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유물/의성◆양산지역

경의재상량문(景義齋上樑文) 역문 -속함(速咸) 박세환(朴世煥)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3. 7. 21:15

경의재상량문(經義齋上樑文)

速咸(속함) 朴世煥(박세환)

捨生而就忠義先哲允執之正貞設所而寓羹墻後人景慕之彌篤 爰拓一區泉石載剏數楹室堂恭惟慵齋李先生內趨琴爺禮詩外受畢老衣鉢 貌容端雅藹藹然淸水芙蓉志操瀅澄晶晶乎氷壺秋月 道義交友與寒暄一蠹濯纓秋江忘軒而以死許同科目出身歷正言吏郞校理修撰舍人而盡衷爭諫 書畵則倭使亦稱寶律詩則上國皆誦名 肺鐫嚴庭之遺望紳佩慈闈之至戎 痛功寧越往事登山望陵而涕淚沛流出爲聞韶使君擇地移校而絃誦與蔚 史禍之始逮黑山而色愉刑戮之時顧首陽而聲厲 訥齋翁畧備善狀之草文忠公特撰黨籍之冤 中廟朝昭雪復官 肅宗朝加崇贈爵 卓彼鏡光之院雖己妥靈惟兹長湖之堧尙未祭社 當日治化未沫於四百年之餘後昆奠基亦爲其六七代之久 本黨鬰㧕而飲恨鄕人點指而興嗟 乃詢謀于合宗遂收議于多士 鳩材齋作趍天時於葽莠之辰龜墨周諏回地運於風聚之隝 都科殫巧雲窓月戶之隨宣耶許董工審斧電斤之胥勉 烈氣與星月而高朗精采彼山水而復輝 是兩全於尊祖而衛賢將并美於塾家而庠黨 聊騰短唱助擧脩梁 兒郞偉抛梁東船竹二山淸未終鶴駕秀峯遙對峙先生志氣與之崇 抛梁南諸峯羅立似孫男也應精爽常臨降顧撫慈憐遺福覃 抛梁西石文墟野入望眼遙思徃昔宰州日春草荒陵頴愴悽 抛梁北竹樓本在黌堂側經來億㤼猶餘墟鄕士至今皆誦德 抛梁上日星皎皎照無量先生忠義卽爭光大地人人誰不仰 抛梁下活脈長湖山底瀉認得精神本貫通洋洋如右又如左伏顧上梁之後鳳山增屹龜川愈長 炳炳丹衷與之活與之確繼繼玄裔思以報思以修 垂百世而嗣功風焉雨焉而隨補永固合一鄕而立享春也秋也而虔奉無疆


경의재상량문(經義齋上樑文) 역문(譯文)
-속함(速咸) 박세환(朴世煥)

삶을 버려가며 충의(忠義)를 지키는 것은 선현(先賢)들의 잡은 정의요, 사우(祠宇)를 지어 음식을 만들어 제사 올리는 것은 후인들의 추모하는 정성이라. 수석이 좋은 위치에 수 칸의 집을 지었도다. 오직 용재(慵齋) 이선생(李先生, 이종준李宗準)은 안으로는 부친 금호공(琴湖公, 이시민李時敏)의 예(禮)와 시(詩)를 함양했고 바깥으로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교훈을 받았도다.
용모는 단정하여 애애(藹藹)히 맑은 물에 핀 부용(芙蓉)과 같고 지조(志操)는 깨끗하여 정정(晶晶)히 빙호(氷壺)에 가을 달과 같도다. 도의로 사귄 벗은 한훤(寒暄, 김굉필金宏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망헌(忘軒, 이주李冑)으로 더불어 죽음으로 허락한 벗이며 같은 문과출신(文科出身)으로 정언(正言), 이랑(吏郞), 교리(校理), 수찬(修撰), 사인(舍人), 역임하여 충성을 다해 직간(直諫)했고, 글씨와 그림은 절묘하여 일본 사신이 보배라 함을 간직했다. 영월(寧越)의 지난 일에 마음이 아파 산에 올라 장릉(張陵, 단종릉端宗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의성현령(義城縣令)이 되어서는 향교(鄕校)를 옮겨 짓고 현송(絃誦)의 소리가 끊기지 않았네. 사화(史禍)가 시작됨에 흑산(黑山)에 잡혔으나 안색이 불변하였고, 죽음을 당할 때에도 음성을 가다듬어 수양산(首陽山)을 원했도다.
눌재옹(訥齋翁, 이홍준李弘準)이 행장(行狀)을 썼고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당적(黨籍)의 억울함을 밝혔도다. 중묘조(中廟朝)에 설원복관(雪冤復官) 되었고, 숙종(肅宗) 때 벼슬을 높여 증직(贈職)되었도다.
경광서원(鏡光書院)에 입향은 되였으나 오직 장호(長湖)의 땅에는 제사를 못 지냈다. 당시의 치적이 4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후손들이 터전을 잡은 지도 67대를 지냈도다. 본가 자손들은 억울함에 한을 품었고, 고을 사람들은 손으로 가리키며 슬퍼했다. 이에 종친 간에 합의하고 사림(士林)에 수의(收議)하여 집 지을 재목을 모아 역사(役事)를 시작하니 때는 요유(葽莠, 쑥이 성할 때)의 달이요, 터는 귀묵(龜墨, 귀는 일관 묵은 대목)에 자문하여 지문은 풍취(風聚)의 언덕에 정했도다. 목공은 재주를 다해 지으니 구름창과 달지게는 편의를 따랐으니, 어찌 동공(董工)의 뇌부(雷斧), 전근(電斤)에 양보하랴. 열기는 별과 달로 더불어 높이 밝고 채색은 산과 물이 다시 빛이 난다. 조상을 높이 받들고 어진 이를 호위하는데 두 가지가 완전하고, 한편 가정에 학방(學房)과 향당(享堂)에 서당(書堂)으로 아울러 아름답다. 노래도 상량(上樑)을 돕나니,

兒郞偉抛梁東船竹二山淸未終鶴駕秀峯遙對峙先生志氣與之崇
아리랑하고 들보를 동쪽으로 올리니
선죽(船竹) 두산(二山)이 푸르고 학가산(鶴駕山) 빼어난 봉우리는 멀리 대했으니
선생의 기상과 함께 높고,

抛梁南諸峯羅立似孫男也應精爽常臨降顧撫慈憐遺福覃
들보를 남쪽으로 올리니
모든 봉우리가 벌려섰는 모양이 손자(孫子)들과 같으니,
​정기가 임하여 어루만지고 사랑하여 복을 남겨 줌이요.

抛梁西石文墟野入望眼遙思徃昔宰州日春草荒陵頴愴悽
들보를 서쪽으로 올리니
석문(石文)의들이 시야에 들어오니 멀리 옛날 고을 다스릴 때 일들을 생각하니
봄풀 거친 언덕에 슬픔만 더하도다.

抛梁北竹樓本在黌堂側經來億㤼猶餘墟鄕士至今皆誦德
들보를 북쪽으로 올리니
죽루(竹樓)가 본시 글방 옆에 있으니 억겁을 지낸 지금 빈태만 남았으니
고을 선비들이 지금까지 덕을 외우네.

抛梁上日星皎皎照無量先生忠義卽爭光大地人人誰不仰
들보를 위로 올리니
해와 별이 밝고 밝아 사방에 비치니 선생의 충의와 빛을 다툼과 같으니
대지에 사는 사람마다 뉘 우러러보지 않으리,

抛梁下活脈長湖山底瀉認得精神本貫通洋洋如右又如左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강호의 맥이 산밑으로 세어 정신이 본관과 통함을 알지니
양양(洋洋)한 신령(神靈)이 오른쪽에 있는 것 같고 왼쪽에 있는 것 같다.

엎드려 원컨대 상량(上樑)한 뒤에, 봉산(鳳山)이 더욱 높고 구천(龜川)이 더욱 길어 일편단심이 다시 살고, ​더욱 확고(確固)하여 자손들이 계속하여 보답하고 닦아서 백천만대(百千萬代) 공적(功績)을 이을 것이며 비와 바람에 길이 보수하고 한 고을이 봉향(奉享)하여 봄·가을에 받들어 무궁할지어다.

*출처: 『경주이씨월성군파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