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와공(養窩公) 이세구(李世龜) 1646(인조 24)~1700(숙종 26)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수옹(壽翁)·호는 양와(養窩). 항복(恒福)의 증손이며 목사 시현(時顯)의 아들. 1672년(현종 13) 진사시에 들고 1695년(숙종 21)에 추천을 받아 예산(禮山)현감에 보임되고 2년뒤 장령을 거쳐 서연관(書筵官)·홍주목사 등을 엮임하였다. 그는 경학(經學)·예설(禮說)·역사에 박통(博通)하였고, ≪대학(大學)≫의 ‘물격설(物格說)’에 있어서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해석이 모두 정주(程朱)와 다르다고 반박했으며, ‘정심장(正心章)’에 대해서도 이황의 해석의 잘못을 지적했다. ‘기해예설(己亥禮說)’에 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이었으며 ≪가례(家禮)≫도 여러 학설을 집대성하여 독자적인 주석을 붙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