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유물/안동지역◇유적

경당선생급문제현록(敬堂先生及門諸賢錄)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9. 3. 7. 18:58
경당선생급문제현록(敬堂先生及門諸賢錄)


 ■ 경주이씨 월성군후 대사헌공파 현록

◦이재소(李再熽, 1617~1664):자는 군회(君晦), 경주인, 응조(應祚)의 손자, 성극(成極)의 아들.

◦이재엽(李再燁):경주인, 성극(成極)의 아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와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이재욱(李再煜, 1606~ ?):자는 일장(日章), 경주인, 응조(應祚)의 손자, 성극(成極)의 아들. 진사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재찬(李再燦):호는 경함(景涵), 경주인, 첨추(僉樞)의 벼슬을 지냄. 성량(成樑)의 아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재현(李再炫, 1606~1664):자는 회수(晦叟), 호는 약곡(藥谷), 경주인, 응조(應祚)의 손자, 성극(成極)의 아들. 유고(遺稿)가 있는데, 이름도 스스로 짓고 서문도 스스로 지었다.

◦이재형(李再炯, 1611~ ?):경주인, 성즙(成楫)의 아들.

◦이재환(李再煥, 1604~1658):자는 회지(晦之), 경주인(慶州人), 응조(應祚)의 손자, 성극(成極)의 아들. 용모와 위의가 맑고 준수했으며, 몸가짐이 단아하고 총명하며 영민하였다. 스승 경당으로부터 그 기량을 깊이 인정받았다. 1642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갈 뜻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읊조리며 고향에 거주하였으며, 세상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향리에서 취한 체 세상사를 잊고 살아갔다. 1658년에 병이 들어 힘든 상황에서도 평소와 같이 문장을 논하고 시를 지으며 생활하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묘갈명이 남아 있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계대

  이승직(李繩直)┬불민(不敏)
    대시헌공      ├명민(命敏)
   (大司憲公)     ├물민(勿敏)
                       ├미민(靡敏)
                       └시민(時敏)┬숭준(崇準)─덕림(德林)
                                         ├종준(宗準)
                                         ├홍준(弘準)
                                         └공준(公準)
 
  덕림(德林)┬창(菖)         ┬응복(應福)─성영(成楹)┬재욱(再煜)
                 │                  │                  系子生父應錄├재온(再煴)
                 │                  │                                  ├재형(再炯)-出系成楫后
                 │                  │                                  ├재작(再焯)
                 │                  │                                  ├재정(再炡)
                 │                  │                                  └재병(再炳)
                 │                  ├응록(應綠)┬성양(成樑)─재찬(再燦)
                 │                  │               └성영成楹-出系應福后
                 │                  ├응조(應祚)-出系苡后
                 │                  └응호(應祜)─성벌(成橃)┬재혁(再赫)
                 │                                                       └이안(以安)
                 ├훤(萱)         ─응우(應祐)─성즙(成楫)─재형(再炯)-系子生父成楹
                 ├이(苡)         ─응조(應祚)─성극(成極)┬재환(再煥)
                 │                      系子生父菖                    ├재엽(再燁)
                 │                                                       ├재현(再炫)
                 │                                                       └재소(再熽)
                 └신(莘)
 
  *참조: 1987년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



『한국학논집』 제40집(2010), pp. 321~374.

경당급문제현록(敬堂及門諸賢錄) 연구
-17세기 경북 북부지역 성리학계(性理學界)의 동향-

장윤수(張閏洙)

[부록] 경당선생급문제현록(敬堂先生及門諸賢錄)

*이 문인록(門人錄)은 성명의 ‘가나다’ 순서를 따라 재정리하였다. ‘한문판(漢文版)’ ‘문인록(門人錄)’은 대략 출생연도를 따라 정리하고 있기는 하나 선후(先後)가 뒤바뀐 경우도 많다. 한문판에 나오지 않는 기록이 한글판에 기재되어 있는 것은 필자가 보완한 것이다.


◦권겸길(權謙吉):자는 광숙(光叔), 안동인.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권겸숙(權謙叔):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경란(權慶蘭):경당선생의 처조카.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특히 『연보』 45년 정사년(1617) 선생 54세 때 12월의 기록에는 남진기(南振紀), 권빈(權贇), 권상률(權尙慄), 권상원(權尙遠), 권원길(權元吉), 이재엽(李再燁), 금언각(琴彦覺) 등과 함께 선생을 찾아가서 질의한 내용이 남아 있다.

◦권경부(權景孚):『경당일기』에 이름이 등장함.

◦권경숙(權景淑):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형제 간에 함께 수학하였다.

◦권계종(權繼宗):안동인, 풍기(豊基)로 옮겨감. 참봉 덕린(德麟)의 손자.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계희(權季希):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형제 간에 함께 수학하였다. 『일기』에서는 ‘계희(啓希)’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권굉(權宏, 1575~1652):자는 인보(仁甫), 호는 진봉(震峯), 안동인, 인재(忍齋) 대기(大器)의 아들, 송소(松巢) 우(宇)의 아우. 퇴계문인 권춘난(權春蘭)으로부터 배우기도 하였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상의원별좌(尙衣院別座)에 제수됨. 병자호란에 강화(江華)에 호종한 공으로 소무(昭武)·영사(寧社) 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고, 1628년 별제(別提)에 올라 세자시강원부솔(世子侍講院副率)에 제수됨.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소식을 듣고 강개시(慷慨詩)를 읊고 봉화(奉化) 소천(小川) 진봉산(震峯山) 아래에 은거함. 저서로 『진봉집』이 있음.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속집에 보인다.

◦권극경(權克敬):안동인, 오(晤)의 아들. 『경당일기』에 이름이 등장함.

◦권극길(權克吉):『경당일기』에 이름이 자주 등장함.

◦권담(權紞):자는 국화(國華), 안동인.

◦권득정(權得鼎)

◦권득평(權得平):자는 자형(子衡), 안동인. 선생의 생질. 『경당일기』에 이름이 자주 등장함. 선생의 문하에서 『맹자』를 읽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권락(權洛):자는 여앙(汝泱), 안동인(安東人), 단구(丹邱) 숙경(叔經)의 증손, 기수(麒壽)의 아들이며 항(沆)의 종제(從弟)이다. 안동 풍산에서 거처하였다. 선생이 지은 공(公)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선생이 지은 공(公)의 만시가 있다.

◦권말생(權末生):자는 만정(晩貞), 호는 둔수(遯叟), 안동인, 속문(屬文)의 아들,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의 종질(從姪). 문장을 잘 지었다. 호군(護軍)을 지냄.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권명선(權明善, 1580~1615):자는 복초(復初), 안동인, 덕조(德操)의 손자이고 봉사(奉事) 해(晐)의 아들. 종사랑(從仕郞)과 주부(主簿)를 지냄. 안동 서후에서 거처함.

◦권부흥(權復興, 1555~1592):자는 중원(仲元), 호는 오모재(五慕齋), 안동인, 임진란때 순절(殉節)함. 정려(旌閭)가 세워졌고, 충렬사(忠烈祠)에 제향(祭享)됨.

◦권빈(權贇, 1605~1693):자는 방언(邦彦), 호는 표헌(瓢軒), 안동인, 제월당(霽月堂) 중상(重常)의 손자, 승경(承慶)의 아들. 효렴(孝廉)으로 일컬어져 호군(護軍)에 제수됨.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연보』에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권사막(權思邈, 1574~ ?):자는 상우(尙友), 호는 송와(松窩), 초명은 사괄(思适), 안동인, 용만(龍巒) 기(紀)의 아들. 참봉을 지냈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배우기도 하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이회춘(李會春)이 지은 묘갈(墓碣)이 있다.

◦권상률(權尙慄):자는 자관(子寬), 안동인, 장악정(掌樂正)을 지냄.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권상릉(權尙稜):자는 신언(信彦), 안동인, 송와(松窩) 형(泂)의 아들. 상실(尙實)의 형. 경당선생을 기리는 만시가 별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상릉과 상실 두 형제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다.

◦권상실(權尙實):자는 원언(元彦), 안동인, 송와(松窩) 형(泂)의 아들, 상릉(尙稜)의 아우.

◦권상원(權尙遠, 1613~ ?):자는 원유(遠遊), 호는 백운자(白雲子), 안동인, 충재(冲齋) 권벌(權橃)의 증손, 계(棨)의 아들. 유곡(酉谷)에 거주함. 만력 계축년(1613, 광해5)에 출생, 생원, 학관(學官)을 지냈으며 필체(筆體)가 좋았음.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권세(權繐):자는 사화(士華), 안동인.

◦권수길(權脩吉):자는 도숙(道叔), 안동인, 호군(護軍) 엄(曮)의 손자. 만취당(晩翠堂) 산립(山立)의 조카.

◦권승길(權升吉):안동인, 봉사(奉事) 소(昭)의 손자, 의립(義立)의 아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권승선(權承善, 1589~1624):자는 계술(季述), 안동인, 금서헌(琴書軒) 덕윤(德潤)의 손자이고, 부는 창(昶), 생부는 양(暘)이며 종선(宗善)의 아우이다. 안동 서후에서 거처하였다.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시균(權是均, 1620~1705):자는 신경(信卿), 호는 송오(松塢), 안동인, 일제(日蹄)의 아들. 형제간에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권시정(權是精):안동인, 약곡(藥谷)에 거처하였다. 일제(日蹄)의 아들, 용철(用哲)의 아버지이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시형(權是亨):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특이하게도 “권시형(權始亨) 군이 사적으로 글자를 물었다.”는 기록이 계속 반복된다.

◦권심(權淰, 1612~1680):자는 사징(士澄), 안동인, 금서헌(琴書軒) 덕윤(德潤)의 증손자이고, 창(昶)의 손자이며, 승선(承善)의 아들임. 안동 서후에 거처함.

◦권우남(權遇男):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원길(權元吉):자는 선백(善伯), 안동인, 만취당(晩翠堂) 산립(山立)의 아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대질(大耋)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나이 88세로 졸함.

◦권유윤(權維允):자는 사부(士孚), 안동인. 회곡(晦谷) 춘란(春蘭)의 증손.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권윤종(權胤宗):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음(權崟, 1602~1652):자는 절보(節甫), 호는 송은(松隱), 안동인, 흥인(興仁)의 아들. 도사(都事)에 증직됨.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권이형(權以衡):자는 자평(子平), 안동인(安東人), 부장(部將) 창서(昌緖)의 손자, 기명(起鳴)의 아들.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권자(權滋, 1611~1686):자는 자익(子益), 호는 농와(農窩), 안동인, 금서헌(琴書軒) 덕윤(德潤)의 증손, 계선(繼善)의 아들, 권첨(權簷)·권찬(權澯)과 형제 간. 유고가 남아 있다.

◦권재기(權在璣):『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권적(權積, 1609~1663):자는 중거(仲車), 안동인, 해(晐)의 손자, 명선(明善)의 아들. 종사랑(從仕郞)을 지냄.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정길(權貞吉, 1623~ ?):자는 성백(聖伯), 안동인, 자립(自立)의 아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정립(權挺立, 1582~ ?):자는 수보(秀甫), 안동인. 부는 휘(暉), 생부는 엄(曮)이다. 만취당(晩翠堂) 산립(山立)의 아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있다. 별집에 보인다.

◦권종선(權宗善, 1585~1648):자는 경원(景元), 호는 눌헌(訥軒), 안동인(安東人), 금서헌(琴書軒) 덕윤(德潤)의 손자, 양(暘)의 맏아들, 승선(承善), 계선(繼善), 호선(好善), 처선(處善)의 형. 어머니는 류인무(柳仁茂)와 인배(仁培)의 누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권중길(權中吉):안동인, 옥립(玉立)의 아들, 산립(山立)의 조카.

◦권진(權山+晉):『경당일기』에 등장함.

◦권찬(權澯, 1613~1648):자는 유청(幼淸), 안동인, 금서헌(琴書軒) 덕윤(德潤)의 증손, 계선(繼善)의 아들. 권자(權滋)·권첨(權簷)의 아우.

◦권창업(權昌業, 1600~1663):자는 자기(子基), 호는 번곡(樊谷), 안동인, 판서 예(輗)의 증손자, 직장(直長) 지(誌)의 아들, 무신년에 등과(登科)하였다.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속집에 보인다. 일찍부터 경당선생 문하에서 학문을 하여 자신을 위하는 학문의 요체가 『대학』과 『중용』 두 책에 있음을 알았으며, 오로지 정밀하게 강독하여 참으로 알고 실제로 행하는 일에 힘썼다.
경당의 문인 중에서 금계(金溪)에 거주하던 사람 중 그와 왕래하며 그에게 질정(質正)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스승 경당을 섬기던 예(禮)로써 그를 섬기기까지 하였다. 안동지역의 세족(世族) 중에 돈후(敦厚)하고 학식이 있는 사람을 일컬을 적에 그를 으뜸으로 평가하였다. 효종(孝宗) 때에 유일(遺逸)을 추천하라는 명이 있자, 안동부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를 추천하고자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1636년 이후 다시는 과거시험에 응하지 않았고, 자신을 숨기며 살다가 생을 마쳤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행장(行狀)을 지었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묘표(墓表)를 지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스승의 연원을 상고해 보면, 경당은 학봉(鶴峯) 김 선생에게 배웠고, 학봉은 퇴계(退溪) 이 선생에게 배웠으니 계승한 학문이 단정하다고 할 수 있으며, 또 거처한 곳과 활동한 시대가 모두 퇴계와 멀지 않기 때문에 그 언행이 폐단이 없다. 그렇지만 공公의 자질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또한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명(銘)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위한 실질적인 학문을 하였으니
공公의 학문에는 흠이 전혀 없다네.
노(魯)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러한 덕을 취했겠는가?’”

◦권처선(權處善, 1602~1669):자는 여안(汝安), 안동인, 금서헌(琴書軒) 덕윤(德潤)의 손자, 양(暘)의 다섯 째 아들, 종선(宗善), 승선(承善), 계선(繼善), 호선(好善)의 아우, 장악정(掌樂正)에 증직됨.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권상규(權相圭)가 묘갈을 지음. 외숙 유인무가 그에게 준 시가 전해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네의 형들이 죽고 나서 자네만 살아남았으니
백발의 홀어머니 자네만 의지한다네.
그 연세 이미 아흔이 넘었으니
모름지기 효성을 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게나.”

◦권첨(權簷, 1580~ ?):자는 성오(省吾), 호는 어은(漁隱), 안동인, 금서헌(琴書軒) 덕윤(德潤)의 증손, 계선(繼善)의 아들, 권자(權滋)와 형제간. 창풍(昌豊)에 거주함. 숭정처사(崇禎處士)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권치(權穉):자는 중유(仲孺), 안동인, 명선(明善)의 아들. 창풍(昌豊)에 거주함.

◦권태길(權泰吉):안동인, 봉사(奉事) 소(昭)의 손자. 의립(義立)의 아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권태정(權泰靖, 1581~ ?):자는 택지(擇之), 안동인(安東人), 가연(佳淵) 춘계(春桂)의 아들, 학봉의 둘째 아들인 김혁(金奕)의 사위. 만력 신사년(1581, 선조14)에 출생하였다. 승의랑(承議郞)을 지냈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있다. 별집에 보인다.

◦권택(權澤)

◦권한(權僩):자는 덕순(德純), 안동인, 경당선생의 매제(妹弟).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함.

◦권항(權沆, 1588~?):자는 경초(景初), 호는 죽헌(竹軒), 안동인(安東人), 참봉 근(筋)의 손자, 응수(應壽)의 아들이고 송와(松窩) 형(浻)의 아우이고, 혼(渾)의 동생. 안동 풍산에서 거처하였다. 진사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이고 선생의 죽음을 애도한 글(제문)이 속집에 보인다.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권해생(權亥生):『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권형(權浻):자는 여징(汝澄), 호는 송와(松窩), 안동인(安東人), 참봉 근(筋)의 손자, 응수(應壽)의 아들, 항(沆)의 형. 참봉이었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권호선(權好善):자는 성희(聖希), 안동인(安東人), 금서헌(琴書軒) 덕윤(德潤)의 손자, 양(暘)의 넷째 아들, 종선(宗善), 승선(承善), 계선(繼善)의 아우, 처선(處善)의 형.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1619년(광해군11) 7월 7일의 기록에는 경당선생이 직접 권호선의 관례에 참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권혼(權渾):자는 숙초(叔初), 호는 단구(丹邱), 안동인, 근(筋)의 손자, 송와(松窩) 형(浻)과 죽헌(竹軒) 항(沆)의 아우. 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금언각(琴彦覺):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금차남(琴次男):『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금처겸(琴處謙, 1604~1645):자는 사익(士益), 봉화인, 일휴당(日休堂) 응협(應夾)의 손자, 발(撥)의 아들, 류진(柳袗)의 사위.

◦금해중(琴諧仲):『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김경언(金景彦):『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김경지(金敬之):『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김광국(金光國):『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김곤후(金坤厚, 1565~1644):순천인, 윤명(允明)의 아들, 권예(權輗)의 손서(孫壻).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김광보(金光輔, 1587~1634):자는 이보(以寶), 호는 용문(龍門), 광산인(光山人). 근시재(近始齋) 해(垓)의 아들,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의 사위.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보인다.

◦김귀金火+龜, 1610~1636):자는 소명(紹明), 의성인, 봉파(鳳坡) 시권(是權)의 아들. 종사랑(從仕郞)을 지냈고 장악정(掌樂正)에 증직됨.

◦김규(金煃, 1602~1685):자는 광정(光庭), 호는 정근재(定跟齋) 또는 송헌(松軒)이다. 의성인, 학봉의 증손, 시추(是樞)의 아들. 관직은 빙고별검(氷庫別檢)을 역임하였으며, 후에 대질(大耋)로서 가선대부에 이름.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연보』에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속집에 보임.

타고난 기상과 자질이 깊고 위의와 용모가 훤칠하였다. 옛날의 도를 좋아하고
선善을 즐기며 풍류가 돈후하니, 당시 안동지역에서 제일의 인물로 추앙받았다
선조인 학봉의 문집을 판각하여 보급하였다.

◦김대명(金大鳴):경당선생의 표질(表姪).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김도(金燾, 1602~1686):자는 자인(子仁), 호는 갈계(葛溪), 의성인(義城人), 운천(雲川) 용(涌)의 손자, 시릉(是棱)의 아들. 부호군(副護軍)을 지냄. 『연보』에 등장함.

◦김련(金煉, 1606~1649):자는 광언(光彦), 의성인, 애경당(愛景堂) 집(潗)의 손자, 행촌(杏村) 시강(是杠)의 아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김몽립(金夢立):『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김무(金懋):자는 무재(懋哉), 호는 표은(豹隱), 광산인(光山人), 석중(錫重)의 아들, 김집(金潗)의 외손.

◦김명(金溟, 1592~ ?):의성인, 학봉의 아들. 군수(郡守)를 지냄.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김병득(金丙得):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김석중(金錫重, 1595~1636):자는 여임(汝任), 호는 잠곡(潛谷), 광산인(光山人). 부는 백웅(伯熊)이고 생부는 중웅(仲熊)이며 학봉(鶴峯)의 손서(孫婿)이고 김집(金潗)의 사위다. 김응조(金應祖)가 묘갈(墓碣)을 썼다. 봉화 거촌(巨村)에 거처하였다.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김선(金宣+見)

◦김성보(金成甫):『경당일기』에 등장한다.

◦김시강(金是杠, 1587~1656):자는 자거(子擧), 호는 행촌(杏村), 의성인(義城人). 봉파(鳳坡) 시권(是權)의 아우. 1624년에 생원이 되었다. 경학(經學)에 고명(高明)하여 당시의 사람들이 중망(重望)으로 생각하였다.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유고(遺稿)와 행록(行錄)이 있었으나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다.

◦김시권(金是權, 1583~1643):자는 자중(子中), 호는 봉파(鳳坡), 의성인(義城人), 학봉의 손자, 애경당(愛景堂) 집(潗)의 아들, 시추(是樞)의 아우. 만력 계미년(1583, 선조16)에 출생함. 1629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30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좌랑(佐郞)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침착, 중후, 단정, 엄숙하여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병자년(1636)에 의병을 일으켰다. 여러 벼슬에 천거되었지만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집안에서는 윤리를 극진히 하였고, 다른 사람의 어려운 일을 보고서는 도와주기를 잘 하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광주사람 고경명(高敬命)의 아들 고용후(高用厚)가 가족을 이끌고 와서 그에게 의탁하였는데, 한 집안 식구처럼 그들을 대했다. 그 후 고경명이 순국하게 되자 더욱 애처롭게 여겨 돌보아주고 격려하고 함께 학문을 수행하였다. 유진(柳袗), 홍호(洪鎬), 권도(權燾)와 깊게 교유하였다. 임종 시에 이르러 모친의 봉양을 잘 하지 못하였다고 자책하며, 자신의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라고 유언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원해서 관직생활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정(銘旌)에 관작을 쓰지 말라고 하였다. 후손 김진국(金鎭國)이 유사(遺事)를 지었고, 소암(所庵) 이병원(李秉遠)이 묘갈명을 지었다.

◦김시단(金是檀)

◦김시명(金是明)

◦김시민(金時敏, 1598~1660):자는 손경(遜卿), 풍산인(豊山人), 망와(忘窩) 영조(榮祖)의 아들, 진사 시익(時翼)의 아우, 시침(時忱)의 형, 학봉(鶴峰)의 외손, 수암(修巖) 유진(柳袗)의 사위이다. 감역(監役)을 역임했으며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됨. 원당(元塘)에서 거처함.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함. ◦김시익(金時翼, 1596~1665):자는 학경(鶴卿), 풍산인(豊山人), 망와(忘窩) 영저(榮祖)의 아들, 시민(時敏)과 시침(時忱)의 형, 학봉 선생 외손. 진사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김시임(金時任, 1610~1686):자는 중경(重卿), 호는 학계(鶴溪), 풍산인, 광록(廣麓) 연조(延祖)의 아들, 김집(金潗)의 외손.

◦김시진(金始振):『경당일기』에 등장함.

◦김시침(金時忱, 1600~1670):자는 종경(綜卿), 호는 일용재(一慵齋), 풍산인, 시익(時翼)과 시민(時敏)의 아우, 학봉 선생 외손, 정사신(鄭士信)의 사위. 별제(別提)를 지냈다. 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김시탈(金是梲, 1597~1644):자는 자고(子高), 의성인(義城人). 행촌(杏村) 시강(是杠)의 아우. 양자로 가서 감천(甘泉)의 뒤를 이었다. 생원이었다. 그 후 현손 김렴(金濂)이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으로 추증되었다. 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경당선생문집 ‘답문(答問)’에는 김시절이 선생에게 질문하고 선생이 이에 답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에는 성(性)을 가리켜서 통체(統體)인 하나의 태극이라 하셨는데, 그 이후에 다시 도(道)를 가리켜서 통체(統體)인 하나의 태극이라 하셨습니다. 앞뒤의 설(說)이 같지 아니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김여백(金如柏):자 직경(直卿). 순천인, 동리(東籬) 윤안(允安)의 종손(從孫), 곤후(坤厚)의 아들, 여탁(如鐸)의 형.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함.

◦김여벽(金如璧):자는 극정(克精).

◦김여탁(金如鐸):자 경지(警之). 순천인, 동리(東籬) 윤안(允安)의 종손(從孫), 곤후(坤厚)의 아들, 여백(如柏)의 동생.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함.

◦김우(金遇):자는 회지(會之), 상주목사 선계(善繼)의 아들. 『경당일기』에 등장함.

◦김운해(金雲海):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함.

◦김이도(金以道, 1604~1677):자는 열지(悅之), 호는 미산(眉山), 분성인(盆城人). 예천(醴泉)에 거주하였음. 계원(繼元)의 증손, 성물(成物)의 아들, 변희일(邊喜一)의 사위.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연보』에 등장함. 광호사(光湖社)에 제향(祭享)됨.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속집에 보인다.

◦김전(金烇, 1604~1659):자는 명언(明彦), 의성인, 시추(是樞)의 아들, 정근재(定跟齋) 규(煃)의 아우.

◦김차득(金次得):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김태득(金泰得):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김헌경(金憲卿):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김형득(金亨得):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김휘(金煇):경당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김흔(金忻)

◦남기(南杞, 1567~1649):자는 미대(美大), 본관은 영양(英陽), 응진(應震)의 아들이다. 첨추를 역임하였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남두환(南斗煥):자는 사화(士華), 영양인, 방준(邦俊)의 아들, 하진호(河晉豪)의 처남.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남방준(南邦俊):자는 자호(子豪), 영양인, 억수(億壽)의 아들, 남두환(南斗煥)의 아버지.

◦남병생(南丙生):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남유해(南有海):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남준(南峻):영양인, 봉경(鳳慶)의 아들, 지망(之望)의 형이다.

◦남지망(南之望, 1608~1669):자는 종여(宗余), 호는 나은(羅隱), 영양인, 봉경(鳳慶)의 아들, 준(峻)의 동생이다. 예천에 거주하였음. 예조(禮曹) 좌랑(左郞)을 지냄. 공이 지은 경당선생의 제문이 『경당선생별집』에 보이고, 경당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남진기(南振紀, 1586~1644):자는 자립(子立), 호는 치소헌(癡笑軒) 혹은 허주(虛舟). 영양인(英陽人). 우(祐)의 아들이고 치공(致恭)의 후예이며 김용(金涌)에게서도 수학(受學)하였다. 경당선생의 재종(再從) 표질(表姪). 진사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 및 선생의 죽음을 애도한 글(만사와 제문)이 있다. 경당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남진유(南振維, 1587~1642):자는 자장(子張), 영양인(英陽人), 치소헌(癡笑軒) 진기(振紀)의 아우이고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의 장인이다. 경당선생의 재종 표질. 진사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 및 선생의 죽음을 애도 한 글(제문)이 별집에 아울러 보인다. 경당의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남필(南佖, 1605~1667):자는 덕용(德容). 우(祐)의 손자, 진기(振紀)의 아들.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연보』에 등장한다.

◦남해녕(南海寧)

◦문득귀(文得龜):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문득중(文得中):『경당일기』에 등장한다.

◦문홍중(文弘中):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연보』에 있다.

◦박견(朴熞, 1600~1651):자 광언(光彦), 호는 동헌(桐軒), 반남인(潘南人), 정윤(貞胤)의 아들.

◦박돈(朴惇):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박선(朴瑄):박선(朴璿)과 동일인일 수 있음.

◦박선(朴璿, 1596~1669):자는 계헌(季獻), 호는 도와(陶窩), 무안인(務安人), 무의공(武毅公) 의장(毅長)의 아들이고, 서애(西厓) 유성룡의 손서(孫婿)이다. 장현광(張顯光)과 유진(柳袗)으로부터도 수학하였고, 교관(敎官)을 지냈다. 영해 반포(反浦)에 거주하였음.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문집이 있다. 류치명(柳致明)의 장(狀)과 권유(權愈)가 지은 묘갈(墓碣)이 있다.

◦박태진(朴泰振):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박태진(朴泰鎭):박태진(朴泰振)과 동일인일 수 있음.

◦배숙전(裵淑全, 1583~1637):자는 원선(元善), 흥해인(興海人), 금역당(琴易堂) 용길(龍吉)의 아들, 윤전(潤全)의 형. 장사랑(將仕郞)을 지냈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배윤전(裵潤全, 1604~ ?):자는 덕언(德彦), 호는 도장(道藏), 흥해인(興海人), 금역당(琴易堂) 용길(龍吉)의 아들, 숙전(淑全)의 동생. 1616년에 경당선생의 문하에 오름.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배익겸(裵益謙, 1587~1654):자는 도형(道亨), 호는 부훤당(負暄堂), 흥해인(興海人). 백죽당(栢竹堂)의 후예이고 관찰사 환(桓)의 8세손이며 득인(得仁)의 아들이다.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시집(詩集)이 있다. 유필영(柳必永)이 묘갈(墓碣)을 지었다. 안동 풍산 계평(桂坪)에서 거처하였다.

◦배인길(裵麟吉):자는 인서(仁瑞), 흥해인. 백죽당(栢竹堂) 상지(尙志)의 후손, 종윤(宗胤)의 아들.

◦배종윤(裵宗胤):자는 극소(克紹), 흥해인, 백죽당(佰竹堂)의 후손, 영언(永言)의 아들.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배직(裵直):『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배진(裵進)

◦배택인(裵宅仁):『경당일기』에 등장한다.

◦변유안(邊有安):자는 사정(士靜), 원주인(原州人), 극제(克悌)의 아들, 희일(喜一)의 재종손(再從孫).

◦변응균(邊應筠):『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변응황(邊應篁):『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변정일(邊丁一):『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변중일(邊中一, 1575~1660):자는 가순(可純), 호는 간재(簡齋), 원주인(原州人), 동호(東湖) 영청(永淸)의 손자, 경장(慶長)의 아들, 희일(喜一)의 아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숙종 병인년(1686, 숙종12)에 충효(忠孝)가 드러난 것으로써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그는 국량(局量)이 걸출하고 총명함이 빼어났다. 다른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을 들으면 곧바로 암송하였는데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고 한다. 8, 9세에 이미 문리(文理)가 터졌고 문장이 갖추어졌는데, 시율(詩律)에 더욱 뛰어났다. 임란 때에 병든 조모의 곁을 지키다가 왜병을 맞게 되었는데도 그 효성과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운명하는 날에 가묘에 배알하고 자식과 조카를 불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충효 두 글자를 각자 명심하고 대대로 가법을 전해야 한다.”라고 하고서, 수의壽衣를 입고 자리에 누워 편안히 눈을 감았다.(『금계지』) 『연보』에 등장한다.

◦변효일(邊孝一):자는 충겸(忠兼), 원주인, 경남(慶男)의 아들, 선일(喜一)의 종제(從弟), 종사랑(從仕郞)을 지냄.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변희일(邊喜一, 1574~1635):자는 가경(可敬). 호는 대겸재(大謙齋), 원주인(原州人), 동호(東湖) 영청(永淸)의 손자, 경장(慶長)의 아들, 중일(中一)의 형. 임진년(1592, 선조25)에 곽망우당(郭忘憂堂)과 함께 군공(軍功)을 세운 바가 있어 진위장군(振威將軍)에 제수되었다. 첨지(僉知)를 지냈다.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서준리(徐準履):달성인(達城人), 약봉(藥峯) 성(渻)의 손자, 김영조(金榮祖)의 사위. 현감을 지냄.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손계홍(孫繼弘):『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손특(孫特):『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송복기(宋復起)

◦신상정(辛象鼎, 1591~ ? ):자는 응지(凝之), 영월인, 진사였다. 추애(秋厓) 홍립(弘立)의 아들.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와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신택원(申澤源):『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안우(安遇, 1572~1636):자는 성지(性之), 순흥인(順興人), 청원정(淸遠亭)의 후예이고 현감 담수(聃壽)의 아들이며 신명창(申命昌)의 손서(孫婿)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전적(典籍)과 선교랑(宣敎郞)을 지냈다. 안동 풍천에서 거주하였다.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안척(安滌):『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오여벌(吳汝橃, 1579~1635):자는 경허(景虛), 호는 경암(敬庵) 또는 남악(南岳)이라 하였다. 고창인(高敞人), 죽유(竹牖) 운(澐)의 아들, 애경당(愛景堂) 김집(金潗)의 사위. 정구(鄭逑)의 문인이기도 하며 창원부사(昌原府使) 등을 지냈다. 신축년(1601, 선조34)에 생원 진사과에 합격하고 계묘년(1603, 선조36)에 문과에 올랐다. 벼슬은 교리校理에 이르렀다. 선조 대에 호성선무원종공신(扈聖宣武原從功臣)으로 훈록勳錄되었다.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문집이 있음. 주요 저서로 『중국력대총론(中國歷代總論)』『동국역대기사(東國歷代紀事)』 등이 있다. 사림(士林)에 의하여 영천(榮川) 남계사(南溪祠)에서 향사되고 있다.

◦옥숙화(玉叔和):『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옥지율(玉之栗, 1588~1656):자는 관보(寬甫)이다. 의령인. 임(琳)의 아들이고 지청(之淸)의 종형(從兄)이다. 안동 길안 만음(晩陰)에 거처하였다.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옥지청(玉之淸, 1595~1679):자는 경화(景和)이다. 의령인. 선(璿)의 아들, 지율(之栗)의 종제(從弟)이며, 남진기(南振紀)의 처남이다. 김용(金涌)으로부터도 수학하였다.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우기(禹起, 1601~ ?):자는 문보(文甫), 단양인(丹陽人), 인경(仁慶)의 아들.

◦유경지(柳敬之, 1612~1658):자는 직경(直卿), 교관(敎官) 심(襑)의 아들, 겸암(謙庵)의 손자, 성지(誠之)의 아우.

◦유명립(柳命立, 1595~ ?):자는 여수(汝脩), 전주인, 진일재(眞一齋) 숭조(崇祖)의 오대손. 인건(仁健)의 아들, 원립(元立)과 직립(直立)의 형. 원계(猿溪) 인배(仁培)의 조카.

◦유성지(柳誠之, 1607~1634):자는 열경(悅卿), 교관(敎官) 심(襑)의 아들, 겸암(謙庵)의 손자, 종지(宗之)의 아우, 경지(敬之)의 형.

◦유세장(柳世長, 1611~1688):자는 덕용(德用), 풍산인, 현감 원리(元履)의 아들.

◦유원개(柳元凱, 1600~1655):풍산인(豊山人), 겸암(謙庵) 운용(雲龍)의 손자. 현감 원경(元慶)의 아우.

◦유원경(柳元慶, 1597~1650):자는 선응(善膺), 호는 농계(聾溪), 풍산인(豊山人), 겸암(謙庵) 운용(雲龍)의 손자, 현감 원리(元履)의 아우, 원정(元定)과 원개(元凱)의 형, 약봉(藥峯) 김극일(金克一)의 외손.

◦유원례(柳元禮):『연보』에 등장한다.

◦유원리(柳元履, 1591~1649):자는 탄지(坦之), 풍산인(豊山人), 겸암(謙庵) 운용(雲龍)의 손자. 조상의 공훈과 업적을 이어 열고 훌륭한 덕을 이루었다. 벼슬은 현감을 지냈다.『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유원립(柳元立, 1597~ ?):자는 여장(汝長), 호는 계당(溪堂), 전주인, 진일재(眞一齋) 숭조(崇祖)의 오대손. 명립(命立)의 아우, 직립(直立)의 형. 원래는 인건(仁健)의 아들이었으나 큰아버지 인영(仁榮)에게 출계(出系)하여 진일재의 주손(冑孫)이 됨. 유고(遺稿)가 있다. 안동 임하에서 거처하였다. 『연보』에 등장한다.

◦유원정(柳元定, 1600~1655):자는 선구(善久), 풍산인(豊山人), 겸암(謙庵) 운용(雲龍)의 손자, 원리(元履)와 원경(元慶)의 아우.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유원지(柳元之, 1598~1674):자는 장경(長卿), 호는 졸재(拙齋), 풍산인, 서애 선생 장손(長孫), 여(袽)의 아들, 학봉의 손자 김시추(金是樞)의 사위. 갑인년(1614, 광해6)에 경당문하에 오름. 감역(監役)을 역임했으며 화천원(花川院)에 제향(祭享)됨.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속집에 보인다.

◦유의남(柳義男, 1583~1655):자는 의언(宜彦), 호는 지곡(芝谷). 모하당(慕河堂) 중청(仲淸)의 후손, 하룡(河龍)의 아들. 나지곡(羅池谷)에 살았다. 풍산인(豊山人). 매원(梅園) 김광계(金光繼)·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와 함께 지내면서 읊은 교유시(交遊詩)가 있다. 『연보』에 등장한다.

◦유인무(柳仁茂, 1581~1659):자는 덕장(德章), 호는 죽곡(竹谷), 전주인(全州人), 진일재(眞一齋) 숭조(崇祖)의 증손, 란(瀾)의 아들, 인영(仁榮)과 인건(仁健)의 아우, 인배(仁培)의 형. 어머니가 청계 김진의 막내딸이기에 학봉 김성일의 생질이 됨. 아들 넷이 모두 등과하였음. 나이준(羅以俊)의 사돈. 문집으로 『죽곡집(竹谷集)』이 전함.

◦유인배(柳仁培, 1589~1668):자는 덕재(德栽), 호는 원계(猿溪), 전주인(全州人), 진일재(眞一齋) 숭조(崇祖)의 현손, 청암(淸庵) 란(瀾)의 아들. 인영(仁榮), 인건(仁健), 인무(仁茂)의 아우. 학봉 김성일의 생질. 14세 때 경당 문하에 나가 수학하였고, 선생의 관심과 사랑을 특히 많이 받았음. 16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복을 마친 이후로는 외사촌 형인 운천(雲川) 김용(金涌)의 문하에도 나아가 배웠다. 40세 이후로는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병자년(48세)에 가족을 데리고 기산(岐山) 동쪽의 유신(維申)이란 골짜기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유신이란 원곡(猿谷)과 같은 명칭으로 이곳은 일찍이 외조 김진(金璡)이 별서(別墅)를 짓고 살던 곳이었다. 산수와 더불어 산 지 30여년에 원곡에다 3간 집을 마련하여 처사적 삶에 더 한층 깊이 몰입하였다. 안동지역 8처사의 한 사람으로 존중받음. 경당 문하에서 공부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경당선생의 제문祭文이 『경당문집별집』에 있음. 『원계집(猿溪集)』 총3책이 전함.

◦유종지(柳宗之, 1599~1675):자는 인경(因卿), 풍산인, 교관(敎官) 심(襑)의 아들. 겸암(謙庵)의 손자,

◦유직립(柳直立, 1600~ ?):자는 여청(汝淸), 호는 묵계당(黙溪堂), 전주인, 진일재(眞一齋) 숭조(崇祖)의 오대손. 인건(仁健)의 아들, 명립(命立)과 원립(元立)과 직립(直立)의 아우.

◦유첨(柳襜, 1591~1650):자는 정보(正甫), 호는 겸근재(謙謹齋), 풍산인, 서애의 아들, 변희일(邊喜一)의 사위.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이겸일(李謙一):자는 사익(士益), 신평인(新平人), 경침(景忱)의 아들.

◦이경달(李敬達):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경중(李敬仲):『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이군익(李君益)

◦이당(李瑭):선성인(宣城人), 부장(部將) 사인(思仁)의 아들, 진(瑱)의 동생.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이로(李櫓):자는 군섭(君涉)이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형제가 함께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상일(李尙逸, 1611~1678):자는 익세(翼世), 호는 정묵재(靜黙齋), 재령인(載寧人), 참봉을 지냄. 석계(石溪) 시명(時明)의 장자(長子), 근시재(根始齋) 김해(金垓)의 외손(外孫), 처부(妻父)는 유진(柳袗)이다. 1633년 진사시 합격. 당시 사림(士林)의 대의론(大議論)이 일자 영남유생의 소두(疏頭)로 추대됨. 아우 휘일(徽逸)과 함께 ‘순유(醇儒)’로 중망을 받았으며, 또한 그들 집안형제들을 두고 ‘순씨팔용(荀氏八龍)’에 비유함. 장릉참봉(長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음. 문집으로 『정묵재집』 1책이 있다.

◦이시명(李時明, 1600~1671):자는 회숙(晦叔), 호는 석계(石溪), 재령인(載寧人), 영해(寧海)에 기거하였음. 운악(雲嶽) 함(涵)의 아들. 선생의 사위. 생원(生員). 1612년 진사시 합격. 병자호란 삼전도(三田渡)의 치욕 이후 출세를 단념함. 영양(英陽) 석보촌(石保村)·수비(首比)에 살다가 만년에 자손을 위해 안동 두솔원(兜率院)으로 이주하였다. 마을이름을 대명동(大明洞)으로 고침. 그는 선생의 사위였을 뿐만 아니라, 수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경당선생 사후 경당의 전적을 추스르고 그 학문의 요체를 자식들에게 전수하였다. 경당의 대표작인 「일원소장도(一元消長圖)」의 발문과 선생의 제문을 지었다. 문집으로 『석계집』이 있다.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이시철(李時哲)

◦이시함(李時咸, 1612~1646):자는 화보(和甫), 전주인(全州人), 송월재(松月齋) 시선(時善)의 형, 김시강(金是杠)의 사위. 『연보』에 등장한다.

◦이양원(李楊遠):자는 화백(華伯), 전의인(全義人),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이우달(李又達):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이회(李而晦):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이익문(李益文):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재소(李再熽, 1617~1664):자는 군회(君晦), 경주인, 응조(應祚)의 손자, 성극(成極)의 아들.

◦이재엽(李再燁):경주인, 성극(成極)의 아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와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이재욱(李再煜, 1606~ ?):자는 일장(日章), 경주인, 응조(應祚)의 손자, 성극(成極)의 아들. 진사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재찬(李再燦):호는 경함(景涵), 경주인, 첨추(僉樞)의 벼슬을 지냄. 성량(成樑)의 아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재현(李再炫, 1606~1664):자는 회수(晦叟), 호는 약곡(藥谷), 경주인, 응조(應祚)의 손자, 성극(成極)의 아들. 유고(遺稿)가 있는데, 이름도 스스로 짓고 서문도 스스로 지었다.

◦이재형(李再炯, 1611~ ?):경주인, 성즙(成楫)의 아들.

◦이재환(李再煥, 1604~1658):자는 회지(晦之), 경주인(慶州人), 응조(應祚)의 손자, 성극(成極)의 아들. 용모와 위의가 맑고 준수했으며, 몸가짐이 단아하고 총명하며 영민하였다. 스승 경당으로부터 그 기량을 깊이 인정받았다. 1642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갈 뜻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읊조리며 고향에 거주하였으며, 세상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향리에서 취한 체 세상사를 잊고 살아갔다. 1658년에 병이 들어 힘든 상황에서도 평소와 같이 문장을 논하고 시를 지으며 생활하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묘갈명이 남아 있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제문이 별집에 보인다.

◦이정일(李精一):『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정추(李廷樞):자는 두응(斗應), 선성인(宣城人) 부장(部將) 사인(思仁)의 손자, 당(瑭)의 아들.

◦이지돈(李之焞)

◦이지엽(李之燁):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지찬(李之燦):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지환(李之煥):자는 광언(光彦), 재령인, 해(楷)의 아들, 매오(梅塢) 정영후(鄭榮後)의 외손(外孫).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진(李瑱, 1572~1622):자는 옥여(玉汝), 선성인(宣城人), 부장(部將) 사인(思仁)의 아들, 당(瑭)의 형.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경당선생이 지은 공(公)의 제문이 있다(일실됨).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즙(李楫):자는 경섭(景涉).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이평(李玶, 1570~1636):자(字)는 평백(平伯), 선성인(宣城人), 풍은(豊隱) 홍인(洪仁)의 아들, 진(瑱)과 당(瑭)의 재종형(再從兄)이다.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이희문(李喜聞):『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장보(張輔, 1580~ ?):자는 여거(汝車), 호는 성암(誠庵), 선생의 재종제(再從弟)이다.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을 지냈다.

◦장식(張軾):자는 여첨(汝瞻), 선생의 재종제(再從弟).

◦장유경(張裕慶):자는 덕흥(德興), 안동인.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장유헌(蔣維憲):호는 퇴금재(退錦齋), 아산인, 사윤(思胤)의 아들.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장종망(張宗望):자는 경지(敬之), 안동인, 선생의 재종질(再從姪).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채백창(蔡伯昌):『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최극보(崔極甫):『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최세우(崔世虞)

◦최세진(崔世鎭):『경당일기』에 등장한다.

◦최세주(崔世柱):『경당일기』에 등장한다.

◦하계업(河繼業):진주인(晉州人).

◦하계종(河繼宗):자는 사중(嗣重), 진주인(晉州人).

◦하진웅(河晉雄, 1582~1643):자는 자위(子偉), 호는 한석당(閑石堂), 진주인(晉州人), 단계(丹溪) 위지(緯地)의 6세손이고 우성(遇聖)의 아들이다. 고모부(姑母夫)인 권기(權紀)에게서도 수학하였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가 별집에 보인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안동 서후에서 거처하였다.

◦하진호(河晉豪, 1591~1659):자는 자준(子俊), 호는 평재(平齋), 진주인(晉州人), 한석당(閑石堂) 진웅(晉雄)의 아우. 국가에서 노인을 봉양하는 법전에 따라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재욱(李再煜)이 지은 묘지명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타고난 성품은 자상하였고 효성과 우애는 타고난 것이어서 크게 사람들을 감복시켰네.(『금계지』)”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하위여(河偉歟):『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홍극가(洪克家):『경당일기』에 등장한다.

◦홍이즙(洪以楫):자는 여섭(汝涉), 부림인(缶林人). 『경당일기』와 『연보』에 등장한다. 공이 지은 선생의 만시(輓詩)가 별집에 보인다.

◦홍하량(洪河量, 1588~1632):자는 군수(君受), 호는 성재(誠齋), 부림인(缶林人). 홍귀달(洪貴達)의 5세손이고 장사랑(將仕郞) 수약(守約)의 아들. 학봉 선생 외손. 만력 무자년(1588, 선조21)에 출생함.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지조와 품행이 확고하였다. 어린 아이 때부터 경당의 문하에 나아가 가르침을 받았으며 인정받은 바가 크다. 일상생활에서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을 그때그때 기록하였으며, 밤에는 향을 피우고 진정한 학자의 길을 다짐하였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문을 닫고 고요한데서 심성을 수양하였으며, 스스로 일처리를 할 때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 한결같이 성실함을 위주로 하였다. 유진(柳袗), 김응조(金應祖)와 더불어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정구(鄭逑)로부터 학문을 자주 독실하게 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이현일이 행장을 지었고, 권유가 묘갈명을 지었다.(『금계지』) 45세로 졸(卒)하였으니, 스승 경당이 이를 매우 애석하게 여겨 애도한 시가 『경당집』에 수록되어 있다. 문하에서 수학한 기록이 『경당일기』와 『연보』에 자주 등장한다.

◦황문발(黃文發):『경당일기』에 등장한다.

◦황미중(黃美中):자는 유장(有章), 감사(監司)를 지냄.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황윤(黃鈗)

◦황천일(黃千一):자는 성응(聖應), 창원인(昌原人), 김시추(金是樞)의 사위. 상의원 별제(尙衣院別提)를 지냄. 『경당일기』에 등장한다.

(2010. 5. 31. 접수 ; 2010. 6. 11. 채택)


장윤수(張閏洙)


경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신라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 섬서성 張載關學硏究中心에서 초빙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신유학, 동양교육사상 등이다. 저서로는 『정주철학원론』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張載 氣哲學의 이론적 구조」 등이 있다. E-mail:ysjang@d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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