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一)/판사공◆이양직

판사공 이양직 외손 김질(金礩)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3. 7. 12. 23:1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질(金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0672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형조판서, 우참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 가안(可安)
호: 쌍곡(雙谷)
시호: 문정(文靖)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22년(세종 4)
사망 연도: 1478년(성종 9)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평안도도관찰사|형조판서|우참찬|우의정

정의
조선전기 형조판서, 우참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가안(可安), 호는 쌍곡(雙谷).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승(金陞)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종숙(金宗淑)이며, 어머니는 이양직(李良直)의 딸이다. 부인은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세종 말년에 문음(門蔭)으로 충의위(忠義衛)에 속해 있다가 부사가 되었을 때, 성균관에서 수학하기를 청해 허락받았다. 성균관에서 참상관의 수학 제도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추장 문과에 정과로 급제해 주부(主簿)에 임명된 이후, 우정언(右正言)·병조좌랑을 거쳐 1455년(세조 1)에 사예(司藝)에 이르렀다.

이 무렵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의 집현전 학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는 모임을 몇 차례 가지던 중 위험을 느끼자, 1456년 장인인 정창손(鄭昌孫)과 함께 세조에게 고변해 이른바 사육신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뒤 세조의 철저한 신임을 받아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추봉되고 판군기감사에 승진되었다. 이어 승정원의 동부승지·우부승지·좌승지를 거쳐, 1459년 병조참판으로서 세조의 국방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두 차례에 걸친 세조의 서쪽지방 순행을 위해 황해도·평안도도순찰사가 되고, 1461년 평안도의 도관찰사가 되었다. 1463년에 공조판서에 오른 뒤 병조·형조의 판서를 거쳐 1466년 우참찬에 승진하였다. 이듬해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1468년(예종 즉위년) 우의정에 올랐다.

이어 좌의정에 승진된 뒤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와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이른바 원상(院相: 어린 왕을 보필하기 위한 원로로 구성된 재상권 이상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신하)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 원상 세력과 함께 나이 어린 예종과 성종 초기에 국정 서무를 주관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제거해, 1471년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으로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졌다.

1474년에는 다시 우의정에 임명되어 주문사(奏聞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세조의 공신으로, 특히 세조의 병제 개편에 깊이 관여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465년에 병전(兵典)을 고열(考閱)하고, 1470년에는 이전(吏典)의 교정도 맡았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국조방목(國朝寶鑑)』
『사가집(四佳集)』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대동야승(大東野乘)』
『조선초기 지배세력 연구』(정두희, 일조각, 1983)
「왕권의 확립과 제도의 완성」(한영우, 『한국사』 9, 국사편찬위원회, 1981)
「경국대전의 편찬과 반행」(박병호, 『한국사』 9, 국사편찬위원회, 1981)

집필자: 이근수


[디지털포천문화대전] 김질(金礩)

*디지털포천문화대전:
http://www.grandculture.net/pocheon/toc/GC05000983
http://aks.ai/GC05000983


항목 ID : GC05000983
한자 : 金礩
이칭/별칭 : 가안(可安), 쌍곡(雙谷), 문정(文靖)
분야 : 역사/전통 시대,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 인물/문무 관인
지역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시대 :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 신채용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 1422년연표보기 - 김질 출생
활동 시기/일시 : 1450년 - 김질 문과 급제 후집현전 수찬 제수
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김질 성균 사예 제수
활동 시기/일시 : 1456년 - 김질 장인 정창손과 함께 사육신의 단종 복위 도모 고변
활동 시기/일시 : 1459년 - 김질 병조참판 제수, 상락군에 봉해짐
활동 시기/일시 : 1461년 - 김질 평안도 관찰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 1468년 - 김질 우의정 제수
활동 시기/일시 : 1469년 - 김질 상락 부원군에 봉해짐
활동 시기/일시 : 1471년 - 김질 좌리공신 2등에 봉해짐
활동 시기/일시 : 1474년 - 김질 우의정 제수, 주문사로 명나라 다녀옴
몰년 시기/일시 : 1478년 - 김질 사망
묘소|단소 : 김질 묘소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성격 : 문신
성별 : 남
본관 : 안동(安東)
대표 관직 : 우의정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증조할아버지는 김사형(金士衡)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종숙(金宗淑)이다. 부인은 정창손(鄭昌孫)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동생 김작(金碏)은 성종의 후궁 명빈 김씨(明嬪金氏)의 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김질(金礩)[1422~1478]은 처음 충의위(忠義衛)에 보직되어 부사직을 역임하였다. 1450년(세종 3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수찬이 되었다.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최항(崔沆) 등과 함께 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문종이 승하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위로는 삼정승이 주로 보필하였고 아래로는 집현전 학사들이 보필하였다. 김질은 당시 집현전 학사였다.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하자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였는데, 이때 김질은 그 일원으로 성삼문 등과 모의하였으나 거사 직전 장인인 정창손과 함께 수양 대군에게 이를 밀고하였다.

이 고변으로 세조로부터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를 제수 받고 좌익공신(左翼功臣) 3등이 되었다가 후에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그 후 평안도 관찰사, 공조 판서, 병조 판서, 의정부 우참찬,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1468년(세조 14) 우의정에 이어 좌의정에 올랐다. 1469년(예종 1)에는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에 진봉되었고,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봉해졌다. 1474년(성종 5) 우의정으로서 주문사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학문과 저술]
세조 연간부터 시작되었던 『경국대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포천 군지』(포천 군지 편찬 위원회, 1997)
지두환, 『성종 대왕과 친인척』(역사 문화, 2007)

[지식연계]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질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