고 남은 힘이 있으면 학문을 쌓아 글에 대한 대망(大望)도 빛이 있었으니 이것이 다 밤낮 게으르지 않고 본분의 마땅히 할 바를 힘써 행할 뿐이라.
이로 말미암아 효제(孝悌)가 집에 행해지고 충신(忠信)이 향중(鄕中)에서 믿어주니 같은 시기에 서로 알아주던 분으로 소죽(小竹) 조동순(趙東淳), 난헌(蘭軒) 홍난섭(洪蘭燮), 연운(硏雲) 서창보(徐昶輔) 제공(諸公)과 마음을 기울여 추대했고 또 일찍 이재(頤齋) 권선생(權先生, 권연하權璉夏)을 쫓아 의심나는 것을 풀고 깨우침이 많았고 용재(慵齋) 선조의 묘소가 금계(琴溪) 옛터 북쪽에 있으나 자손들이 각처에 흩어져 살아 산소 보호에도 어려우니 선자(先子)께서 극력경영(極力經營) 해서 묘소 석물(石物)을 갖추니 압각수(鴨脚樹)가 다시 살아난 지 백 년 만에 또 불에 타니 선자께서 통곡하고 단(壇)을 쌓으니 서산(西山) 김선생(金先生, 김흥락金興洛)이 사운시(四韻詩)1)를 지어 화답하고 탄상(歎賞)하니 한때 선진(先進)들이 따라 차운(次韻)하니 지금에 아름답던 자취가 때가 가고 일은 멀어져 듣는 귀와 보던 눈이 차차 사라지니 불초자손(不肖子孫)이 선대자취가 영영 묻힐까, 뒤에 두려워해서 남기진 글을 엮어 책을 만들고자 하니 책머리에 서문(序文)을 나에게 원하니 못난 내가 처음은 사양을 굳게 했으나 성호(成鎬)가 눈물을 머금으니 나의 선대인 만회공(晩悔公, 김휘온金輝蘊)이 또한 일찍이 행단시(杏壇詩)2)를 화답한 일이 있는지라. 그 정리 상 감히 잊을 수가 없어 삼가 장갈(狀碣)에 의거하여 대략 그 전말(顚末)을 위와 같이 쓰고 이름을 끝에 써서 주노라.

병자(丙子) 청명절(淸明節) 선성(宣城) 김동진(金東鎭)은 삼가 서(序)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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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사운시(四韻詩) : 吾里有老杏一株。大數十圍。故老傳以爲慵齋先生手植。其下卽先生故址也。數十年前。樹枯而復榮。異哉先生之後。其將與杏俱昌歟。爲賦四韻詩以志之。乙亥槎枒一木小溪濱。枯枿芳叢幾度新。故老相傳夫子宅。餘芬猶在此邦人。風霜有力根難倒。造化無私葉自春。坐臥不移壇影裏。追惟講座隔如晨。《西山集 > 西山先生文集卷之一 > 詩》
2) 만회공(晩悔公) 김휘온(金輝蘊) 행단시(杏壇詩) : 講樹分明寂寞濱。琴湖遺馥宛如新。滄桑己閱餘今日。喬木猶傳想古人。未死孤根沾沛澤。甦生元氣保殘春。百年培植知無替。回首文星落落晨。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군파보(月城君派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