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문집/눌재유고이홍준

[訥齋遺稿] [詩] 無題 <국역>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1. 17. 12:27

눌재유고(訥齋遺稿) / 詩


無題

無生卽無死。有生卽有死。生死兩悠悠。造物無終始。

*출처: 용눌재집(慵訥齋集) > 訥齋先生遺稿 > 詩


생이 없으면 죽음도 없으리라. / 無生卽無死
생이 있으면 죽음이 따르리라. / 有生卽有死
살고 죽는 것이 다 아득하니 / 生死兩悠悠
조물은 처음도 끝이 없도다. / 造物無終始



무제無題

태어남이 없다면 죽음도 없고 無生卽無死
태어남이 있다면 죽음이 있네 有生卽有死
생과 사의 두 이치 아득하니   生死兩悠悠
조물주는 처음과 끝이 없다네 造物無終始


*출처: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 -안동역사인물문집국역총서11 한국국학진흥원(2020.10) > 눌재선생유고 > 시詩 > 무제無題
*한국국학진흥원: https://www.koreastudy.or.kr/



□成均進士訥齋公墓誌銘(성균진사눌재공묘지명)
-弘準 自製(홍준 자제)

噫悅生惡死。人之常情以死爲。諱口不敢言。惑之甚矣。有如漆園。㝕之忘骸楊王孫之裸葬。世無人矣。其知死生之說而。不爲懷者。有幾人哉。余嘗有詩曰。無生卽無死​。有生卽有死。生死兩悠悠。造物無終始。雖未及達觀。之徒所見如斯而。己凡人觀化之後。倩人碣辭。虛張逸筆以沒其實尤可笑也。此老平生懶拙。力農以給妻孥。七擧不中。優遊溪山以。是終焉。銘曰。 旣無才又無德。人而己。生無爵死無名。魂而已。憂樂空毁譽息。土而已。

*출처: 용재유고(慵齋遺稿) > 訥齋先生遺稿 > 自製碑文
*참조: 용눌재집(慵訥齋集) > 訥齋先生遺稿 > 丘墓文 > 自製墓碣銘


○이홍준이 쓴 자신의 비문(碑文).
○사람이 죽은 뒤에 허세를 부려 그 실제를 고쳐서 비문을 쓰니 우스운 일이라고 하며‚ 자신은 스스로 비문을 작성하되 재주도 덕(德)도 관직도 없으며 죽어서 드러날 혼(魂)도 없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성균진사눌재공묘지명 역문(成均進士訥齋公墓誌銘 譯文)
  -홍준 스스로 지음(弘準 自製)

아! 슬프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통 가지는 마음이다. 죽음을 싫어하되 입으로 감히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미혹한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일이다. 칠원(漆園, 장자가 몸이라는 곳에 있는 칠원에 옻 밭을 맡아보는 관리가 되었었다)의 늙은이 같은 이는 그 해골이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양왕손(楊王孫, 한나라 성고(城固) 사람. 황노(黃老)의 술을 배워서 죽을 때 아들에게 수의를 입히지 말고 나체로 매장하라고 유언하였다.)의 나매장(裸埋葬) 같은 경우는 세상에 그러한 사람이 없다. 죽고 사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에 생각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내가 일찍이 시를 한 수 지었으니 가로되

생이 없으면 죽음도 없으리라. / 無生卽無死
생이 있으면 죽음이 따르리라. / 有生卽有死
살고 죽는 것이 다 아득하니 / 生死兩悠悠
조물은 처음도 끝이 없도다. / 造物無終始

내가 비록 달관(達觀)한 사람은 못되나 보는 바가 이와 같을 따름이다. 평범한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묘갈(墓碣)의 내용을 남에게 청하여 붓을 들어 허장성세(虛張聲勢)하여 사실을 바꾸면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이 늙은이가 천성이 게을러서 농사하여 처자를 먹여 살릴 뿐이고 일곱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다 낙방하였으니 시내와 산에 마음껏 놀다가 이로써 마칠 것이다. 명에 이르되
이제 재주도 없고 또 덕도 없으니 그저 평범한 사람일 따름이요. 살아서 관작(官爵)이 없고 죽어서 이름이 없으니 그저 한 넋일 따름이다. 기쁨과 근심이 훼예(毁譽, 비방과 칭찬)가 그쳤으니 그저 한 줌의 흙이 될 따름이다.


*경주이씨 월성군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