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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월 경광서원(鏡光書院) 향사(享祀) 모습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9. 6. 11:04

 2019년 4월 21일(일)에 있었던 안동 경광서원(鏡光書院) 향사 사진입니다. 경광서원은 조선 숙종 12년(1686년)에 세워진 유서깊은 서원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구요. 1972년에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서원 건물을 보면, 세분의 위패를 모신 존현사(尊賢祠) 6칸, 숭교당(崇敎堂) 8칸, 내삼문(內三門)이 있습니다. 서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는 없었습니다. 사당에 들어가니 광영루(光影樓)  현판이 보입니다. 옛날에는 누각이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서원 관리동이라 할 수 있는 고직사는 서원 서쪽 편에 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경광서원은 조선 후기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의 하나로 안동 지역의 공론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곳입니다. 지금 서원은 동서재도 없고, 누각도 없으니, 옛 그대로 복원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옆에서 들으니, 경광서원 건물이 1972년에 지어진 관계도 문화재로 지정을 받지 못해 건물 유지에 많은 힘이 든다고 합니다.  1972년 다시 복원할 때도 재정적 여유가 없어서 기와를 새로 굽지 못하고, 다른 곳의 기와를 가져와서 재활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와를 이는 장인의 솜씨가 좋았던지, 아직까지도 비가 새지 않습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을 보면. 경광서원의 사당이 '경현사(景賢祠)'로 나옵니다. '존현사(尊賢祠)'로 고쳐져야 할텐데, 한 곳이 잘못되어 있으니, 다른 곳도 따라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백을 해야 겠네요. 저는 처음으로 서원 향사에 참석했습니다. 가장 어린 관계로 심부름도 해야 했구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도 눈치도 살펴야 했습니다. 사실 서원 향사의 전 과정을 살피면서 사진을 찍을 욕심으로 갔는데, 종헌관을 인도하는 찬인을 맡았던 관계로 마음대로 찍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동대 민속학과 배영동 교수님께  부탁을 드려 사진을 받았습니다. 순서대로 제대로 배열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만, 간단한 설명과 함께 사진을 올립니다.


  초헌관을 맡으신 계운 김구현 어른이 쓰신 시입니다. 제목이 '알경광서원춘향'입니다. 위의 시에도 나와있듯이, 경광서원에는 원래 네 분을 모셨다고 합니다. 백죽당 배상지, 용재 이종준, 경당 장흥효, 송소 권우입니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송소 권우 선생의 위패는 다른 곳으로 모셔갔다고 합니다.



계운 김구현 어르신이 지으신 한시도 읽고,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춘향을 지내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논의를 거쳐 소임을 정하고, 그것을 분정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 분인데, 글씨를 참 잘 쓰십니다. 이십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전혀 위축됨이 없었습니다. 알자와 찬인은 연세가 있는 분이 맡기는 좀 그렇지요. 이런 연유로 가장 어린 저는 종헌관을 인도하는 찬인을 맡게 되었습니다.


  분정표를 벽에 걸린 판에 붙이고, 논의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때도 저는 심부름하느라 어떤 말씀을 나누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얼핏 들으니, 요즘 많은 서원 향사에는 참례하는 유림의 수가 적어 분정을 하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이번 경광서원 향사에 서른 명 가까이 참석하여서 다행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강당에서 소임을 정하고, 분정표를 작성하는 시간에 사당에서는 다른 분들이 향사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당에 멍석도 깔고, 사당에 제수를 진설하는 등 바쁘게 움직입니다.



백죽당 배상지, 용재 이종준, 경당 장흥효 세분의 위패가 교의 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교의 앞에 있는 상에 옛 방식을 따라 제수가 진설되어 있습니다.


  서원 제사상을 처음보는 입장이니 그렇겠지만, 상 위에 진설된 제수를 보니 매우 특이합니다. 삶지 않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사각형으로 장만된 무우, 미나리, 껍질을 까지 않은 밤, 대추, 조기 한 마리, 대구포 한 마리 등 매우 간소합니다. 미나리와 무우를 담은 제기의 모습도 그렇구요. 대추와 밤을 담은 제기도 처음 보는 형태입니다.  헌관이 세 분이니, 술잔도 나란히 셋이 올려져 있습니다.


  향로의 모습도 고풍스럽습니다. 그런데 향상 위에 놓인 '고속야식센타'라는 성냥갑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향상 옆에는 축관이 쓴 축문이 놓여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검은 상자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사 지내기 직전에 위패를 담은 상자(?)의 덮개를 벗겨야 하는데, 낮은 곳에서는 벗기기가 힘드니,밟고 올라서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향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알자가 초헌관을 사당으로 모시기 위해 앞에서 인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의 말씀에 따라면, '알짜배기"라는 말의 어원이 '알자'라고 합니다. '알짜배기'는 '알짜'를 속되게 부르는 말인데, '알짜'는 바로 초헌관을 인도하는 '알자'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초헌관 김구현 어른과 초헌관을 인도하는 알자의 근접 사진입니다.



  사당에 모셔진 백죽당 배상지, 용재 이종준, 경당 장흥효 세 분 선생에게 올리는 축문을 읽는 동안 모두들 부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찬인의 역할에 충실하느라 사당 안에서 제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매우 아쉬운 부분이지요. 배영동 교수님이 찍으신 이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초헌관이신 계운 김구현 어른께서 백죽당 배상지 선생에게 잔을 올리는 모습입니다.



  아헌관이 사당에서 술을 올리는 동안, 아헌관을 인도하였던 찬인이 사당 앞에서 서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저의 뒷 모습도 나왔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인데요. 종헌관 뒤에 서 있었습니다.



  향사가 끝난 뒤 분축을 하는 모습입니다. 분축을 하는 동안 초헌관을 맡으신 계운 김구현 어른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시는 말씀과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덕을 갖추신 선비임을 느끼게 하는 분이었습니다.


이것도 향사의 과정인 모양입니다. 제례가 다 끝난 뒤 사당 앞에서 초헌관이 음복을 하셨습니다.


  제례가 끝난 뒤 강당에서 음복례를 하였습니다. 막내의 특권인가요?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등 어른들에게 술잔에 술을 따르는 소임을 맡았습니다. 음복례에서는 술을 세번 마시게 됩니다. 먼저 '초헌관 순배요'하면 술잔을 들고 한잔을 마시고, '아헌관 순배요' 하면 또 한잔을 마시고, '종헌관 순배요'하면 또 한잔을 마십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술잔을 술을 따를 때 조금 따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원래는 서원 홀기에 따라 향사의 전 과정을 재구성해 보려 했습니다만, 제 능력으로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몇번 더 경험한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栢竹門響 http://cafe.daum.net/qorwnr/jaAw/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