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一)/판사공◆이양직

판사공 이양직 외손 김작(金碏)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23. 7. 12. 23:0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작(金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0307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병조판서, 수지중추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자: 위경(衛卿)
호: 상곡(相谷)
시호: 효소(孝昭)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27년(세종 9)
사망 연도: 1488년(성종 19)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형조판서

정의
조선전기 병조판서, 수지중추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위경(衛卿), 호는 상곡(相谷). 좌의정 김사형(金士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승(金陞)이고, 아버지는 김종숙(金宗淑)이며, 어머니는 이양직(李良直)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47년(세종 29) 생원이 되고, 1454년(단종 2) 문음으로 선공감녹사가 되고, 곧 전농시직장(典農寺直長)이 되었다. 1458년(세조 4) 통례문봉례랑(通禮門奉禮郞)으로 승진하고, 1462년 종부시소윤(宗簿寺少尹)이 되었다.

1464년 경차관으로서 경기도에 파견되어 여러 읍의 옥사(獄事)에 대한 관리실태를 조사하여 보고하는 데 공헌하고, 장령(掌令)이 되었다. 1477년(성종 8) 첨정(僉正)으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는 등 관료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학문에도 힘썼다.

그 뒤 동부승지·좌부승지·도승지·대사간 등을 두루 역임하고, 1482년 형조참의가 되었다. 이듬해 경기관찰사를 거쳐 1484년에 병조참판·수지중추부사, 1487년에 형조판서가 되었다. 딸이 후궁이 되자 권력을 누리기도 하였다. 시호는 효소(孝昭)이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집필자: 이존희



[디지털청주문화대전] 김작(金斫)

*디지털청주문화대전:
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1871
http://aks.ai/GC00201871

항목 ID : GC00201871
한자 : 金斫
영어음역 : Kim Jak
분야 : 역사/전통 시대,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 인물/문무 관인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 나경준

[상세정보]
성별 : 남
생년 : 1427년
몰년 : 1488년
본관 : 안동(安東)
자 : 위경(衛卿)|등가(登可)
출신지 :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아버지 : 김종숙(金宗淑)
시호 : 효소(孝昭)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효자.

[가계]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위경(衛卿)·등가(登可)이다. 좌의정(左議政) 김사형(金士衡)의 증손(曾孫)이며, 김종숙(金宗淑)의 아들로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경력]
1447년(세종 29)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고, 1454년(단종 2) 음보(蔭補)로 선공감(繕工監) 녹사(錄事)가 되었다. 이후 춘천부사(春川府使)·군기감정(軍器監正)을 역임했다. 1477년(성종 8) 중시(重試)에 급제하여 병조참지(兵曹參知)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활동사항]
형제간에 우애(友愛)가 돈독(敦篤)하여 4형제(四兄弟)가 한 집에 기거하였으며, 구경당(俱慶堂)이라 편액(偏額)하고 정성(定省)을 어기지 않았다. 부모의 병환이 위급함에 따라 손가락을 잘라 구환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묘소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을 지내니 왕이 그 효성(孝誠)을 듣고 예(禮)로써 우대하였다. 또한 그 효를 가상히 여겨 친히 특히 좋은 음식[美饌]을 하사하였다.

[의의와 평가]
선생이 죽은 뒤에 그 효성을 기려 효소(孝昭)라는 시호(諡號)를 하사하였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청주지(淸州誌)』(청주시지편찬위원회, 1961)
『내고장 전통가꾸기』(청주시, 1981)

[지식연계]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작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