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승지(都承旨) 이중협(李重協) 1681(숙종 7)~?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화중(和仲), 정언 익(瀷)의 증손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1715년 사간원 정언을 거쳐 1717년 사헌부지평에 이르고 동지사 유명웅(兪命雄)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18년 경종의 비 단의빈심씨(端懿嬪沈氏)가 죽으므로 대전(大殿)인 숙종의 며느리의 복상이 부장기(不杖朞)로 결정되자 대공복(大功服)으로 해야한다는 소를 올렸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719년 흉년을 당하여 기민구제를 하기한 공명첩(空名帖)의 발행을 중지하라고 상소하였다. 1722년(경종 2) 사간원사간·홍문관수찬·승문원교리 등을 역임하였는데, 대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다 하여 의금부에 갇히고 해남으로 귀양갔으며 다시 경원..