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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당일기(敬堂日記)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1. 20. 21:49

경당일기(敬堂日記)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해제
『경당일기(敬堂日記)』는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가 쓴 일기로 경광서원(鏡光書院) 소장본이다. 2책 필사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책 각각의 표제에 ‘중(中)’, ‘하(下)’가 기록되어있다는 점, 중권 첫머리의 갑인년 시작 기사가 5월 5일이고 그 위에 이전 기록의 일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권 1책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는 두 책만 존재한다. 기록 범위는 갑인년(1614)에서부터 을축년(1625)까지 약 12년간이며 그 가운데 중권은 갑인년에서 무오년(1618), 하권은 기미년(1619)에서 을축년까지의 기록을 수록하고 있다.

*국학진흥원 일기류
http://diary.ugyo.net/dir/heje?dataId=ACKS_DY_00500024&gubun=SJ



경당일기(敬堂日記) - 경당일기 중(敬堂日記 中)


서지정보
서명: 경당일기(敬堂日記)
저자(성명/자/호): 장흥효(張興孝), 행원(行源), 경당(敬堂)
판사항: 필사본(筆寫本)
주제: 생활일기
작성시기: 17세기 / 1614-05-05 ~ 1618-11-19

해제
『경당일기(敬堂日記)』는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가 쓴 일기로 경광서원(鏡光書院) 소장본이다. 2책 필사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책 각각의 표제에 ‘중(中)’, ‘하(下)’가 기록되어있다는 점, 중권 첫머리의 갑인년 시작 기사가 5월 5일이고 그 위에 이전 기록의 일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권 1책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는 2책만 존재한다. 기록 범위는 갑인년(1614)에서부터 을축년(1625)까지 약 12년간이며 그 가운데 중권은 갑인년에서 무오년(1618), 하권은 기미년(1619)에서 을축년까지의 기록을 수록하고 있다.

이 일기는 일정 기간 동안 비교적 지속적으로 하루의 일상을 간략히 기록한 생활일기의 일종이다. 이 가운데 중권은 전반적으로 광해군 시기에 해당한다.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여타 일기, 예를 들어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의 『모당일기(慕堂日記)』, 김령(金坽, 1577~1641)의 『계암일록(溪巖日錄)』 등과 비교하면 영남 지역의 사인(士人)이라는 입장에서 정치적 경험이나 당파적 입장 등에 관한 기사는 비교적 매우 소략하다. 주로 학문적 토론이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저자의 생애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지경(持敬)에 관한 공부와 실천, 꿈 이야기 등 일상적인 선비의 수양록이자 독서록과 같은 성격이 매우 강하다. 특히 일기의 기사 가운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하였다[言信口說]”, “발이 가는 대로 길을 걸었다[行信足步]” 등의 표현은 지경 수양의 실천을 보여주는 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가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저자 자신의 의견을 방대하게 표현하거나,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일들에 끊임없이 성리학적 이론을 대입시키고 깨달아 나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장흥효는 본관은 안동, 자는 행원(行源), 호는 경당(敬堂)이다. 부친은 팽수(彭壽), 안동부(安東府)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고제인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과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에게 배웠고, 뒤에 한강(寒江)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에게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저서에 『경당집(敬堂集)』이 있다.

이 일기는 조선중기 영남지역 출신의 대표적인 유학자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학문적인 내용과 실천에 관한 기사들은 문집 기록을 넘어 저자의 실제 모습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며, 나아가 당시 지역사회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을 담고 있기에 다양한 각도에서 인물과 시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국학진흥원 일기류
http://diary.ugyo.net/dir/heje?dataId=ACKS_DY_00500024_0010&gubun=KW


경당일기(敬堂日記) - 경당일기 하(敬堂日記 下)


서지정보
서명: 경당일기(敬堂日記)
저자(성명/자/호): 장흥효(張興孝), 행원(行源), 경당(敬堂)
판사항: 필사본(筆寫本)
주제: 생활일기
작성시기: 17세기 / 17세기 / 1619-02-08 ~ 1625-10-28

해제
『경당일기(敬堂日記)』는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가 쓴 일기로 경광서원(鏡光書院) 소장본이다. 2책 필사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책 각각의 표제에 ‘중(中)’, ‘하(下)’가 기록되어있다는 점, 중권 첫머리의 갑인년 시작 기사가 5월 5일이고 그 위에 이전 기록의 일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권 1책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는 2책만 존재한다. 기록 범위는 갑인년(1614)에서부터 을축년(1625)까지 약 12년간이며 그 가운데 중권은 갑인년에서 무오년(1618), 하권은 기미년(1619)에서 을축년까지의 기록을 수록하고 있다.

이 일기는 일정 기간 동안 비교적 지속적으로 하루의 일상을 간략히 기록한 생활일기의 일종이다. 이 가운데 하권은 전반적으로 광해군과 인조의 정권교체기에 해당한다. ‘인조반정’이라는 정치적 사건에 대해 저자는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하고 인조가 옹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라고 간략히 기록하는 데에 그쳤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여타 일기, 예를 들어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의 『모당일기(慕堂日記)』, 김령(金坽, 1577~1641)의 『계암일록(溪巖日錄)』 등과 비교하면 영남 지역의 사인(士人)이라는 입장에서 정치적 경험이나 당파적 입장 등에 관한 기사가 비교적 매우 소략하다는 점을 알게 해 준다. 주로 학문적 토론이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저자의 생애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지경(持敬)에 관한 공부와 실천, 꿈 이야기 등 일상적인 선비의 수양록이자 독서록과 같은 성격이 매우 강하다. 특히 유가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저자 자신의 의견을 방대하게 표현하거나,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일들에 끊임없이 성리학적 이론을 대입시키고 깨달아 나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장흥효는 본관은 안동, 자는 행원(行源), 호는 경당(敬堂)이다. 부친은 팽수(彭壽), 안동부(安東府)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고제인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과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에게 배웠고, 뒤에 한강(寒江)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에게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저서에 『경당집(敬堂集)』이 있다.

이 일기는 조선중기 영남지역 출신의 대표적인 유학자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학문적인 내용과 실천에 관한 기사들은 문집 기록을 넘어 저자의 실제 모습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며, 나아가 당시 지역사회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을 담고 있기에 다양한 각도에서 인물과 시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국학진흥원 일기류
http://diary.ugyo.net/dir/heje?dataId=ACKS_DY_00500024_0020&gubun=K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